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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시 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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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8편은 다윗이 읊었떤 찬송시를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에서 우리의 중심을 끄는 말씀 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라는 시의 서두입니다.

사람은 마음먹기 따라 태도가 결정됩니다. 제아무리 극한 슬픔이라고 해도 마음을 어떻게 정 하느냐에 따라 게속 슬픔에 빠질 수도 있고, 그 슬픔을 극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허락할 것인가, 안할것인가, 줄 것인가, 말 것 인가 등으로 고민하다가.... 일단 마음을 정하고 나면, 행동은 저절로 뒤따르기 마련인 것입니 다.

본문에서 다윗은 마음을 정했는데, 그 정한 마음이 세 가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 찬양하며 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1절과 2절에서 그는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본래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정규 음악원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뛰어는 시창력과 연주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시를 창작했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으며 자작시에 곡을 붙여 연주하고 노래하 기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그는 노래하는 자신의 삶을 소년시절의 감상으로 국한하지 않고 일생동안 계속하겠다 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태도를 심령으로 찬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 는 것도 입술로 부르는 경우가 있고 심령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입술로 부르는 찬양은 듣는 사람의 귀를 감미롭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으로 부르는 노래는 듣는 사람들의 영혼을 뒤흔들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령으로' 라는 말씀의 뜻은 '영광을 다 바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대적들에게 쫓기는 고통을 겪었는가 하면, 아들의 반역으 로 가슴을 찢기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 렇게 그렇게 해서 겨우 차지한 영광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 다. 성경을 보면, 이와는 아주 대조가 되는 다른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입니다. 그는 별 탈 없이 백성들의 요청에 의해서 어느 날 갑자기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으 로서 누릴 수 있는 권세와 영광은 대단했습니다. 그는 그 영광을 길이 누리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도 그 영광을 양보할 수 없었고, 틈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마저도 자신이 누리겠다는 착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울왕조는 몰락했고, 영원히 영광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심령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 양하기로 마음을 정한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정성과 사랑과 재능과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 영혼의 노래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좀 우스운 얘기 같지만,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 가보면 알몸에 팬티만 하나 걸치고 있는 사람 을 만나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의 한편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강도일 것 입니다. 임종 전에 그가 입은 옷, 그대로 일 것 같습니다. 사실 그는 생전에 예수님을 위해 한일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죽기 직전에 예수님께 " 당신이 낙원에 이를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요" 라는 한마디로 낙원에 초대를 받았을 뿐입니 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구원 보다도 구원 그 이후입니다. 이미 예수를 알았고 그를 믿고 살아가 는 우리에게는 이제는 그가 주실 상급을 위한 수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그런 과정에 서 있다 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찍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만큼 일할 기회와 시간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아무 한일 도 없는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가르켜 건축으로 비유하면서 거기에는 나무나 짚이나 풀로 집을 짓는 자 와 금은보석으로 짓는자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주를 위해 투자한 시간과 건강과 재물과 모든 것들은 금은 보석으로 남을 것이며, 단지 육신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의 재미와 만족을 위 하여 투자된 것들은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단지 잿더미를 남길 뿐입니다. 그것의 가치가 시험받기 위해 불로 태움이 있겠고 거기에 남은바 되는 것이 상급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의 구호는, 본문의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마음을 정 해야 할 것입니다.

