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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마음을 다하여 주를 환영합니다 (눅 19: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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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하여 주를 환영합니다 (눅 19:28-44)

1년 교회 절기 중 가장 은혜로운 절기가 고난 주간과 부활절 기간입니다.
그러나 목사로서 안타까운 것은 모든 성도들이 다 그런 은혜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행사처럼 지내고 맙니다. 

그것은 종려 주일을 지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종려 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제자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이 메시야요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고백하고 찬양함으로 영접하였던 일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입니다.

종려 주일은 고난 주간과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분위기가 전혀 안 맞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매우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이 제자들 처럼 주님을 향한 뜨거운 환영과 찬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대단히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찬양은 메시야가 받을 찬양이었지만,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안장도 없고 카펫도 없어 제자들의 겉옷을 깔았습니다. 왕의 행진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그 날도 다 예수님을 이렇게 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려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행동은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그렇고,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바리새인들의 말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었습니다.
제자들을 조용히 시키라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아주 강하게 책망하시면서 충격적인 표현을 쓰셨습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환영과 찬양을 들으시고 기분이 좋으셨던 것일까요?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찬물을 끼얹는 바람에 기분이 확 나빠지셔서 감정적인 대응을 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렇게 반응하신 것은 이런 믿음이 아니고서는 앞으로 닥칠 십자가 고난을 통과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환호하는 제자들의 영접을 받으셨지만, 마음은 울고 계셨습니다.
그 날도 예루살렘 성을 보시는 순간 우셨습니다.

41-44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보신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이스라엘 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며칠 뒤,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또 통곡을 하고 우셨습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환영과 찬양한다고 그것 때문에 기뻐하실 일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가오는 십자가 고난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서 다 도망을 갈 만큼 무서운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진심으로 영접하고 찬양한 이들이었기에 그들은 그 십자가 고난의 시련을 지나 부활의 주님을 뵙는 영광의 자리에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보면 5백여 제자들에게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누구였겠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바리새인들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종려나무를 흔들며 왕이 입성하는 것처럼 환영하던 제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주님도 따라가고 부활의 주님도 따라갈 수 있을지는 우리 마음에 증거가 있습니다.
주 예수님을 진심으로 마음에 영접하고 환영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유별나게 믿게 됩니다. 표시나게 믿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이나 직장이나 심지어 교회에서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주 예수님을 믿어도 유별나게 믿는 사람입니까? 

지난 주간 책 하나가 소포로 왔습니다. 헌책, 절판된 책, 테오도어 모나드 목사의 [예수님만 바라보자] 보내신 분이 목사님에게 필요한 것 같아서, 너무나 귀한 책, 책을 받아들고 내가 너무 유별나게 예수님을 믿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잘하고 있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십자가를 지는 시험의 때가 올 것입니다. 고난의 때만 아니라 일이 잘 될 때도 신앙적으로는 더 위기의 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순간에도 주 예수님을 붙잡으실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10장 37-38절까지 매우 부담스러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10:37-38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이 말씀을 읽고 숨이 탁 막히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이해가 안되는 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 전에 하신 말씀은 더 이해가 안됩니다. 

34-36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주님을 사랑하라 하면 되겠는데, 꼭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이 이해가 되는 사람이 고난 주간을 맞이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창세기의 하이라이트, 구약성경의 하일라이트는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이 보다 더한 불화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이런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까? 아브라함만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시험입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처럼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시험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와 같은 사랑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그 모리아 산이 골고다입니다. 골고다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십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아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도 이기고 부활의 주님을 만날 자는 마음이 다릅니다.
 
한 수도사가 기도 중에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수도사가 감격해서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마음을 다해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소서." 예수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다 나의 것이다. 너는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수도자라 많지는 않지만, 제 모든 소유라도 다 드리고 싶습니다." “내게는 돈이 필요없으니 가난한 사람에게나 주어라." 하지만 수도사는“빈 손으로 가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드라면 받으시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네 마음을 다오.”

사랑하는 여러분,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뜨겁게 환영하였던 제자들처럼 그렇게 주 예수님을 영접하였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주 예수님을 그렇게 진지하게 영접한 적이 없다고 생각되는 이들은 지금 주 예수님을 영접하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헤매는 형편에서 구원받는 길이고 살 길입니다.

