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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조상(아브라함) (롬 1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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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한번 이야기해서 깨닫고 바로 행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그렇고 세상에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래 교회에 다닌것도 아니고,많이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성경을 바 로 깨닫고 바르게 믿는 것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듣고 들어도 잘 알지 못하고, 배운것 같은데 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교육이 필요합니다. 한번 이야기 해서 알아듣지 못하면 두번 이야기 하고,그래도 안되면 또 해서 확인시키고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이렇게 반복해서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을 봅니다.

본문에서 보더라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느니라는 말을 3,5,11,13절에 반 복하고 있습니다.또 반복법의 대표적인 예가 복음서입니다.마태복음에서 말한것을 마가복음에서 또 말하고, 누가복음에서 반복하고,요한복음에서도 같은 복음을 말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교회에서 다니면서 잘 믿지 않고 말썽을 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으시오하면 아-멘하고 그대로 행하면 되는 데, 저기서 들으니까 그렇지 않 은데, 이 책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는데, 전에 다 해보았는데.... 하면서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쓸 당시에 이런 문제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고,구원 을 받는다고 하니까 우리 조상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 는데하면서 자꾸만 다른 길로 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향해서 반복해서 이신득의의 진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는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가르치는데 착한일을 해라,용감한 사람이 되어라,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고 이야기만 하면 아이는 어떻게 하면 착하고,용감하고,훌륭한 사람이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그러나 이 아이에게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하신 남기신 훌륭한 업적을 이야기 해주면 흥미있게 들을 뿐 아니라,"우리 할아버지가 했던대로 따라서 하면 되겠구나"고 쉽게 이해하고 또 쉽게 배울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대표적인 사람이요, 유대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서 "아브라함도 자신의 의로 구원을 받고,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믿 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브라함이나,다윗을 너무나 위대하게 생각합니다.성서에서 자주 인용 하고,그들의 행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단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하나님 앞에 인정 받았다는 것을 성서는 말하고 있을 뿐입 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아브라함을 인용하는 것은 아브라함을 모르는 유대인들이 없 습니다.그래서 아브라함 이야기를 하면 못알아들을 사람이 없이 다 이해 할수 있 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는 성경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돼지새끼를 보라"고 번역했다고 합니다. 그 나라에는 양이 없기 때문에 양을 보라고 써 놓으면 아무도 그 의미를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서 제사지낼 때 드리는 돼지를 대신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야기를 하면 유대인은 어린아이라도, 잠결에라도 다 알아듣기 때문 에 바울은 장황하게 그를 예로들고 있습니다.

돌덩이처럼 마음이 굳어진 유대인들조차도 받아들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과연 의로 의롭다함을 얻었습니까

1.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니다.1-8

1절에 보면 육신으로 ....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라고 했고,2절에서는 행위 로써....자랑할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육신은 내가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갈수 있는 자랑거리를 말합니다. 행위도 마찬 가지의 의미입니다.내가 무엇을 이루었다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내 놓을 만한 것 이 될 것입니다.

 3절에서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성경은 창세기를 말하고, 특히 15장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80이 되어도 혈육이 한점 없으니까 한심했습니다. 한숨을 쉬고 있는 그를 하나님이 밖으로 불러 내셨습니다. 그리고 저 하늘의 별을 셀수 없을 진데 네 자손도 셀수 없을 것이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허황된 이야기입니다. 구름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으니라고 했습니다.도대체 믿을수 없는 말을 듣고 아 멘,아멘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알수 없습니다. 아주 모호하게 밖에는 알수 없습니다.그러나 하나 님이 말씀하시니까 아-멘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셨습니다.즉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2000년 후에 예수님이 오실 것을 알았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 께서 결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8:56절에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것을 즐거워하고,보고 기뻐 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장차 될일을 보고 예수님의 오심을 바라보고 믿으니까 하나님은 의로여기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예수 믿기가 더 쉽습니다. 아브라함은 앞으로 될일을 바라 보면서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함 가운데 믿었지만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역사 적으로 확인하면서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의로 여기시는 것은 오직 이 예수를 바라보고 믿는 것입니다.

다른 아무것도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자랑하지 마세요.

내가 무엇을 드렸으면 잊어버려야 합니다.그것을 자꾸 이야기 하면 하나님께 자 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큰 일을 했어도 잊어 버리고,십자가와 예수님 만을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 다.

