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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면의 모든자 보다 온유한 모세 (민 1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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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강퍅한 마음이 얼마나 인간에게 무서운 피해를 주는가는 애굽왕이었던 바로 한사람만으로도 이해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진 바로왕 한사 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을 당하였습니까 그리고 얼마 나 많은 재앙들이 나타났으며 얼마나 많은 장자와 첫 생명들이 죽어갔습니까 그러나 겸손과 온유의 마음을 가지신(마11:28-29) 예수 그리스도 한사람 때문에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위로받고 살고있는 줄 아십니까 이 시간 저는 인간 마음의 한 상태인 온유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주님이 우리에 게 나누어 주시기 원하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는 모세라는 인물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출생과 성장, 하나 님의 부르심을 통해 그가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더 나아가서는 그가 가나안 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이 훤히 눈에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애처러운 상태로 죽 었던 그 마지막도 알고 있으며 심지어 그가 죽었을 때 공중권세 잡은 마귀와 하늘 의 천사들이 영혼을 차지하기 위하여 쟁탈전이 벌어졌던 사실도 유다서의 기록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 매우 준수한 아이였습니다. 그는 동족을 사랑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동족을 학대하던 애굽인을 쳐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까닭에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망명을 해야했으며 광야의 40년 생활을 장인 이드로와 함께 양을 치며 보 내야 했습니다. 그는 달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민족의 지도자로 삼으셨으며 그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게 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어느 날, 그는 호렙산 가시덤불 불타는 숲속에서 하 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였고 그의 정하신 섭리를 따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의 앞길은 결코 영웅적인 대접을 받는 길도 아니었으 며 명성을 얻거나 부귀영화를 누리는 선택의 길을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그는 자 기 수중에 있는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오로지 자기를 명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 고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실수도 많이 저질렀고 흠과 티도 많았으며 혈기 를 내기도 하는가 하면 율법적으로 허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하나님이 들 어 쓰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했을까요.

 사람은 누구라도 사랑의 화살에 맞으면 상대방의 허물과 단점이 보이지 않고 장 점만 보여서 그와 함께 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했으며 역시 하나님께서는 그의 허물을 보시지않고 사랑의 눈에 비춰진 모세의 장점이 마음에 들어 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모세의 온유함 때문이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온유한 성품이 마음에 들 어 그를 능력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의 경우는 실망도 안겨준 인물이지 만 실망을 극복하려는 열심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들어썼으며 바울은 자기맡은 일 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을 냈기 때문이며, 예레미야는 안타까운 일을 보면 마치 자기일인냥 눈물흘리는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경우는 그가 겸손했기 때문이며 이사야는 그의 입 술은 부정한 자였지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 내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며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야곱은 불타는 야망을 가졌기 때문이며 요셉은 불의와 타협치않는 그리고 낙심치않는 강 직함이 하나님의 마음에 든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쓰실 때 애굽의 학문과 무술을 보고 그를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순종심과 온유한 마음으로 인하여 쓰임받게 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백세가 넘은 모세가 저주받은 함족의 혈통인 구스(에디오피아) 여인을 자기 아내로 취하자 그 누이 미리암과 그의 형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기 시 작하였습니다. 요세브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에디오피아사람은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전하여지는데 모세가 어떤 연유에서 구스여인을 취하였 는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폭로시킨 까닭에 장자였지 만 저주를 받아 흑인으로 태어난 함의 후예인 구스여인을 모세가 취하였다는 사실 은 민족지도자로서,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종된 자로서 위치와 입장을 헤아려 볼 때에 도무지 용인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항변을 누이와 형이 모세에게 노골 적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세도 넘는 그 나이에 그것도 이방여인을 그 가운데서도 저주받은 피부색조차 검은 여인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비방은 본문의 기록을 중심하여 볼 때 미리암의 이름이 먼저 등장한 것과 문둥병 이 미리암에게만 임한 것을 보면 미리암이 먼저 비방한 것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 이 같은 여자로서 시샘과 질투는 훨씬 남자보다 크기 때문이며 그러한 자극에는 훨씬 민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를 비방한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모세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겠 다는 것입니다. 그 지도력도 어떤 지위와 신분에 국한되는 지도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지도력을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본문 2절의 내용이 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하고 만 이야기하였느냐 우리하고도 이야기 하셨느니라"는 이 내용을 통해서 보면 아론 과 미리암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들을 가나안으로 영도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세 사람을 회 막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 가운데로 강림하시며 회막 문에 서셔서 충성스런 모세에 대하여 비방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이로인해 즉시 하나님의 진 노가 임하여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제사장으로서 문둥병의 판별자가 되어야 할 아론은 문둥병이 걸려야 할 일 을 저지렀던 안타까움을 보게 됩니다. 그 당시 사회제도 적인 면에서 보면 모세는 비방받을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흑인 노예여자를 아내로 취한것은 더욱 그 러합니다.그때의 사회는 일부다처주의 사회였으며 노예를 소실로 맞아들인다는 것 은 얼마든지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등에 잘못이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민족지도자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해 나가는 책임을 진 거룩한 하나님의 종이요, 백세의 나이가 된 노인으로서 아내를 맞아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지론이었습니다.

