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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믿으라! (요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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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들입 니다. 1절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이 말씀은 14장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방향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하는 말씀으로서 "내 아버지 집은 거할 곳이 많도다"라는 말 씀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우리들이 신앙 생활하는데 있어서 아마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시험거리로 걸리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시고 계시는 말씀 인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은 거할 곳이 많도다"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에서는 이 세상에서는 우리의 거할 집이 없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세상에다가 그렇게 미련과 욕심을 두지 말라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세상에서 괄시를 받을 때에도 낙심치 말라 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가 좀 더 깊이 상고해 볼 필 요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 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 비하면 내가 와서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 리라" 주님께서 처소를 준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곧 하늘 나라가 지금 우리를 위하여 준비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준비되는 그 하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가 예 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였음에도 불구하 고 아직도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준비된 새 나 라에 걸맞는 사람으로 아직도 좀 더 다듬어져야 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우리가 과연 우리의 신앙의 촛점을 어디에다 맞추고 나아가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 리들의 신앙에 있어서 신자들의 대부분의 실수는 하나님을 믿어서 부수적으로 주어 지는 축복들인 삶의 평화나 건강이나 일용할 양식이 얼마나 확보되느냐 하는 것에 더 치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신앙의 촛점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나 이 세상 것들을 누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 영원토록 누 리게 될 것들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삶의 평강과 삶의 축복이 있습니다만 그것 은 부수적인 것일 뿐 없어도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이 없다고 신앙이 잘 못되었다든지, 예수를 잘못 믿었다고 말하거나 판단할 일이 못되는 것입니다. 오히 려 참으로 복되고 위대하며 하늘에서 큰 자는 이 땅에서의 좋다고 하는 것들과 거 의 상관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신앙과 마음이 어디로 향하 고 있는지를 정검해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앙의 싸움은 바로 세상 것이 더 중요 한가 하늘 나라 것이 더 중요한가에 관한 싸움입니다. 이 자세에 따라서 신앙의 성숙도가 나뉘어지고 변화되어야 할 남은 부분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와같은 문제들을 많이 다르고 있습니다만 몇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 니다. 먼저 창세기2:8-9절의 아담과 하와 사건을 살펴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 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사람이 살게에 쾌적한 환경을 만드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 다. 동산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 쪽에서도 필요할 지 모르겠지만 먹기에 좋은 나무는 사실 하나님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기에 좋은 나무는 순전 히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계21:2절을 보면 이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 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결혼식 할 때 신부는 최고의 치장을 하고 가꾸므로 예쁘지 않은 신부가 없습니다.

천국이 그렇게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천국을 만들거나 치장하거나 확보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고 확보 해 놓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니 "너희는 마 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 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나 자신이 나의 살 집과 천국에서 소용되는 것을 준비 하려는 자와 같이 애를 쓰고 사는가 하는 점을 주님께서는 지적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좀 더 분명히 짚어주는 말씀이 신명기 6장에 나타납니다. 즉 출 애굽 사건을 통해서 신자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되었던 땅인 애굽에서부터 이스알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면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나안 땅을 약 속하셨습니다. 다시말해 젖과 굴이 흐르는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기 위하여 애 굽에서 꺼내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자유'라고 그러면 자유를 얻은 다음에 어 떻게 될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서라도 일단 억압과 공포로부터 해방 되는 것을 무조건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꺼내 놓으실 때에 자유함을 얻은 자가 들어갈 곳을 준비한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종 되었던 곳에서 꺼내시면서 그 다음을 준비해 놓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 나 우리는 해방과 그 다음의 일을 각각 경험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삽니다. 그 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이 하나의 경험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해방 속에 그 다음의 복된 미래가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애굽에서 꺼낼 때 목적지가 가나안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나안에 들 여 보낼려고 애굽에서 꺼내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것은 신앙의 큰 경험입니다 즉, 죄악의 쇠사슬에서 풀려 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죄악 에서 풀려나는 것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만 그 다음에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의 사건인데 현실적으로는 늘 두개의 사건이 우리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되 는 그 두번재 경험을 얻는 데는 너무도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신6:10-11절을 보시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 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꺼 낼 때 이미 내가 짓지 않은 집과 내가 모아 들이지 아니한 재산과 내가 파지 아니 한 우물과 내가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나무가 약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게서는 우리를 위하 여 필요한 모든 것들을 넘치게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 리가 부자가 되고 성공해서 하나님의 택한 자녀라는 사실을 멋있게 나타내며 구원 에 보답하라는 것을 결코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이 세 상의 가장 좋은 것 보다도 훨씬 좋은 하늘나라의 풍성한 것들로 준비해 주셨으므로 이 땅의 것들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택함받고 구원받은 이후에 무엇을 해야 되는 것입니까 신6:12-15절을 보시겠습니다.