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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01:00

성령의 은사 (요 17:16 갈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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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은사란 무엇인가 난 이글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두가지 질 문을 하고 싶다. 1)성령의 은사를 무슨 목적으로 주는가 하는 것이고, 2) 성령의 은사들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먼저 첫번째 질문,성령의 은사를 무슨 목적으로 주시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찾아보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은사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각 지체들이 자기의 기능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특별하신 은사를 주시는 동시에 일반 자연은사를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된다. 성령이 주시는 은사는 오직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들이 기능을 바로 감당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신분은 그리스도의 갈보리 사건에서 확정되었다. 우리가 교회안의 목회자이든지 지 도자이든지 일반 평신도이든지간에 우리의 신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하 다. 이것이 바로 갈보리 십자가 앞에서 만인이다 평등하다는 원리인 것이 다.

I.성령의 은사를 말할 때 주의할 점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체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 서 각자 개인에게 주신 은사는 다른 성도들에게 주신 은사와 같지 않을 수 가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논할 때 두가지 기본적인 위험성이 있음 을 발견한다. 1)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과 혼동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많은 아주 놀라운 은사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 사 람을 특별히 더 사랑하는 것처럼 느낀다면 문제가 있다. 이것은 사실과 다 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주는 것은 특별히 그 사 람을 무장시켜서 그 사람이 해야 할 기능을 보강해주는데 있는 것이다. 그 러므로 성령의 은사드은 기능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성령께서 이러 헌 은사를 주시는 것은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서로 간에 실제적이고 헌신적인 기능을 바로 행하고 의미있는 일들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은사를 생각할 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 는 은사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갖고 계신 사랑을 서로 혼동하지 않아야 겠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사랑은 동등하게 일치시켜서 생 각할 것이 아니라 각각 그 목적과 기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내가 받은 성령의 은사가 나 자신에게만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 이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성령이 내게 주신 은사는 오직 내가 그 은사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 기능을 제대 로 할 때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나에게 주신 그 은사는 내형제 자매에게 주신 은사와 함께 협력하도록 서로의 은사를 인정 해주고 인정된 은사를 함께 공동으로 사용해서 주의몸을 도울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 다. 그러므로 성령이 주시는 은사라는 것은 교회 안에서 서로 협력적인 관 계에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II. 성령 은사의 개념과 어원

성령의 은사라고 번역된 말은 헬라어에서는 '카리스마타'라는 말이다. 카 리스마타란 말은 카리스카라는 말의 복형태이다. 이 말은 본래 '카리스'란 말에서 왔다. 아마도 신약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가운데 하나가 카리 스일 것이다. 그것은 은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도 바울이 쓴 모든 서 신서의 시작과 끝으니 '카리스',즉 은혜란 말로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사 도 바울의 믿음의 핵심이요 본질이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 신 너그럽고 관용하신 사랑에 근거해서 값없이 거져주신 것이었다.

은혜라는 말에는 두가지 중요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 첫번째 개념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심'이라는 개념이다. 카리스란 말은 아주 사랑스런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때때로 육신적인 아름다움을 표시하고 있다. 은혜라고 하는 말은 언제나 사랑스러움, 매혹적인 대량, 너그러움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은혜라고 하는 개념은 우리의 시선이 이끌리고 마음이 주어지고 가까이 하고 싶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절대적인 미의 대상으로 우리의 생각 을 이끌어간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생각을 이끌어간다. 일반적인 의 미에서 그렇게 사용되는 말이 기독교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우리의 모든 느낌과 지각을 초원하는 엄청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단순 히 우리는 그 앞에서 머리숙여 경배하는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경배의 동기와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은혜라고 하는 말 속에 담긴 첫번째 개 념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이다.

은혜라는 말 속에 담긴 두번째 개념은 하나님의 부요하심, 풍성하심, 엄 청나게 위대하심 등과 같은 개념이다. 이 은혜에는 도무지 받을 자격이 없 는 사람에게 값없이 거져주시는 하나님의 부요하심이 담겨 있다. 여러분은 요한복은 2장에 나오는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 를 만드시되 아주 질이 좋은 포도주로 그들에게 퐁성하게 공급하여 주신 것 을 기억할 것이다. 사도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행 하신 첫번째 이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능력이라는 말보다는 하나 님의 능력이 어떠 하신지를 우리에게 실제로 보여주신 사건이었다. 요한은 바로 이렇게 부요하신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증거해준 것이다.