특별히 미리암의 생애를 통하여 모세를 조명해 본다면 남동생인 모세자신을 위해 생명내건 모험을 걸었던 미리암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 한다면 모세의 운명을 결정 적으로 뒤바꾸어 놓은 인물이 바로 미리암인 것입니다. 핏덩어리 모세를 역청을 칠 한 갈대상자에 넣어 애굽인의 눈길을 피해 나일강에 띄운 여인이요, 행여나 그 어 린 생명이 죽을세라 끝까지 갈대 숲을 따라 살핀 여인이요, 바로의 딸에게 모세가 발견되자 재빨리 달려가 유모를 필요로 하느냐고 묻고 대답이 나오기가 무섭게 친 어머니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하고 어머니를 유모로서 데려다 줌으로 모세는 진 짜 어머니의 품에서 기적같이 성장하여 애굽궁중에서도 히브리 교육을 어머니에게 서 배웠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길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여인이 동생 모세를 나무라듯이 비방한다는 것은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판단되지만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하여 추호도 용납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세가 비록 실수와 잘못을 통해그의 성 직과 영적권위를 비방받을 수 있는 상태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비방을 받고도 모세는 구 차한 변명을 하거나 자기 신분에 대한 권위로 자기를 합리화하거나 오히려 형 아 론과 누나 미리암의 잘못한 과거의 일을 끄집어 내어 비방하는 공격을 하지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의 온유한 성품이었던 것입니다.

온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바나>라고 하는데 그 뜻은 "마음을 굽힌다." " 뜻을 굽힌다." "굴복한다,절한다,구부린다,낮아진다, 마음으로 허리를 굽힌다."라 깊고 다양한 뜻을 가진 고유명사입니다. 이 말은 겸손,유순,경건함이란 낱말들과 거의 같은 뜻을 지닌낱말이지만 이 말이 쓰이는 상황은 독특하게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낱말은 성경에 불과 몇번 밖에 기록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이 온유라는 낱말이 성경에는 어떤 분들에게 씌어지고 있는가를 살 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사실상 어느 누구에게도 이 온유라는 낱말이 사용되 지 않고 있습니다. 겸손이란 낱말과 유순함이란 낱말, 그리고 경건함이란 낱말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씌어지고 있지만 온유라는 낱말 만큼은 어느 누구에게 도 씌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낱말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만 씌어지고 있 을 뿐입니다.

경손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겸손한 하나님이 라는 표현은 없으며, 경건한 사람이 라는 표현은 하고 있지만 경건한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온 유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음을 시편이나 사무엘하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시편 18:35에서는 "주께서 또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라고 여호와의 구원을 찬양할 때에 시편기자가 기록하고 있습니다.(사무엘하 22:36 참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 품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11:28에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나는 마음 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 으리니"라는 기록의 내용입니다.

또 한번의 기록은 성령의 역사에 대한 내용으로서 갈라디아서 5:22에 나타납니 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성령 님은 온유하신 성품을 가지고 계시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자들은 온유한 성품 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성품으로서는 온유한 성품이 나 올 수 없으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우리는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으며 예수 그 리스도의 온유한 성품을 배워서 우리도 온유해질 수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온유라는 낱말이 성경에서 함부로 쓰이지 않고 매우 국한된 상태에서 그 리고 특별한 경우에만 기록되고 있으나 모세는 이러한 온유를 가지고 있었던 인물 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잘못을 저지른 모세를 비방하는 아론과 미리암 을 오히려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비방을 할 수 있는데도 아론과 미 리암을 향해 불평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모세의 온유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온유는 강하면서도 스스로 약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놀라운 힘 과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렇치 않은 자처럼 허리를 굽히는 자세 바로 그것이 온유 입니다. 그렇습니다. 겨우내 얼어붙은 굳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 그것이 온유 의 아름다운 능력의 비유입니다. 손가락으로 문질러도 뭉개져 버릴 연약한 새싹이 지만 그것은 힘이 있어서 굳어버린 흙덩어리를 재키고 무서운 힘으로 땅을 뚫고 올라옵니다. 그렇다고 연한 새싹이 뭉개졌다거나 부러진 상태도 없이 연한 새싹 그 대로 땅위에 나타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 로다."(시 37:11)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온유한 자는 미련하게 느껴지고 바보스럽게 평가되기도 하고 무능력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강한 자가 차지 할 것같은 땅을 그들이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기업을 이어갈 수 있는 자는 곧 온유한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은 온유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온유한 삶을 살았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그 가 무려 40년동안이나 처가살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온유한 성품때문에 어 떤 불화나 불목하는 일 한번없이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년에 얻은 아내 때문에 아론에게 비방을 당하였습니다. 아론은 시내산에 서 십계명을 받기위해 40일 동안 모세가 산에 있을 때 금덩어리를 거두어 애굽우 상의 상징인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며 모세를 대항하던 자입니다. 그런 일을 생각 해보면 모세의 온유한 성품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용서해 줄 수 있는 자가 아니었 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을 한마디도 아니했을 뿐만아니라 과거의 일을 들추며 "나는 형이 우상 섬기는 것을 이해했는데도 나의 노년에 행한 이일 하나를 이해 하지 못하느냐"고 대들지도 아니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진정한 온유의 소유 자인 것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성삼위 하나님 외에는 지면에 온유한 자가 없었으나 그러나 모세는 온유했습니 다. 물론 지면에 온유한 자가 있었다는 추측을 본문을 통해서 엿볼 수는 있으나 지 면의 모든 자 중에 가장 온유한 자는 모세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온유할 수 있었 던 힘은 남을 중상모략하는데 자기의 귀를 열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신의 눈과 귀와 입을 오로지 하나님에게로만 향해 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온 유하면서도 자기의 길을 굳굿이 걸어갈 수 있는 불굴의 투지와, 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믿음의 큰 용기와, 어떤 비웃음과 조롱을 받아도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지면의 모든자 중에서 가장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는 민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고 능력의 종으로 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으며 비방을 받을 일을 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변호하시 며 비방하는 자를 물리쳐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 우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유를 배우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온유의 열매를 맺는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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