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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삭개오의 행복 (눅 1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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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인생이 아름답게 변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변화의 대부분을 외적인 것들에 집착합니다. 예를들어 병들었던 몸이 건강해지고 가난했던 생활이 기적적으로 풍족해지고 환경적으로 풀리지 않던 개인의 어려움이 해결되는 기쁨을 상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된다고 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때로는 병든자를 치료하셨고 배고픈자에게 기적으로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예수가 누군인가를 강력하게 증언하는 목적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과 만난 사람들의 특징을 분류할 때 이러한 사람들은 별도의 관심으로 연구하게 되며, 보편적으로는 세 부류의 인물이 있다고 말하게 됩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를 공격하며 거부했던 사람들, 또 한 부류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를 인정하면서도 고민하면서 떠난 사람들, 끝으로 한 부류는 예수님을 만난후 그를 영접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의 변화를 허용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수를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행동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부자 청년도 가롯유다도 예수님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삭개오도 예수님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삭개오를 통해 예수님과 만났을 때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삭개오는 어떤 사람인가 (눅19:2)
먼저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을 보면 ‘의로운 자, 순진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로보아 삭개오는 전통적인 유대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전통적인 유대인이라함은 구약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이유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며 내 인생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드려야 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의 직업을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세리는 합법적으로 부과되는 이상으로 과세를 징수했기 때문에 랍비들에 의해 부도덕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로 대중에게 가르쳐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세금공무원들의 비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듯이 당시에는 더 심한 분노를 세리들에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당시 사람들이 세리와 창녀와 죄인을 같은 부류로 취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그들 중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삭개오는 로마의 공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축적시킨 부도덕한 인간이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열망했고 또 만나서 변화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그의 과거까지 대단히 도덕적이며 양심적인 사람으로 오도되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그는 당시에 대중에 분노와 원성을 받던 부도덕한 사람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공권력에 아부하며 자신의 부를 축척하는 사람이 바로 삭개오의 진정한 정체인 것입니다.

2. 예수를 열망하는 삭개오 (눅19:3-4)
부자였지만 삭개오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삭개오를 진정한 사랑과 관심으로 대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했지만 정서적으로는 너무도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랑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갈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그것은 세리도 마다하지 않고 친구처럼 가까이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은 세리인 마태라는 사람도 자기 제자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삭개오의 관심은 자연히 예수에게 쏠리게 되었고, 그러던 중 예수가 그의 마을인 여리고를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최소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도 많거니와 평소에 삭개오를 미워하던 사람들이 길을 열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키가 작았던 삭개오는 궁여지책으로 뽕나무 위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삭개오에게 세상에서의 재물과 명예는 무의미한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열망을 가지고 자신을 보고자 하는 삭개오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있는 나무를 향해 다가오셨고 그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는 내려오라는 말씀과 함께 스스로 삭개오의 집에 유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은 삭개오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예수는 돈만은 부자를 좋아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왜 예수님이 삭개오 집에 간다는 것인지 그들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삭개오를 먼저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차마 예수님앞에 담대히 나갈 수 없는 삭개오의 양심앞에 예수님은 먼저 그를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의 열망이 주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 (눅19:4-10)
예수님의 요청에 대한 삭개오의 반응은 순수하면서도 신속했습니다. 이제껏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소외를 당해왔던 그로서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자신을 조롱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기뻐하며 즐겁게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할 때 처음 경험하는 관심이라는 사랑을 가졌던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다보니 관심을 부담으로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행복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분간은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곧 불행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관심을 잃어버리기 전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삭개오는 나무에서 급히 내려왔고 곧바로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영접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자청하여 들어갔다고 서로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행동 때문에 실망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으로 자신의 사랑을 갈망하는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그런 오해도 불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한 삭개오는 어떤 특별한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불의한 방법으로 모았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가 토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의 4배를 갚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자마자 스스로 회개하는 결단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아마도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가장 많은 물질을 잃어버린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행복했습니다. 비로서 사람 사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예수님의 행동에서 복음의 의미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결단을 확실히 하기 위해 자신의 입으로 예수님 앞에서 선언을 했습니다. 이 변화를 지켜본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놀라운 축복과 신앙의 의미를 가르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함이니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내일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 축복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바로 우리의 삶의 이유가 되며 신앙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삭개오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는 물질의 풍요와 세리장이라는 세상에서 출세한 공무원이라는 직함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적당한 관계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진정으로 사는 기쁨이 어디에 있는가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물질을 남을 위해 쓰는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그는 자신이 물질적으로 가난해진다 해도 예수님과 나누는 이 관계의 기쁨과 가치가 그만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삭개오의 변화를 통해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비밀을 말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 이후 삭개오가 어떻게 살았는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의 추측으로 그는 진정으로 사는 기쁨과 변화 된 인생으로 남은 인생을 누렸을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진정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을 영접한다면 우리는 인생의 새로운 가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누렸던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삭개오의 경험을 통하여 어떤 진리를 발견했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하면 우리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에 고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죄된 성품에는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할만한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예수님에게 집중하게 되면 우리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회복하게 되며 감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탄을 감격으로 맞이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가치와 인생의 가치를 바꾸어 주셨다는 사실은 너무도 큰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과 어려움과 억울함을 당해도 결코 그런 것들에게 지배당하고 살지 않도록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지배 당하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극복하고 승리하는 사람들로 주님은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권합니다. 그 주님께 순종하며 그 분의 말씀을 누리십시요. 그리고 아직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이라고 고백하지 못한 형제자매들에게 권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근심과 고통으로 자신의 인생을 불행으로 몰고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겸손하게 자신의 부족함과 죄된 성품을 고백하며 예수님의 관심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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