눅 10: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제자들은 어린 양이고 마귀는 이리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무슨 수로 마귀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큐티를 열심히 하는 양은 이리를 이길 수 있습니까? 성경을 많이 읽으며,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으면, 제자훈련을 하면, 금식하는 양은 이리를 이길 수 있을까요? 양이 태권도 유단자가 되면 이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 양이 목자인 예수님과 늘 함께 하는 것만이 이리인 마귀를 이기는 길입니다. 제자들이 마귀의 시험에서 이기는 길은 자신이 이리 앞에 선 양이란 마음으로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자는 것은 바로 이 까닭인 것입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라!
여러분의 마음을 어디에 두셨습니까? 돈에 사람에게 세상에 뉴스에 죄에 두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흔히들 마음을 빼앗겼다고 말합니다. 엉뚱한데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에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들, 마음을 찾아와야 합니다.
마음에 들어와 있는 것들은 어떻습니까? 끔찍한 것 더러운 것, 악한 것이 마음에 들어와 자리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을 공개하고 살 수 있습니까? 영성일기를 통하여 매일 마음을 공개할 수 있습니까?
힘드십니까? 어떻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영접하여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는 길은 주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뿐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미 마음에 주 예수님을 영접한 분은 주님을 향한 찬양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도, 어제 저녁도, 주 예수님을 환영하고 찬양하셨습니까? 
주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지만 환영하고 찬양하지는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심각하게 여겨야 합니다.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에 신약학 교수 한 분이 계셨는데 이 분이 예배 시간에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른 적이 없었답니다. 강의할 때는 그처럼 유창하던 분이 찬송 시간만 되면 입이 철문 만큼이나 굳게 잠긴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채플 시간에 교수와 학생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 교수님이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뜨거운 열정으로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수가 그 전날 밤 꿈에 천국을 갔었던 것입니다. 그 곳에서 천사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천국에는 신학 잘하는 사람은 필요없소. 우리 천국에는 찬송하는 사람이 필요하오.“

부부는 소개하지 않아도 압니다. 소개해야 안다면 심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인 것은 소개 안해도 알아야 합니다.
마음에 주님을 영접하였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면 주님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결혼은 사랑을 지켜줍니다. 싸울 수도 있으나 결혼한 사이는 다시 회복이 됩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사이는 싸우고 헤어지면 끝입니다. 

여러분과 예수님과 사이는 결혼한 사이입니까? 평소의 찬양을 보면 압니다. 

제자들은 주 예수님을 향하여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이 지켜보든지 말든지 찬양하였습니다. 
우리도 주 예수님을 이처럼 항상 감사하고 찬양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살 길입니다.
느 8:10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군목시절 연대장, 최전방에서 극도의 긴장 속에서 어려울 때, 숙소에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며 노래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18번 찬양이었습니다.‘괴로을 때 주님의 얼굴 보라’

설교를 준비하면서 청소년국 사북 수련회 생각이 났습니다. 3일 동안 강원랜드에서 발씻는 전도를 하고 마지막 말 노천극장에서 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야외 예배였는데, 그 날 하루 종일 비가 왔는데, 아무도 비가 올까봐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비 오는 게 무슨 상관이야? 비오면 예배 못 드려?’이것이 당시 청소년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될 때도 비가 왔습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맑은 날 예배드리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예배드렸습니다. 점점 빗발이 굵어졌습니다. 그러자 하나 둘 강단 앞에 나와 춤을 추며 찬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설교하러 나갔다가 울었습니다. 그전부터 울었습니다. 설교하는 자리에서 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것이 진정 예배였습니다.

원수를 양자 삼았던 손양원목사님에게는 주님을 향한 뜨거운 찬양이 있었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이 지은 복음성가 중에, '주님 고대가'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 1.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2. 고적하고 쓸쓸한 빈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3.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4. 내 주님 자비한 손을 붙잡고 면류관 벗어들고 찬송부르면 주님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5. 신부되는 교회가 흰옷을 입고 기름 준비 다해 놓고 기다리오니 도적같이 오시마고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6.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여러분,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이 마음으로 고난주간을 맞이 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은 고통스런 주간이 아니라, 신혼여행과 갈을 것입니다.
주님과 사랑으로 하나되는 가장 은혜로운 주간입니다.
감격스런 부활의 주님을 맞이 하게 될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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