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 말라 너희 중에 계신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 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하실까 두려워하노라" 성경이 신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는 일단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는 먹고 살 만해져 가면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잊고 죄악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전에 미리 택하시고 예정하사 지명하여 불러내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을 때에 먹고 마시는 문제 까지 다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먹고 마시는 문제를 위하여 사는 자들 이 아니라, 살아 생전에 모든 환경과 상황과 인간들 앞에서 하나님 편으로 사는 자 가 되는 것이 사명입니다. 신자는 먹고 사는 문제로 분주하거나 걱정하기 보다 하 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문제로 분주한 자들입니다. 이것을 신6:16-1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맛사에서 시험한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라"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 출17:1-7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 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 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 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물이 갈하매 그 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여호와께 부 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 겠나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 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 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 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여기서 분명히 여호와를 시험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 편이냐 내 기 도에 응답하실 것이냐 나를 지킬 것이냐 하는 것에 관해 그들이 시험을 해 보았 다고 그럽니다. 이 사건을 맛사 사건 또는 므리바 사건이라고 합니다.

또한 비슷한 사건이 하나 있는데 신16:1-4절에 나타나는 만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 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 리를 인도하여 내어 돈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 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 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 쪽에서 하나님이 정말 우리 편이냐 우리의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시고 확보해 주시는 분이시냐를 시험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요구 사항들 주어서 무엇을 시험했습니까 '너희들이 이것만 있으면 나를 믿느다고 그랬다. 배 고파서 범죄했지 먹고 마시는 문제가 해결되고 배부르고 편하면 나를 제대로 섬길 것이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 그랬다. 이제 어디 좀 보자!'라는 것입니다. 그 판 정은 신8:1-3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 하고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 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를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 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쪼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 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반석에서 물을 내신 사건과 만나를 내려주신 사건은 하나님의 목적하시는 바가 있었다고 그럽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광야 사십년을 유리하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칭찬 받은 사건이 과연 있었습니까 항상 욕먹고 벌받은 사건밖에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가 잘 해결되면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이라고 하길래 하나님께서 물도 주시고 만나를 주셔서 배부르게 해 주고서 과연 너희가 나 를 잘 섬기나 보자 그러셨습니다. 시험해 보았더니 그들이 배가 부르고 환경이 좋 아진다고 해서 하나님 편에 서지는 않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싫어하는 족속이 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생각하기를 삶의 문제만 해결되면 철저히 하나님 편이 될 것 이라고 해서 하나님게서 이스라엘을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 그리고 만나 를 먹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건만 한 번도 하나님 앞에서 항복하지 않았던 것 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끝까지 인도하셨습니 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더 깊은 의도가 계셨던 것입니다. 신8:11-17절을 보시겠습 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 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 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성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릴 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 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 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여기서 뭐라고 그럽니까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좋은 길을 두고서 그 험한 광 야, 물도 없고, 양식도 없으며, 불뱀과 전갈이 살고 있는 어려운 광야 길로 이스라 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을까요 그것은 방금 말씀에서 '이스라엘을 낮추시기 위해서' 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셔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들에게 능력과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 보다 늘 자신의 능력과 재주로 자만하며 살아가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에 차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하며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가 하는 사실을 하나님께 서는 그 광야에서 분명히 확인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만나 사건도, 맛사 사건도 인간들이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었을 때 하나 님을 원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같은 사건을 통하여 즉, 구 름 기둥과 불 기둥, 만나와 반석에서 물을 내어 즈심으로써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를 확인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인간이 갖고 있는 자신감이란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을 확인시켰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디를 가서 새로 우물을 판다고 할때에 어디를 가서 파겠습니까 산에서 우물을 판다고 하더라도 낮은 쪽으로 가서 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위를 뚫어서 물이 나오리라는 생각을 과연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하필 반 석에서 물을 내시는 겁니까 가장 불가능한 모습이 아닙니까 양식도 그렇습니다.

