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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기름 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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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강) 요한일서 2:20-21 기름 부음

 

<본문>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요한일서 2:20-21)

<설교>

신자가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누구에게 배워서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사랑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사랑을 깨달은 누군가로부터 들음으로써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들었다고 해서 모두가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내용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들은 것을 이해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그들만이 알 수 있는 하늘의 감추어진 비밀인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너희는 거룩한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합니다. 당시에는 적그리스도의 유혹을 받아 복음에서 떠난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혹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복음에 머물렀던 신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진리에 굳건히 설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이 오심으로 되어진 일이라는 것이 본문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많은 유혹과 갈등 속에서 진리에 머물러 있다면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20절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을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주이신 아버지와 아들을 알았다면 그것이야 말로 세상 모두를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버지를 모르고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계획, 즉 세상의 마지막을 모른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이고 무지함입니다. 아버지를 안다면, 그리고 세상의 마지막을 안다면 그것이야 말로 세상의 전부를 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21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지금 진리를 알지 못한 자들에게 서신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아는 자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고 있는 자들에게 왜 진리에 대해 얘기하는 것입니까? 이것을 보면 요한은 진리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갖게 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아는 바에 거할 것을 가르치기 위함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참된 앎은 진리에 거하는 것으로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하지 못하는 진리라면 그에게 진리는 진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아버지를 아는 아버지의 백성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말합니다. 아들을 아는 아들의 사람들에게 아들에게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신자가 모여서 말씀 듣고 배우는 것이 성경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듣고 알고 있는 진리에 굳건히 거하기 위해서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과연 내가 오늘도 진리에 거하는 자로 살았는가를 점검하기 위해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입니다.

 

신자는 거룩하신 분에 의해 기름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목사가 안수 받는 것이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에 의해 구별되고 성령이 여러분께 오심으로써 거룩한 자가 되어지는 그것이 곧 기름 부음입니다. 그러므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뜻이고 구별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구별하여 부르신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제자로 삼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사람은 세상의 일로 육신을 배불리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된 지리에 거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27절에 보면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잘못 이해하면 내게는 성령이 있고 성령이 직접 나에게 가르치시는 아무에게도 말씀을 들을 필요가 없고 가르침을 받을 필요도 없다는 이상한 논리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성령이 가르친다는 것은 성경에 대한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긍휼과 자비하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목사의 가르심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가르친다고 해도 알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목사는 아버지에 대해 전하는 존재일 뿐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분은 성령입니다. 다시 말해서 목사가 가르침으로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있겠지만 하나님을 알고 사랑과 긍휼을 깨닫는 것은 목사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진리이니 이 진리에 거하며 살아가자는 것일 뿐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은 온전히 성령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다스리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여러분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없음을 뜻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누군가의 다스림을 받고자 하는 것은 성령의 다스림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지 않는 어리석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는 이런 어리석음이 없기를 바랍니다.

 

엄밀히 말하면 목사는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조언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돕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조언자인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이기 때문에 목사가 신자를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것은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이고 여러분도 누군가를 지배하고 다스리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로 만나는 것이 사랑의 관계입니다.

 

신자가 서로 만나는 것은 세상의 외적인 조건은 모두 내려놓은 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받은 것만을 들고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관계에서의 인간관계는 철저한 평등입니다. 높고 낮음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가 있는 자도, 없는 자도 평등합니다.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그 누구도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악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조건을 보지 않고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로만 만나는 그것이야 말로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면 됩니다. 누군가가 하기 때문에 따라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판단자는 말씀이기 때문에 항상 말씀에 비추어서 내가 진리에 거하는가를 살피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나를 판단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결국 내 고집과 욕심으로만 드러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아셨습니까? 아들의 섬김과 희생을 아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께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는 것에 거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아셨다면 사랑에 거한 자로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성령의 다스림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이러한 삶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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