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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민들레 홀씨> 제119호: 금붕어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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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의 환상



초등학교 시절 고기잡이에 한창 맛을 들여서 그물을 갖고 냇물을 따라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비온 날에는 새벽같이 가야 많이 잡는다. 냇물에는 주로 모래무지, 피라미, 먹지 등이 잡혔는데, 가끔 깨끗한 모래 위 맑은 물 속에서 툭툭 튀듯 헤엄치는 새우를 보는 것도 즐거웠다. 가끔 우리가 칠성뱀이라고 부른 칠성장어도 나타나곤 했는데 미꾸라지와 뱀을 합쳐놓은 듯했다. 그놈만 보면 잡아 가지곤 바위 위에다 패대기를 치고 구경을 하는데 아가미 부근에서 꼭 점이 일곱 개가 발견되는 것이 신기했다.

가끔 둑방길 옆에 있는 논에서 진흙 색깔의 미꾸라지를 잡는 것도 재미있다. 냇물에 사는 미꾸라지는 등이 모래 빛인데 논에 사는 놈은 시커먼 진흙 빛이고 배통은 노르스름하다. 사람들은 그것이 진짜 맛있고 몸에도 좋은 것이라고 했다.

하루는 그런 논 옆의 작은 도랑에서 고기를 잡는데 난데없이 그물 안에 휘황찬란한 빛이 퍼득이는 것이었다. 놀라서 보니 금붕어였다. 세상에, 금붕어를 잡을 줄이야! 금붕어가 그런 물에 산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커다란 어항 속 맑은 물 속에서 장난감 같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을 뿐인데……. 가까이에 초등학교가 있었으므로, 처음엔 혹 누가 어항을 씻다가 놓친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또 잡히고 또 잡히는 것이었다. 아주 빨간 놈, 빨간 얼룩이 진 놈, 검은 색 점이 박힌 놈, 그냥 붕어하고 섞인 듯이 보이는 놈, 큰 놈 작은 놈, 각양각색의 금붕어가 잡히고 또 잡혔다. 만날 꼬리가 두 갈래이고 일자로 뻗은 붕어만 잡아보다가 꼬리가 세 갈래이고 흐느적거리는 금붕어를 그물로 잡으니 여간 놀랍고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가서 호들갑을 떨며 알려주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집으로 데려 와서 잡은 금붕어를 보여주니까, 어디서 사다 놓은 것이겠지 하면서 믿지 않았다. 절대로 논 옆 도랑에 금붕어가 살 리는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친구들이 믿어주지 않는 게 섭섭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놀랍고 믿어지지 않는 일을 내가 경험한 것이라는 사실에 설레었다. 어쩌면 난 기적을 경험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내게 꿈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한 건지도 모른다. 난 대단한 아이고 큰일을 이루어야 하는 장손이니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대충 이런 생각이었다. 난 그 당시에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어린 아이에게는 신화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그 후로 여러 번 나는 뭔가 횡재한 느낌이 들 때마다 늘 이 때 일을 떠올리곤 했다. 나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행운을 기대하면서 사는 것 같다. 꼭 금붕어는 아니더라도, 뭔가 특별한 일이 우리를 위해서 벌어질 거라고 믿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없는 돈에서 로또 복권을 사기도 하고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하기도 하면서 이런 금붕어 같이 화려한 것이 한꺼번에 자기에게 다가오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적극적 사고방식에 심취한 사람이나 그런 것에 영향 받은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경향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뭔가 화려한 것을 구하는 것을 신앙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도의 응답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 화려한 것은 절대로 허황된 것일 수 없으며 하나님이 보증해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금붕어 신화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어느 어른이 듣는 앞에서 또 그 얘기를 했더니 그분이 말씀하기를 그건 논이나 도랑에 사는 금붕어가 아니라 어디에선가 흘러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가정집에서 그렇게 많이 나올 리는 없고, 내가 고기를 잡은 그 도랑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그 위에 고등학교가 있고 그 안에 큰 연못이 있는데 거기 금붕어들이 많고, 그 물이 도랑으로 흘러넘치게 되어 있으니 비가 왔을 때 연못의 금붕어들이 도랑으로 넘어왔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궁금증은 풀렸지만, 뭔가 맥이 풀리고 싱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내게 다가온 행운이라느니, 뭔가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느니 하면서 설렌 것은 다 착각이었다. 조금만 알아보려고 했으면 알 수 있는 일을 너무 쉽게 신화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되는 것은 그때는 그런 꿈에 사는 어린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그 시절엔 그런 꿈을 갖는 것도 좋았다. 문제는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나이가 들어서까지도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퇴행 현상이다. 어릴 때 엄마 품이 좋았던 것처럼, 어릴 때의 환상적인 꿈은 유치하긴 해도 포근하고 좋아서 버리기가 싫은 것이다. 특히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 갖는 꿈은 늘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아주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람도 교회에 가기만 하면 어린아이처럼 엉뚱한 것을 구하고 매달리는 것을 우린 자주 볼 수 있다.

요즘 다들 경기가 어려워 살기가 어렵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 뭔가 화려한 것, 금붕어 같은 횡재를 사람들은 기대할지도 모른다. 교회는 또 그런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그러면 주실 거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적의 금붕어는 없다. 조금만 침착하면 연못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것은 참된 꿈이 아니라 허황된 환상일 뿐이다. 그런 환상을 갖느니보다 차라리 도랑에는 금붕어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낫다. 그러고 나면, 금붕어가 잡힌다고 해서 놀랄 것도 없고,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낙망할 것도 없다. 금붕어가 아니면 어떤가. 미꾸라지든 붕어든 도랑에 있는 것을 열심히 잡으면 되고 거기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이야말로 금붕어 같은 횡재를 한 분도 그런 것을 구한 분도 아니다. 그가 만나고 일으켜 세워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 쓴 사람들은 연못의 금붕어보다는 도랑의 물고기 같은 사람들이 아닌가. 하지만 그들에게서 금빛보다 찬란한 기쁨과 사랑을 일으키고 축제를 벌인 분이다. 그는 찬란한 금붕어를 찾지 않았다. 그 대신 도랑의 물고기 같은 갈릴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삶 속에서 황금 빛 나는 소중한 것을 찾게 하였다. 그렇다. 우리가 도랑에서 금붕어를 찾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금빛 물고기는 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으며 빛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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