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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과 불로써의 세례 (롬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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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12)”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말씀하시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으로 자신을 말씀하고 있다.
세례란 과연 무엇인가 세례란 동일화, 동질화(idenfication)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공생애를 세례받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 영광을 잠시 보류하시고 죄인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죄는 없으신데 죄인인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죄인과 등등시 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원래 우리 인간이 죽어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케 하는 자리로 초대하는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한의 물세례를 받으심으로, 그 물세례 아래 친히 들어가심으로 자신도 죽어 마땅한 인간들과 동등한 위치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표하여 그 죄를 한몸에 지고 돌아가셔야 우리 인류의 죄가 속죄되는 것이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지 않으시고 인간과 동등시 되지않는 상태에서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의미로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바 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물어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7,38)”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요한의 물 세례에 동참하심으로 죄인과 동일시 되었듯이,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그의 길에 ‘동참한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다.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그분과 동일시 됨으로써 우리도 죽음을 이기고 역시 부활할 것이다. 이 시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세례란 우리를 누구와 연합시켜 어떤 자리로 통과시키는가의 방법이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0-21)” 물은 모든 육체를 그 아래 삼켜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배만은 유일하게 물이 없으면 뜨지 못한다. 이와같이 물은 어떤 것에는 사망을 초래하고 어떤 것에는 힘이 되기도 한다. 우리 자체로서는 물로 인해서는 그 아래 삼켜져서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배 안에 있자 물 위로 뜨게 된다. 우리 때문이 아니라 배 때문에 뜨게 되는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는 홍해가 있다.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 여기에서 모세는 유일하게 홍해를 건널 수 있는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스라엘 족속이 모세와 합하여 건너면 무사히 홍해를 건널 수 있다. 이제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써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이란 물과 대조를 이루는 말씀이다. 불은 우리 모두를 심판 아래, 사망과 멸망 아래 가두게 하는 역할을 한다. 불은 태우는 것, 즉 가치없는 것을 태우고 생명 아닌 것을 소멸시키는 심판을 말한다. 불이 심판을 의미하는 것은 물이 물 위에 뜰 수 없는 것을 그 아래 삼켜 가두는 것과 같은 부분을 설명한다. 물은 뜰 수 없는 것을 가두는 것 외에 다른 한편 배를 띄운다. 물이 가두면서 또 배를 띄우듯이 동일한 역할을 성령이 감당하신다. 세례를 줌으로써 우리가 나 자신은 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을 자, 심판을 받을 자들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방주 안에 들어감으로써 물로 말미암아 그것 위에 뜰 것을, 세상으로부터 분리될 것을, 분리된 자들인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친히 주시는 ‘성령과 불’ 세례는 불에 타버릴 것들로 불로 태워 없이 하고 성령 안에 들어가 하나님과 같이 있는 자로서의 그 일이 신앙고백적으로 동참하는 자임을 하나님께서 인치시며 또 우리에게 신앙고백으로 요구하시는 세례인 것이다.
그러면 성령은 물이 방주를 띄운 것과 같은 그런 역할을 어떻게 요구하는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롬 8:9-10)”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는 성령이 계신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둘이 연합이 되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성령과 우리가 연합하면 나는 혹시 죄, 저주, 사망 아래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성령은 절대로 그러실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를 죄와 사망과 저주로부터 꺼내실 보증으로 와 계신 것이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이 밖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오직 내가 예수를 믿으며 주라 시인하여 그 앞에 무릎 꿇는 것으로 밖에 확인이 안되는 이런 의미의 성령의 내주가 바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할 때의 바로 그 성령세례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성령을 죄와 사망으로 묶을 수 없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면 그와 동일시 된 우리 역시 죄와 사망으로 묶을 방법이 없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러 오셨고 또 그 일을 이루셔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셨으므로 가능케 되었다.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면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신다. 우리가 죄범한 연약한 존재, 죽을 육체로되 우리 안에 계신 그 영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우리도 또한 살리실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일차적인 성령세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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