2. 새벽을 깨우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2절을 보면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일찍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루의 일과를 주님과의 교제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다른 사람을 깨우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소리가 없어졌습니다만 교회의 은은한 새벽 종소리는 잠든 사람들을 깨우곤 했습니 다. 새벽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은 거리를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신문을 돌리는 사람들도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시내버스, 전동차, 택시기사들도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새벽제단에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은 잠든 민족의 양심과 혼을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시들고 마모되고 죽어가는 이 민족의 양심과 정신을 깨우는 새벽 종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에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어느 주일 아침 주일학교 아이 하나를 붙 잡고 물었습니다. "얘 토미야! 넌 여리고성이 어떻게 무너졌다고 생각하니"라고 어떻게 배웠을까하는 것이 궁 금해서 물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는 갑자기 긴장을 하더니 "목사님 전 절대로 아녜요, 전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일이 없어요 전 그 곁에 가본 일도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기가막혔습니다. 도대체 선생이 어떻게 가르쳤길래 그런가 싶어서 그 선생님을 불러 서 물었습니다. "수잔나 선생, 내가 조금 전에 토미에게 열리고 성이 왜 무너졌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여리 고성 곁에 가본일도 없다며 자기는 결코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잡아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 요" 이 말을 듣던 수잔나 선생은 "목사님 그 애 말이 맞을꺼예요, 그애는 절대로 성을 무너뜨릴 애가 아니예요, 그 애는 착하고 얌전하거든요"라고 대답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예배후 당회가 모인 자리에서 그 얘길 꺼냈습니다. "장로님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여리고성이 왜 무너졌느냐고 하니까, 토미는 성 곁에 는 가지도 않았다고 잡아떼고 수잔나 선생은 그 애는 절대로 성을 무너뜨릴 만큼 힘도 없고, 얌전하다고 하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재정담당 장로님이 "목사님, 이미 저질러진 일을 어떻게 하겠습 니까 누가 무너뜨렸건 교회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 재정으로 수리하도록 하십시 다"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도 깨어 있고,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노래하기를, "나는 새벽을 깨우기로 마음을 정하였노라!" 하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먼저 깨겠다는 것이며, 내 가족을 깨우겠다는 것이며, 내 민족을 죄의 잠과 영 혼의 깊은 잠에서 깨우겠다는 것입니다. 롬13:11절 말씀에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라고 했습니 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3.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3절을 보면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라고 했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에, 무우를 심었더니 어찌나 잘되었는지 거의 사람 몸만한 무우를 뽑게 되었던 것입니 다. 농부는 그 고을을 잘 다스려 주고 있는 원님의 선정 탓이라 생각하고, 그 무우를 원님께 가져다 바쳤습니다. 원님은 이 농부의 감사하는 마음을 무엇으로 보답할까 생각하다가 하속을 불러 근래에 들어 온 것중에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최근에 큰 황소 한 마리가 들어온 것이 있다 고 알려 주었습니다. 원님은 그 황소를 농부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이런 소문이 온 동리에 퍼지자, 이를 배아파 하는 악한 농부가... 무우를 바치고 황소를 얻었 으니, 황소를 바치면 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원님께 황소를 바쳤습니다. 원님은 고맙다고 하면서 관가에 들어온 것중에 근래에 제일 귀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다 주라 고 했는데, 이는 지난번에 들어 온 무우였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어떤 댓가를 기대하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님을 비유로 설명한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진실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부터 드리는 감사가 참 감사인 것입니다.

인천 어느 교회에 목사님은 매주일마다 설교전에 기도를 하는데, 꼭 날씨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화창한 날씨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적당한 비를 주셔서 대지를 적시어 주시듯이 오늘은 성령에 단비를 내려 주실 줄 믿으며 감사합니다...." 하면서 늘 날씨와 관련지어서 기도 를 해서 교인들이 다 아는 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마철, 어느 주일날에는 11시 예배가 시작된지 1시간 전부터 장대같은 비가 The아졌 습니다. 계속 쏟아진 비 때문에 11시 10분이 지나도 3백명쯤 모이는 교우들이 50명밖에 모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교인들은 저마다 말하기를, "오늘은 우리 목사님이 날씨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드릴까" 하고 제각기 입을 모아 한마디씩 했습니다. 이윽고 한참을 지나서 예배가 시작되었고, 목사님이 기도를 하는데.... "날씨를 주관하시는 하 나님! 일년 52주 동안 오늘 한 주일만 이런 장대비를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만약 하나 님께서 매주일 이런 비를 주시오면 저희들은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 수 있겠 습니까" 하면서 결국 감사로 기도를 드리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전 5:18절 말씀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 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범사에 감사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 랍니다. 골 3:12-17절 말씀에도 보면, "감사하는 자가 되라"(15절)고 말씀하면서,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16절),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절) 고 세 번이나 명령 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금년 한해를 출발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본문의 다윗과 같이 세가지를 마음에 작정해야 하겠 습니다. ①찬양하며 살기로 마음을 정하고 ②새벽을 깨우기로 마음을 정하며, ③감사하기로 마 음을 정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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