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거절당하신 예수님 (사 53:1-3)

첨부 1


지금부터 1995년 전, 기원전 4년경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조용히 탄생하셨습니다.

구약 창세기 3:15절에서 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말씀하신 이후로 수많은 선지자들과 당신의 종 들의 입을 통하여 죽음의 깊은 밤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인생들을 구원 하실 구속자에 대하여 계속하여 예언하시고 말씀해 오셨던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창조되기도 훨신 이전에 이미 이것을 예정하셨던 것입니다.

유대민족은 하나님의 택함받은 선민으로서 이 구원자 메시야를 그 조상적 부터 학수고대 해오던 바 였습니다.

그토록 고대하고 바라던 메시야,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토록 가장 중요하 게 여기셨던 대 우주적인 사건이 마침내 현실로 그 형체를 드러내시는 그 첫 순간에 만물이 숨을 죽이고, 산천초목이 긴장하고, 온 우주의 별들이 우주의 주인되신 분이 한 작은 지구에 오신는 이 사건을 징조로 빛을 비추 고 있어던 것입니다.

지구상의 인생들을 위하여 그 높고 크시고 거룩하셔서 더러움과 악을 모 르시는 그 분게서 감히 이 누추하고 땀 냄새 인간 냄새 물씬 풍기는 이 곳 에 오시다니....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모든 족속과 각 지역에서 이 하나 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기 위하여 수년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하 여 지상 최대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우주적인 환영식을 거행하여 마땅한 일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의 왕이신 그 분은 거절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철저히 무시를 당하셨던 것입니다.

구약의 4천여년의 세월동안 가장 강조해 오신 말씀과 예언이 바로 이 주 님의 오심이었습니다. 이 예언을 들어왔던 유대인들도 한결같이 이 왕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성탄을 당했을 때에는 아무도 오실 그 분이시 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마2:3절에 "헤롯은 이 소식을 듣고 심히 불안 해 하였으며,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 소문을 듣고 술렁거리기만 하였습니다." 메시야가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예측하여 준비했어야 할 유대 백성들은 한 사람도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러고도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어기지 않은 것을 자랑하고 앉았으며,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가장 성경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였던 것입니다. 그 자랑과 그 자부심이 이 하나님의 최대의 사건 앞에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 까 부끄럽게도 성경을 잘 모르는 동방의 우상에 익숙한 별점에 익숙한 이 방의 박사들이 그 사실을 눈치채고 수많은 시간과 정성을 드려 먼 길을 찾 아 왔던 것입니다. 집안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던 그들 유대인들은 이 박사 들의 말에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하였습니다.

분명히 성탄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건만 성탄의 주인공인 예수님에 대하 여는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는 이가 없었습니다. 소문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소문이 다른 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바 메시야에 대한 소문이었는데도 그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도대체 관심을 가지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 경악스러운 일은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자가 있기는 있었 는데 그는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음모를 위하여 그렇게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것이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로 이 세상의 권세와 부 귀영화에 눈이 어둔 헤롯왕이었습니다. 이 사탄의 흠흉한 이빨을 드러낸 헤롯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마2:8절에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 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가서 경배하게 하라."고 능청을 떨었던 것입니다.

헤롯의 자문위원들이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구약의 미5:2절과 겔3 4:23절을 들어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정확하게 설명해주 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설명은 옳았지만 믿지 않는 자들로서 남의 예수 님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마2:6).

