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 (마 08:5-13)

첨부 1


인간이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위대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예수님을 크게 감동시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크신 기적을 베풀어 보답하여 주셨는데우리는 이 일들을 살펴보아 배워야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절대주권을 시인한 백부장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주권자로 시인한 로마의 백부장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철학자나지도자 또는 위대한 개혁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정도의 분이 아닙니다. 에수님은 하늘과 땅의모든 권세를 다 가진 절대주권자로서 이것을 시인할 때 주님이 크나큰기쁨으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동네에 들어가셨는데 로마의 백부장이 와서 예수님의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식민지 이스라엘의 점령 통치 주둔군인로마의 백부장이 만인의 눈앞엔 길거리에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예사스런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같은 행위는 평소에 볼 수 없는 것임은 물론, 상부에 보고되면 백부장에게 큰 문책이 내릴 위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부장은 서슴지 않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는 예수께 무릎을 꿇고 내 집에 중풍들린 종이 있는 큰 괴로움을당하니 고쳐주소서'하고 절하며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이 행동으로 보아 백부장은 상당히 사랑이 많은 군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백부장에게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누추한 저희 집에 오실수가 있습니까 한마디 말씀만 해 주십시오. 저도 남의 수하에 있고제 밑에도 군사가 있으니 저들 보고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시고 감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둘러선 사람들에게 '내가 온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장차 하늘나라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동서에서 많은 사람이 이르러 천국을 즐기겠지만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에게는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고 하시자 즉시로 중풍을 앓던 종이 깨끗이 낫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하고도 굉장한 것을 보여줍니다. 권세가 어떤 것인가를 극명하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권세'의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백부장이 가진 권세의 배후에는 로마정부의 권세가 있습니다. 로마의 권세란 로마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치,경제,군사력을 총 집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부장의 명령을 거역하면 로마의 권세에 항거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로마의 권세가 이런 사람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권세를 대적할 때는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이 권세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권세는 말로써 그 위력을 나타냅니다. 폭력으로 밀고 당길 필요가 없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권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지도자나 개혁가 정도로 알았지만 백부장은 그가 하나님의아들이심을 알았기에 예수님의 권세야말로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위대한 창조주의 권세라는 것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백부장은 예수님께 '예수님, 주의 말씀 한마디면 천지만물이 다 만들어지는데 저희 집까지 오실 필요가 있습니까 말씀만 해주시면 병이 깨끗이 사라질 줄 믿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한 위대한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어떠한 권세를 가지고 계실까요
먼저 예수님은 창조주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로 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천지만물 중에 하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미치지 않고 만들어진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만물의 보존주이십니다. 성경 히브리서 1장 1절로 3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고 예수그리스도에게 모든 만물을 다 상속으로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권능의 말씀으로 지금 천지만물을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마태복음28장 18절로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부활해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놓고 주님의 실상을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모시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고백하는 사람은 그 말씀의 배후에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권세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할 때에 권세있게 말해야 한느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길 '내가 네게 뱀과 전갈을 밟으

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능력과 권세라는 말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능력'이란 '두나미스'라고 해서 힘을 말합니다. 자동차나 비행기에는 두나미스가 있습니다. '권세'라는 것은 '익수지아'인데 이는 '두나미스'인힘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경찰관은 힘이 없지만 힘이 있는 자동차를 호루라기 하나도 중지시킵니다. 경찰드은 힘보다 더 강한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늙어 몸이 약해졌을지라도 힘있는 자식들을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갑니다.
자식들은 '두나미스'즉 힘이 있지만 부모님들은 '익수지아'즉 권세가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눅 10:19).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 안에서 권세있는자로서 모든 마귀와 귀신을 말 한마디로 내어 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실상을 알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쫓아내어 영광 가운데 살도록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백부장이 그리스도의 권세를 알고 말씀 한마디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줄 믿었기에 그리스도는 크게 기뻐하셔서 그의 종의 병을 고쳐주신 것자비니다. 오늘 이 시간 백부장과 같은 믿음으로 주 앞에 나와 '주여말씀 한마디만 하옵소서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확신을 찬 기도를 드리고 응답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
시돈 지바에서 헬라인 수로보니게 여자 한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뛰어나왔습니다. 그는 고함쳐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까지 간청했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전에는 아직 이방인의 때가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 여인은 이제는 직접 예수님 앞에 와서 절하며 간청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아주 냉정히 말씀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럴때에도 이 여인은 마음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가 말하길'주여,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예수께서 크게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가 예수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확고히 믿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간절히 찾는 자를 주님께서는 멸하시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그리스도는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끈질기게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가질 때 주님은 감동하신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주님께서 외부적으로 볼 때에는 쌀쌀하게 거부하는 것 같지만 속에는뜨겁게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낙심하지않고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크게 감동하셨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개라는 소리를 듣고는 '치료 안해주면 안했지 이렇게 사람을 무시해뭐개라고, 사람 잘못 봤어'라고 말하고 시험에 들어 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고난이 다가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오, 주여! 우리를 왜 이렇게 내버려 두시나이까'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파도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주님은 절대로 나를 사랑하신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주의 사랑을나는 믿고 따른다.'고 하면 주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이성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하고 끈질긴 신념을 가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행동하는 믿음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집에 들어가셨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곳에 한 중풍병자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주님께 오려고 했지만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풍병자가 말했습니다.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내고 거기를 통해서 나를 줄로 예수님 앞에 내려라'