또한 요한복은 6장에는 주님이 오천명을 어떻게 먹였는가 하는 사건이 나 온다. 그무리들은 배가 고픈 상태에 있었고 먹을 것이 없었다. 또한 거기에 는 음식 사먹을 곳도 없었다. 우리 주님은 소년에게서 들어 하나님께 축사 하기고 떼어 나누어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남자 오천명이 먹고도 남을 수 있 게 풍성하게 공급하셨다. 모든 사람이 먹고도 12광주리나 남았다. 바로 이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분 자신의 모습이요 그분이 우리에게 공급해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장면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은 혜라는 말을 이해할 때 핵심적으로 염두해두어야 할 개념인 것이다.

III. 성령의 은사가 갖는 특징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두번째 질문으로서 성령의 은사들은 무엇인간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아름다우심과 부요하심을 우리에게 실제로 내어 보이고 시범을 보이시고 나타내주시는 그러한 내용이 될 것이다. 성령의 은 사는 이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부요하심을 증거하는 것이 다. 이러한 은사를 내어보이면 사람들이 서슴치 않고 하나님의 은사를 받아 들일 준비를 갖추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성령의 은사를 의심하여 받기를 주저하기도 한다. 그 러므로 우리 목회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은사를 다른 사람에게 시범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하는 놀라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째 특징은 불신자에게는 그러한 은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 성령의 은사는 자연 적으로 받은 재능과는 다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연적인 재능들을 받았 다. 그런데 그런 자연적인 재능이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더 놀라운 것으로 발전된다. 새로운 차원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둘째, 성령의 모든 은사에는 모조품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현 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여러분 들은 진짜가 아닌 가짜는 가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 령의 은사도 실제를 바로 파악해서 진정한 은사를 받아 진정한 의미로 사용 해야 될 것이다.

세째, 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 주 신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거기에는 아홉가지 성령의 은사가 언급되어 있다. 내가 믿기 로 아홉가지 은사라는 것은 모든 은사를 총망라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표본 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약 성결에는 이외에도 카리스마 또는 카리스카 타라는 은사들이 언급되어 있다. 고린도 전서 12:4절 이하에 나오는 은사 아홉가지는 세 그룹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번째 세 개의 은사로 이루어진 그룹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것(지식)에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도무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 을 파악해서 알아내는 초자연적인 지식의 말씀을 의미한다. 세번째 은사인 믿음은 특별한 어떤 일들을 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초자연적인 특징이 있는 그런 믿음을 가리킨다. 때로는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들이 우리의 육 정에서 올 수 있고 마귀에 의해서 올 수도 있고 하나님이 믿음을 단련시키 기 위해서 주시는 어려움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첫번째 그룹에 속하는 세 가지, 지혜 지식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무리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그룹에 속하는 세 가지 은사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특별한 선물을 가리킨다. 그 첫번째는 예언의 은사이다. 예언의 은사는 하 나님의 생각 속에 있는 말씀을 듣는 것이요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는 말씀 을 느껴서 그것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하여 주는 특별한 은사이다. 그러므 로 예언의 은사라고 하는 것은 말하는 은사라 하겠다. 두번째 은사는 방언 의 은사이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배워본 적이 없는 그런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언어일 수도 있고 천상에서 사용되는 언어일 수도 있다. 이것 역시도 말하는 은사인 것 이다. 그리고 세번째 은사는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이다. 이것은 단순히 문 자 그대로 옳기는 것이 아니라 해석해서 전해주는 그런 은사이다. 그러므로 두번째 그룹은 말로써 하나님 뜻을 전달해주는 은사들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세번째 그룹의 세 가지 마지막 은사들은 우리가 행하는 능력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첫번째 은사는 믿음의 은사이다. 이것은 구 원을 얻는 믿음과는 다른 은사이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현장에서 어떤 특별한 인들을 대상으로 믿는 믿음이다. 두번째 초자연적으로 우리의 질병 을 치료하는 신유의 은사이다. 또한 마지막은 이적을 행하는 은사이다. 이 모든 은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체들이 각각의 기능을 하는데 필요한 은사들이다.