양식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과 땅에서 솟아 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그래도 가능성이 있습니까 땅입니다. 하늘에서 양식이 내렸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모습 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만나를, 반석으로부터 물을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무었을 확인시키고 싶으신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것입니다. '이 먹고 마시는 문제는 너희 스스로가 애쓰는 것보다 더 큰 힘과 더 큰 열심과 더 큰 사랑으로 내가 너희를 위 하여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먹고 마시는 문제로 인하여 어려움이 오 더라도 흔들리지 말라. 그건 너희가 할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이다. 내가 너희에 게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내 말을 지키며 나를 경 배하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자나 깨 나 무엇을 하든지 잊지말고 긴장하며 힘을 기울여야 할 유일한 책임입니다. 하나님 을 경배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 이것 이외에 우리 의 신앙 생활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일 아침에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소관 하의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 문제를 염려하고 걱정하고 생각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비유가 적당한 비유는 아니지만 자녀가 아침에 일어나서 당연히 '엄마, 밥!'그러는 것과 같습니다. 밥이 그냥 생기는 것으로 아는 것과 같 습니다. 아빠가 힘들여 벌어오고 엄마가 일찍 일어나서 해야 되는 일인지도 모르고 '밥!'하고는 늦게 주면 막 화를 냅니다. 밥투정을 하고 반찬 투정을 합니다. 이것 이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신앙은 순 엉터리 투성이입니 다. 이렇게 엉터리만 부리는 우리를 어떻게 하나님께서 다루시는지 아십니까 신8:16절을 보십시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낯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결국은 오늘 본문 요14:1절 말씀과 또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결국 모든 신앙의 싸움은 여기에 걸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 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신 것을 제대로 믿 고 사느냐 믿지 못하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 신앙의 색깔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믿고 강한 믿음 속으로 들어간다면 더 이상 세 상이 우리를 놀라게 만들거나 절망케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 시고 하늘에서 양식을 내시는 하나님을 강하게 붙잡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이 놀라 게 하며, 절망케 하겠습니까 결코 우리를 흔들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 게 잠시의 고통은 줄 수 있으며, 우리를 잠시의 슬픔에 빠지게 할 수는 있을 것입 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이 믿음이 우리를 그 모든 슬픔과 고난에서 건 질 것이며, 자신있게 할 것이며, 목숨이라 할지라도 우리 속에 있는 감사와 기쁨과 평안함을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우려하고 계시는가 보십시오. 신8:17절에;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손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 다 할까 하노라" 이 말씀과 같은 신자는 그야말로 밥통이 된 신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목 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의외로 이런 신자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까움입니다. 세 상 사람들이야 자기 하나밖에 믿고 살 것이 없기에 거짓말도 해야 되고 사기도 쳐 야 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날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주 셨다는 사실을 모두 다 믿는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신자의 얼굴에 있는 근심은 무 엇입니까 신자의 얼굴에 뻗친 초조함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얼굴에 불평이 있고, 수심이 드리워지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저 불신자들, 자신만 믿을 수 밖에 없 는 저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저들보다 더 강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니 아직 우리 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너무도 미흡하다는 표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 것들을 모르고 지내므로 그렇게 불신자들과 같 은 방식으로 어렵게 살아야 된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러서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입 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해서 여기 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 하시기를 "너희는 이제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이라고 그러면 감이 잘 안 잡힐까봐 보이는 하나님이 신 예수님을 통해 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보리떡 다 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 남았습니다.

