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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의 첫째날 (창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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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라사대

원어(와요멜 일로힘)의 의미는 “또 하나님이 말씀하시니라”이다. 이 말은 6일 창조기사 가운데 10회나 사용되는 것으로 신인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 표현중 하나이다. 이런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 이유는 시공세계의 언어권에 속해 있는 저자가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의 본체에 관해 언급할 때 직면할 수 밖에 없었던 신적 언어의 빈곤성 때문이었다. 또 한이유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시니라”는 귀절은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인격신임을 보여주며 동시에 창조된 사물과 하나님이 엄격히 구분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말씀하셨나 Luther는 하나님이 자기 안에서 말씀하신 것이요, 따라서 이 말씀은 신적 본질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내면적으로 말씀하신 결과가 되며 따라서 “가라사대”란 “생각하셨다”는 의미와 동일성을 내포한다. 또한 그의 명령은 일시적인 효력을 지니지 아니하고 영속적인 효력을 지니게 된며 무에서 유를 창조함을 말할 수 있다.

빛이 있으라

원어(예히 오르)로는 “빛이 있을지어다”는 히브리 동사에 있어서 독특한 용법인 3인칭 간접명령으로 나타난다. 이 명령은 어둠으로 뒤덮인 하늘과 땅이 창조된 직후 주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그럼 여기서 빛은 어떤 빛을 말하는가
(1) 어거스틴과 많은 주석가들은 이를 본질상 물질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자만 이 빛은 본질상 물질적인 것 이외에는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빛에 의해 땅에 낮과 밤이 왔으며 아침과 저녁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2) 할레이(Halley)와 머피(Murphy)는 이 빛을 태양 빛 자체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는 성경의 본 의미에서 멀다. 왜냐하면 본문은 어둠 가운데 “빛이 있으라”하시매 “빛이 비로서 있게 되었으며” 광명이 없던 가운데 “광명을 만드사” 비취게 하셨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3) 결과적으로 이 빛이 영적인 빛이 아니며 태양 자체에서 비치는 빛도 아니라면 물리적인 빛으로서 태양과 분리된 상태에서 비치는 빛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 견해는 Calvin, Leupold, Keil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지지된다.
Calvin이 말한바와 같이 빛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매개체 없이 공간에 위치되 수있다는 그의 주장에는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다. Leupold의 주장처럼 완성된 광명이 창조되기까지 태양은 어두운 천체에 불과했고 빛은 별도로 존재해야만 했다. 즉 성경 자체가 본절의 빛과 14절의 광명을 엄연히 구별하고 있는 이상 완성을 위해 준비되는 창조 과정이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R.Davidson은 하나님에 의하여 보내진 빛은 혼돈의 어둠을 없애기 위함이며, 그 결과로써 질서있는 우주를 실현하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바벨론의 전설에서 유추해온 해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지될 수 없다. 성경은 “빛”이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상호 교체되기 위해 창조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빛이 있었고

여기서 본절 이후에 사용될 성취의 표현인 “그대로 되니라”의 예시로서 사용된다. 이 성취어들은 주로 “하나님의 가라사대”뒤에 수반되며 하나님의 명령이 지체없이 즉각적으로 성취된 사실과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표현한다.

본절에서는 첫째날의 두번째 창조사역을 소개한다. 빛은 이후에 창조되는 모든 피조물들이 존재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선재요소가 되고 있다.

4 절 빛의 판정 및 빛과 어둠의 분리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일반적으로 비평가들은 하나님이 빛을 지으신 후에 “그것이 좋았더라”고 판정하셨음을 주지시키면서 어둠을 보시고 좋았다고 하시지 않고 빛을 긍정적으로 판정하신 것은 어둠은 죽음과 상통하고 빛은 생명과 상통하기 때문이며 또한 어둠은 무질서와 빛은 질서와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둠 아닌 빛에 대해서만 좋다고 판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신 바에 대한 성취가 완전한 것이었음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2) 빛의 창조는 어둠의 창조의 완성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즉 빛 없는 어둠은 홀로 완전한 창조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좋았더라”고 하심은 자신의 일을 주의깊게 살펴보시는 그리고 그 결과에 깊게 관심을 가지시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드러내는 신인동형론적 표현이다.
그럼 이 판정이 나타내는 의미는 무엇인가
첫재로, 창조의 완전성이고 둘째로 계시의 완전성이며 마지막으로 물질의 선성(善性)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본문에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는 빛 자체와 어둠 자체의 구분을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첫째 동일 장소 동일 시간에 양자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하나만 기능을 나타내게 된 것을 의미한다. 둘째 빛과 어둠이 뒤섞여 있거나 한 쪽에 의해 다른 한 쪽이 제거되지 않고 도리어 서로에 의해 고유의 기능을 발휘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둠은 제거된 것이 아니라 빛이 나타나기 위한 배경이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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