넷째, 성령의 은사의 특징은 성령의 은사가 크리스챤을 더욱 유능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성령의 은사가 크리 스챤의 몸 안에서 서로의 관계를 올바로 맺게 해줌으로써 안전성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은사를 가지고 올바론 관계에서 일을 해나갈 때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를 더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서로 에 대한 기능을 제대로 함으로써 자기자신의 위치를 바로 파악해주기 때문 이다. 이렇게 크리스챤의 몸 안에 각 부분의 지체가 되어 자기 위치에서 기 능하다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모든 지체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목적을 가지 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다섯째, 성령의 은사가 갖는 특징은 이것이 전도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 다. 사도행전 3장에 베드로를 통해서 일어난 이적의 사건은 아주 놀라운 일 이다. 그것은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앉아있던 사람을 능력의 손으로 치유 한 사건이다. 베도로는 그 자리에서 요한과 함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였고 그 사람은 일 어나 걷고 뛰면서 성전 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경배했다. 그 이적의 결과로 써 베드로는 회중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얻었다. 예수 그리스 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했다. 그리고 4장에 가보면 그 이적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5,000명이 예루살렘교회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의 은사는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의 도구가 된다. 그러므 로 사도행전 역사를 우리가 살펴보면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한 뒤에는 그 결 과로 주의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챤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성령은사가 무엇인가가를 설명해주는 내용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놀라운 이적을 행하 신다. 그리고 그 이적이 실제로 행하여진 과정과 목적과 그 이유를 설명하 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섯째,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 성 령의 은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 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미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그의 부요 하심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실제로 증거하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들은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부 터 나오는, 우리를 위하여 베풀어 주는 순수한 그의 사랑과 은혜와 부요하 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방법으로 시 행되고 나타나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은사를 통해서 사람 가운데 하나 님의 무한하심, 무변하심, 영원하심, 은혜로우심, 풍성하심 등 이런 하나님 의 속성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찬란한 빛 가운데 영광 중에 거하시며 회전하는 그림자조차 없으신 영광의 모습으로 이런 은사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 보여지게 된다.

IV. 성령의 은사가 주는 중요한 이유

이제 이 글의 두번째 주제인 성령의 은사가 중요한 이유를 살펴보자.내가 여기서 여러분께 드리고자하는 주제의 질문은 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로 서 이로인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하길 사모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는 단순한 답변이 있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할 이유는 그 은사를 성경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정서적인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 경에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근거로 확신할 수 있을 때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 의 영역과 부분들은 성경말씀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그릇된 교 훈에 빠져들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신약성경 말씀에 계시되어 있는 본질적인 기독교신앙에 들어가길 원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성령의 은사를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에 따라서 사모해야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은사를 사모해야 할 두번째 이유는 예수님 자신이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예수님이 행 하신 그 일을 우리도 하고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그 능력을 우리도 받아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부름심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 주변 이웃들에게 나타내 보여주기 위함이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초자 연적인 지식의 은사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힘이다. 주님께서는 분명 히 초자연적인 지식의 은사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셨다. 여러분은 사마리 아 우물가의 여인에게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보여 주신 것을 기억하실 것 이다.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다른 길로 도저히 알아낼수 없었던 그 여인의 비밀까지도 속속들이 아셨다. 이것이 바로 초자 연적인 지식의 은사를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인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세번째 이유는 성령의 은 사가 예수님을 높이고 또한 영화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성령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지만 그 열 매의 맛은 아홉가지나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말할 때는 성 령의 열매들이라고 복수로 말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라고 단수로 말해 야 될 것이다. 성령은 모든 사람을 통해서 성령의 은사 하나 속에 아홉가지 맛을 낸다.