남의 지붕을 헌다는 것은 남의 살림을 다 망치는 것인데 주인이 가민히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중풍병자는 '내가 다 물어 주겠다. 만족할 만큼 물어줄 터이니 지붕을 헐라'고 말했습니다.

이 들것에 실려 온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치료를 그냥 믿기만 한 것이아닙니다. 그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는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낫는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위험하게 들것에 실려 지붕에서 내려올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또 그만한 행동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집 주인에게도 충분한 값을 지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허니 사람이 빽빽한 그 위로 그대로 먼지가 쏟아집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사람 머리 위의 지붕을 헐다니 이게웬 난리냐' 고 고함을 치며 야단이 났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아무말씀도 안하고 계셨습니다.

모두가 먼지로 세례를 받고 더구나 예수님 바로 위로 구멍을 뚫었으니 예수님도 먼지를 듬뿍 쓰셨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그 먼지를다 덮어쓰시고 가만히 계셨습니다. 주님은 행동하는 믿음을 볼때는크게 감동하시는 것자비니다.

이 사람은 입술로만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믿음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죽은 믿음입니다'라고 이 사람은 산 믿음으로 모든 위험과 불만을 무릎쓰고 예수님앞에 줄에 매달려서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도 우리의 믿음을 보시길 원하십니다. 속에 숨은 믿음은 가능적인 믿음이지 실천적인 믿음은 아닙니다. 큰 믿음이나 작은믿음이나 눈에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행하지 않고 어떻게 눈에 보일수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 사람의 믿음을 보신 다음 즉각 말씀하셨습니다. ' 이사람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갈 때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과 교법사들, 바리새인들이 속으로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하나님 외에 사람이 어떻게 감히 사랑의 죄를 사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이 참람하구나'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각을아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사람보고 죄 사함 받았느니라 하는 것과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 하는 말과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로 하니 눈에 안보여 거짓말같지그러나 이 사람이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눈에 보이므로 불가능한 것으로생각되지 않겠지 내게 죄를 사해 주는 권세가 있으니 증명하겠다'고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너의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고하시자 그는 순식간에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걸어나가니 모든 사람들이 길을 환히 비켜주며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감탄했습니다. 예수님을 비난하던 유대인들, 바리새인들, 교법사들의 입을철통같이 닫혀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죄사함과 병고침을 한데 묶어놓은 것은 그리스도의사역에는 반드시 죄사함과 병고침이 같이 온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위함입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면서반드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습니다. 귀신을 좇아냄과 병고치는것은 죄 사함과 똑같이 주는 은혜로 손바닥과 손등과 같은 것입니다.

치료는 죄 용서함의 복음과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하와가 타락해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다음 사망이 와서 병이 들게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 용서함을 받게 되자 이제는 치료와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용서와 구원과 치려와 평강이 반드시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 중풍병자는 행동하는 신앙으로 주님 앞에 나왔기 때문에 주님이 크게 감동하사 그를 축복하고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행동이 예수님의반응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절대주권자인 예수님, 의심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 그리고실천하는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을 살펴보고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의 불신앙을 내어쫓고 무지를 내어쫓고 행동하지 않는 신앙을 내어쫓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오늘도 주님은 그 위대한 기사와이적으로 우리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얻되 넘치게 얻는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