 성도 여러분! 무었이 이토록 만 왕의 왕이시요, 이 땅의 주인이신 그가 오셨는데도 그를 거절하고 외면하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가장 환영할 수 있으리라고 예측 가능했던 모든 일들이 빗나가고 말앗다는 것은 우리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과 축복과 구원은 인간의 예측과 계산과 생각을 빗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을 이 예수 님의 첫발을 내 딛으시는 첫 번 성탄에서 상징적이고도 극적이며 강력한 쇼크로 우리에게 살아있는 멧세지를 던져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느 한 장면이라도 어느 한 행동이라도 어느 한 말이라도 인생들의 그 반응들을 놓치지 말고 알아라는 주님의 소리없는 강력한 소리와 그 의미를 꿈에라도 반추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몸을 던지신 이 멧시지를 아시겠습니까 첫번 성탄에서는 이 멧세지를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2천여년 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직도 그 의미를 모른다면 또한번 주님은 우리에게서 거절 당하시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탄의 아침에 우리가 깊이 상고해 보고자 하는 것은 왜 그 주 님을 그렇게 밖에 대접해 드릴 수없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첫번 성탄절에 등장하였던 유대인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미련한 백성 들, 특히 만삭된 예수님을 베은 마리아를 차겁게 내몰고 개인적 이기주의 에 거절 당하게 한 그때 그 사람들이 너무했다고 원망스럽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그러한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을 당연하다고 보고 있다는데에 우 리는 또한번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인생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밖에 대접하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 지를 본문을 텅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않는 것이 예수님을 거절한 이유입니다(1)

본문 1절에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 들의 멧세지의 핵심이 바로 메시야요, 오실 예수 그리스도인데 이 메시야 에 관한 소식들을 제대로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왜 제대로 믿을 수 있겠느냐고 우려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 은 인간이 상상하고 꿈꾸는 메시야 상과는 전혀 판이한 메시야로 오실 것 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상식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과 그 허 구성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심장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적어도 메시야요, 구세주라면 당당하고 떠뜻하며 통쾌함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인간의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상식이 우리 자신을 낭패를 저지르게 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하나같이 백마를 타고 그 손에는 철장의 권세를 쥐고 온갖 비리와 악의 세력들을 단숨에 척결시키고 평정하여 공의 를 하수같이 흘러 넘치게 하시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무었보다도 그들의 꿈꾸는 메시야는 이 땅에서 악한 왕과 군주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눌려서 억 울함에 사무친 그들의 한을 풀어 주는 자로서 기대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실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비참한 나라잃은 설움과 생활고로 가난에 찌들린 삶에 적국 나라를 쳐 부수므로 해방과 함께 나라 를 회복하고 세상에서 가장 윤택하고 잘 사는 이상적인 국가를 이룰 것이 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순전히 자신들의 필요와 땅에 속 한 여러가지 복잡한 사연들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로 가디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이 말씀하는 메시야상 과는 전혀 다른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 입니다.

이와같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실수는 전적으로 인간의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미련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한번 삐까번쩍하게 놀아보고, 이 땅에서 보란 듯이 나를 괴롭히는 무리들에게 복수해보고, 한 평생을 으시 대고 잘난 것을 자랑하며 살아보겠다는 순전히 좁아터지고도 좁아터진 이 알량한 인간의 자존심과 잘나보겠다는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메시야를 기다렸으 니 어찌 그 메시야를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도 첫번 성탄때처럼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예수님을 요구하는 기다리 많은 신자들이 똑같은 실수와 함정에 빠져 똑같이 허우적거리고 있 음을 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참 믿음이 무었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뜻, 내 소 원 성취, 내 주장, 내 목소리 관철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식으 주님을 찾다가는 주님이 앞에 서셨어도 그분을 거절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를 향한, 우리 가정을 향한, 이 사회와 이 민족을 향한, 이 교 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었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올바른 믿음 위 에 설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올바른 믿음이 아닌 인간적 믿음 위에 서게되 면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오신 주님을 거절하고 반대하는 무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2.매력없는 외모가 주님을 멸시하고 거절한 이유였습니다(1-2절).