 2.아브라함은 할례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9-12

10절에 보면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즉 아브 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어제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할례를 받기 전에 14년전이었습니다.그러니까 할례와 구원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 증명됩니다.그러면 할례는 하나님이 받으 라고 해서 받았는데 할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있는 백성이되고,기업을 받은 자로서의 증표로서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11절에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을 된 의를 인친 것이니" 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유대인 너희는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되고, 하나님의 백성 이라고 하는데 할례와 구원은 아무상관이 없다는 것을 바울은 증명하고 있는 것입 니다.

 할례는 지금의 세례와 같다고 할수있는데 여러분!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세례를 받습니까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세례를 받습니까 물론 죄사함을 받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구원은 하나님을 믿는 그 순간에 받습니다. 세례는 그래서 하나님의 성도된 증표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영세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우리와 다릅니 다.

 서울대학교 학생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 서울대학생이 아닙니다.시험을 치 룬 다음에 받은 학생증이라야 효력이 있고,그가 서울대학생임을 증명하는 역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교육전도사로 일하던 인천의 매화교회에 건달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 은 연고전만 열리면 신이 납니다.어떻게 구했는지 연세대 학생증을 가지고 연고전 이 열리는 동대문운동장에 열심히 쫓아 다니면서 응원을 하고,또 자랑을 하고 다 닙니다. 그가 연고전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면서 웃기도 했습니다만 속으로 얼마 나 측은한 생각이 드는지....

그리고 그를 조롱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나의 두 어깨가 더 무거워짐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한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시고,그 증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3.율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닙 니다.13-17

아브라함이 율법의 해라,하지 말아라를 지켜서 의롭다함을 받았다면 그는 율법 의 시대에 살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브라함이 살던 창세기 시대에는 율법이 없었습니다.율법은 그 훨씬 후인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얻은 430년 후에 주셨습니다.

 13절에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 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즉 예수를 통해서 세상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는 언 약은 율법이 통해서 된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법을 지키고,저 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교회생활을 잘하고,교 회법을 잘 지키고,봉사를 많이해서 의롭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습니까 시편 32절 7절-다윗이 자신의 죄를 깨끗이 씻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눈감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까

다윗이 죄를 짓고 밤잠을 모자고 바짝마르로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그 러던 중에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내 가 죄를 가지고 아무리 씨름을 해고 소용이 없다. 하나님이 용서해 주셔야 해결이 된고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면 의인이 될수 있다고 생각하고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다윗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에서는 율법이전 사람이나, 이후사람이나,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 음으로 의지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다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지금은 우리의 허다한 증인이 되어 우리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끝으로 4-5절에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하고 돈을 받는 사람은 아무리 주어도 감사가 없습니다.노사분규의 현장에 가 보세요.적게 주어서 불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넘치게 주어도 불만은 계속됩니 다.

 5절에 일한것 없이= 행위가 옳지 못함, 경건치 아니한자= 성품이 나쁨.

이런 나를 의롭게 여기심은 즉 일하지 아니한 사람에게 두둑하게 일당을 준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여긴다는 말이 로마서에는 수없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해 버리신다 는 말입니다.

 깨끗하지 않은데 깨끗하다고, 죄인인데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6절에는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라고 말합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이 같는 느낌입니다.

마음을 짖누르는 죄책에서 해방되는 기쁨, 아무 자격도 없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시는 감사가 넘쳐서, 가슴 속에 있는 불만도, 억울함도,짜증도 다 사라지고 평안함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세상이 다 어두워 보였는데 이제는 밝은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어느 밀수꾼이 예수를 믿었습니다.은혜를 받고 구원의 확신을 받은 다음에 너무 기뻤습니다.감격이 넘쳤습니다.그는 교회를 나와서 어느 으쓱한 골짜기로 가서 숨 겨 두었던 자루를 하나 꺼냈습니다. 거기에는 은허에서 찍여서 한번도 사람의 손 을 거치지 않은 엄청난 거액이 있었습니다.그는 이것을 가지고 화장실로 가서 돈 뭉치를 밑으로 던집니다.

이 때를 그가 고백하기를 "돈뭉치가 오물속으로 떨어질 때마다 나의 마음 속에 서는 기쁨이 가득차 올랐습니다."고 했습니다.

 이 기쁨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495장을 부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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