무엇이 걱정입니까 폭풍우도 잠잠케 하셨으며, 바다 위로도 걸으셨습니다. 중풍병 자를 고치셨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나는 나사로 를 무덤 속에서 살려 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주님께서 뭐라십니까 '마 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근심하는 것은 죄요, 불신앙입니다. 우리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모든 삶에 관한 문제들을 보장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적어도 오병이어의 기적과 죽은 자를 살리시 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보장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이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삶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하나님 없 이 세상을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그러한 보장이 믿어지 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맛사의 시험입니다. 조금 힘들어지면 정말 하나 님이 우리 편이냐 하는 불평을 합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온갖 망령된 생각을 떠 올립니다. '괜히 예수 믿었었구나. 안 믿었더라면 그 방법대로 살겠는데 예수를 믿 으니 그렇게 살 수도 없고. 도대체 날 어찌하란 말입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서 날 이렇게 만드시지 않았느냐는 식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이 어떻게 빗나가고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자녀를 가르치는 방식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 자녀가 학교를 일 주일을 안 나갔 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날은 틀림없이 큰 일이 벌어지는 날 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학교 선생님이 '집사님, 아들이 벌써 한 딸째 교회에 안 나와요!'그러면 '글세 그 녀석에게 항상 교회 가라고 그러는데 안 나가는 모양이죠 '하면서 대수롭지 않는 일로 그냥 넘겨버리실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믿는 다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교회에 젊은이가 없 습니다. 유아세례 주고, 결혼식 해주고, 장예식 해주고, 그 외에 어디에다 힘을 쓰 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수없이 예배에 참석하지만 과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결심하고 갑니 까 교회는 여러분들이 그저 세상에서 살다가 벌어온 돈을 가끔 불쌍해서 던져 주 고 가는 곳밖에 다른 것이 없는 곳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기서 여 러분의 삶의 목표와 원리와 자세를 배우려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좀처럼 고쳐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외쳐고 지적을 해 줘도 사기만 떨어뜨리는 설교로 여길 뿐 올바로 돌아오려 하지 않고 바로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의 비극입니다 누구때문이라고 핑게할 수 없습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의 손해일 뿐입니다. 아직도 그 마음 자세 때문에 그 고집 때문에 힘든 광야 생활을 연속하고 있는 것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도 가나안에 못 들어 갑니다. 믿음 앞에 서야 됩니다. 이 믿음이 아니고는 이 자리에 나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신6:20-24절을 보시십시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 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 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 셨나니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시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 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시 위 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심이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왜 이 규례를 지키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규례 를 지킬 때에 우리에게 약속된 축복이 경험되어지고 체험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리고 나의 신앙에 대하여 후손들과 이웃들 앞에 할 말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예수를 믿어 순종하여서 확보된 그 축복들을 체험해 보고 누려 보 았습니까 신자들이 신앙의 약속들에 대하여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심각한 문제도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먼저 믿은 사람들이 한 번도 제대로 아름답고 풍성 하고 자랑스러운 약속들에 대하여 분명한 모범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안 속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한국 교회는 먼저 믿은 사람들 의 깊은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또 이 일에 부름받은 교역자들에게 분명히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하여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고 제대로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고 솔직히 시인합니다. 그러나 하여튼 그 핑계가 누구에게 책임을 돌 려야 한다는 것으로 끝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가 중 고등학교 시절에 문교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한문을 배워라 말 아라 했고, 교과서에 한문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바람에 한문을 몇개 모릅니다.

그 핑계를 문교 정책에 다 돌린다는 것과 한문을 모른다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릅니 다. 물론 책임은 누군가가 져야 할지 모르지만 모르는 것은 지금의 내 불편이고 내 손해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된 이유가 교역자에게 있다, 한국 교회의 어떤 분위기에 있었다, 먼저 믿은 사람에게 있었다고 핑계를 댈 수 있는 것과 여러분이 마땅한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과 는 구별을 하셔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불문에 붙이고, 오늘 요14:1절 말씀 앞에서 각자 가 해결해야 되고, 결심해야 되고, 선택해야 되는 신앙의 문제로 여러분은 지금 서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자로 살 것인가 명목상의 신자로 전락되고 말 것인가의 싸움이 여러분 앞에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먹고 마시는 문제를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먹고 마시는 문제로 염려하고 우리의 시간을 소 모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허락된 삶의 현장 속에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십시오. 그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문제를 대하고 풀어 나가는 방법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활의 원리와 목표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인간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지 않는 것을 사람 들이 보고서 '그렇게 살면, 당신이 집니다. 당신이 손해요, 밑지는 것입니다. 망합 니다'라고 말할 때에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힘이시요, 그 분께서 내게 명 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하며 좀 살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생활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모든 기적들을 여러분들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행복과 감사와 만족으로 찬송이 입술에서 떠 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신앙으로 사시기를 스스로를 굳게하시며 인내하며 충성하기로 결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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