 본문 1절 하반절에서 2절에서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고 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의 권능과 승리가 그토록 비천 하고 멸시받는 자에게 나타난다는 것을 어떤 사람이 믿을 수 있겠는가 그 러나, 여호와의 종이 실제로 마른 땅에서 돋아난 연한 순같이 형편없는 모 양으로 돋아 난 것이다."라고 말씀인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보잘것 없는 용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서 기관들이나 제사장들처럼 겉으로 보기에 대단한 사람이라는 표식을 갖출 수 있도록 화려하거나 품위를 더해주는 옷도 입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저 평범한 한 목수의 아들의 모습을 말해주는 생활 양식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 되신다 는 사실을 제일 믿기 어려웠습니다. 워낙 예수님에게 메시야다운 어떤 특 이함이나 신비한 어떤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조건을 갖춘자들이 되는 것으로 이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간들이 기 준으로 설정해 놓은 그러한 증거나 대단함 같은 어떤 힌트도 나타내시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그러한 부분들이 하나님을 믿고 이해하고 섬기는데 가장 방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과 뜻대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과 상식으로 이해되어질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신앙의 세계입 니다.

 3.사람들의 무관심이 주님을 거절한 이유입니다(3절).

 본문 3절에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 음을 받은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 도다." 왜 만유의 주님이시고 이 땅과 우리의 주인되신 주님을 이렇게 대접 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그만큼 우리의 관심은 주님의 뜻과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멀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야기 입니다.

이 성탄절은 주님께서 탄생하신 바로 그날이 아닙니다. 그러면 12월 25일 이 주님 성탄일이 아니라면 어느날이 그 날이겠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인생들이 그만큼 주님에 대하여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유명한 사람들의 생일을 모르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유명하신 분이신 예수님의 탄생일을 몰랐다는 것이 말이됩 니까 지금 우리가 지키는 12월 25일 이 날은 주후 350년 경에 공식화 되 어 이날을 지키기로 약속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지키 이 성탄절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진짜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 인 생들이 하나님께 무심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더욱 우스운 것은 이 12월 25일이 당시 로마 제국시대에 성행하 였던 우상종교의 여신을 기념하던 소위 동지 축제라는 것에 옷만 바꾸어 입힌 것이 성탄절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도 사람들에게 가장 축제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연말의 여신의 축제일의 기간 중의 하루를 택하여 사 람들의 축제적인 분위기를 기독교화 되도록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이같은 육신적이고 정욕적인 이방 우상숭배의 잔재의 후광을 입고 환영과 축하를 받으실 분이 아니시라는 것은 너무도 명약한 사실인데도 무지한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찌든 인생들이 이날을 등에 업고 성탄이라고 공포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떠들석하게 사람들이 들떠하고 그저 알맹이도 없이 기뻐하 는 그것으로 만족하시리라고 세월이 많이 흘러간 후대에도 여전히 첫번 성 탄절의 해프닝이 계속되고 있더라는 것이 이 땅의 아이러니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나마 주님을 가까스로 환영하고 영접 할 수 있었던 무리들은 주님의 지 시하심과 도움을 입었던 무리들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도 처음에는 성탄절을 지키러 엉뚱한 곳인 헤롯의 왕궁으로 갔 었다가 성경의 기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향하였고 하나님 별빛의 인도 속 에 힘겹게 바로 찾았습니다.

들에 있던 목동들도 그저 일상의 일과에 바빠 생각없이 잠을 청하거나 양 들을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고 있었을 때에 천사들이 신비롭게 나타나 분 명하게 가르쳐 주었기에 주님께 경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동방박사나 목자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예수님께 경배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입은 자 만이 주님을 바로 영접하고 환영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멸 시하고 자만과 교만과 욕심에 사로잡힌 무리들에게는 성탄의 주님도 부활 의 주님도 만날 수 없을 것임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거절할 것이냐 꿇어 경배하게 될것이냐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냐 내 뜻대로 판단하며 살아갈 것 이냐에 달린 문제입니다. 주님의 뜻은 겸손한 자에게 나타내시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더욱 더 겸손히 은혜를 사모하여 주님을 만나시고 영접하게 되 시는 이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