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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민들레 홀씨> 제116호: 가끔 빗속을 혼자 걷는 것도 참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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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빗속을 혼자 걷는 것도 참 좋군요

산책을 나갔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급히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빗줄기가 제법 굵고 아스발트 위로 물살이 제법 거세게 흘러갑니다.

우산을 썼지만 벌써 발이 다 젖고 바지 가랑이도 젖었습니다. 한참 오는데 전동 휠체어를 탄 분이 우산을 쓰고 태평하게 내 곁을 지나 빗속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분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나보다는 몇 배나 불편할 텐데 너무나 태연하게 빗속을 가는 것 같아서입니다. 나도 뭐 급할 게 있나 모처럼 빗속을 걸어보자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평안해지더니 금세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꼭 음악소리 같기도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비를 맞아본 것 같습니다. 빗속을 걸어본 게 언제 일인지 까마득하거든요. 옛날엔 비가 오면 처마 밑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 듣는 것도 즐거웠지요. 아파트에 살다 보니 비가 와도 잘 못 느끼고 그저 티브이 뉴스 보고 비가 왔나 하는 거지요. 이렇게 오랜만에 옛 정취를 느껴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편하고 포근한 느낌까지 든 것일까요. 소나기가 억수로 퍼붓는데 문득 이 작은 우산 속에 나 혼자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나 혼자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뭔가 신비롭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이상하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두가 혼자다”고 노래한 바로 그 느낌입니다.

요즘 왕따가 사회 문제가 되고 아무도 혼자 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와 수다를 떨고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있고 무리를 지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요즘같이 실업자가 많고 임시직이 많은 세상에서는 더욱 어딘가에 소속되고 구속되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낄 것입니다. 가끔 출판기념회 같은 모임에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뜻밖에도 반갑게 손을 잡으며 인사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는 아무도 아는 척을 해주지 않아서 한 1-2분 혼자 있었는데 그걸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걸 깨고 싶어서 얼굴만 알아도 반갑게 손을 잡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친절한 말들을 늘어놓는 것이지요. 풀밭에 원을 그리고 앉거나 누군가와 커피를 손에 들고 서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금세 불안해지는 게 어쩌면 오늘의 우리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혼자 있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혼자 되어 보는 경험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혼자가 되고 싶은 갈망을 느끼나 봅니다. 그런 출판기념회에서 한 시간만 수다를 떨다 오면 집에 오면 톡 떨어지는 걸 느꼈을 것입니다. 누군가와 같이 있는 건 한 없이 긴장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놓고 톡 떨어져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혼자 있을 때 사람은 행복한 거지요.

어릴 때 봉화 근처 시골에 갔다가 불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을 거닐어보았습니다. 평생에 단 한번 느낀 신비였지요. 그리곤 다시는 그런 어둠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늘 가로등이나 자동차 불빛이 나를 따라다닙니다. 어둠 속이든 안개 속이든 잠시라도 혼자가 되고 싶었나 봅니다. 늘 나이를 계산하고, 돈을 계산하고, 언제까지 마감을 하느냐, 쉬지 않고 전화를 하고 또 하고 …… 무엇이 되었느냐, 무엇이 될 것이냐, 누가 묻지 않아도 혼자서 묻고 대답을 하고, 고민을 하고, 부끄러워하고, 허세를 부리는 요즘의 생활에서 조금은 지쳐 있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잠시나마 소나기 덕분에 혼자 있는 것도 제법 괜찮은 것임을 느낀 겁니다. 가끔 빗속을 혼자 걷는 것도 참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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