여러분은 이 성령의 은사 열매의 맛 아홉가지를 갈라디아서 5장에서 발견 하게 될 것이다. 사랑,기쁨,평안,오래참음,온유,희락,화평,자비,양선, 충 성, 온유, 절제,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미 하나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맛들 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얻기 위해서 지나체게 노력할 필요 는 없다. 우리 자신이 노력해서 얻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그 분이 이런 맛을 내시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역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우리 안에 이러한 맛을 내도록 우리가 순종할 때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편 성령의 은사들은 각기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나누어주 신 다. 성령의 열미는 우리 모두에게 다 나타나야 되지만 서령의 은사는 어떤 은사는 다른 사람에게 골고루 나타나게 된다. 이 모든 은사들이 서로 다른 사람 안에서 함게 나타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제 기능을 발휘할 때 온전 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려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의 차이점이다. 성 령의 열매 아홉가지 맛들은 우리 모든 사람 안에 다 나타나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사의 경우 한 사람이 모든 은사를 다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어 받는 것이며 이 모든 은사들이 다함게 연합해서 우몇 주 예수 그리 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령의 은사와 열매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그의 행하 신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여 보여준다. 성령의 사역은 우리를 통해서 예 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아들을 높여주고 그분을 영화롭게 만들어 준다. 바 로 이러한 이유들이 우리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될 이유 들이다.

V. 성령의 은사를 받는 법

세번째로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보고자 하는 주제는 성령의 은사를 받는 방법이다. 일곱가지로 말씀드리고 싶다.1)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생애를 드린 사람에게 주 어진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생애에 일어났던 일과 그분의 뜻을 자기생애 속에서 나타내보일 사람에게만 주신다. 언제든지 성령의 은사는 예수님이 그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아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살아 있는 관계는 맺어야 한다.

2) 우리가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말씀을 믿어야 된 다. 어떤 신학에 따르면 성령의 은사는 오늘날에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 자체의 말씀과 수많은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는 성도들 의 체험은 그러한 신학을 배제하고 있다. 신구약 성경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이런 은사마저 완전히 멈추어진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8-10절을 보면,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 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특별히 10절에서 사도 바울이 하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온전한 것이 올때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했다. 이 온전한 것 이 올때란 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실 그때를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면 그때는 이런 은사들도 별 의미가 없 을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것이 올 때까지는 부분적으로 행하던 그것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고 이런 의미에서 성령의 은사는 오늘 날에도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된다. 오늘날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성령의 은사는 실 제로 효력을 미친다.

3) 어떤 때는 성령의 은사가 안수기도를 할 때 임하는 것을 본다. 언제 든지 안수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수할 때 자주 성령의 은사를 받는 다.

4) 연습과 실험과 하나님의 협력에 우리의 마음자세가 열려있어야 된다 는 것이다. 운전이 완전히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계속 반복된 연습을 통해서 점점 발전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은사인 경우에도 마찬가 지이다. 연습과 실험과 또 하나님과 협력해서 원숙한 경지에까지 나아가도 록 해야 한다. 내가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때는 언제든지 항상 완전한 것만 은 아니다.

5) 은사는 잘못 파악될 수 있으므로 잘 알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내가 이런 실수를 거듭하도록 허용하신 일을 기 쁘게 생각한다. 내가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도 하나님은 오래 참으신다. 왜 냐하면 내 마음 속에 진실한 동기가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좋아하는 일에 맞는 은사를 주신다. 하나님께 서는 우리 심령 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셨다. 우리가 마음 속에 원하고 즐기는 것을 행할 때 편안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본래 성품적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그 일에 성령의 은사를 주신다. 여기에 늘 그런것은 아니 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즐기지 않는 어 떤 일데도 맡겨서 행하게 하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다른 사람들이 '당신은 은사를 받지 못했다'라고 말할때 그들의 말 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성령의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 알 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관찰하고 판단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떤 때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 좋다는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에 대 해서도 나 자신 안에서 주관적으로만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 를 받는 과정에서 이런 평가도 살펴야 되는 것이다.

VI. 성령의 은사가 교회에서 역사하려면

끝으로 성령의 은사가 교회 안에서 역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라 는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1) 우리는 적절한 성령의 은사를 발휘할 장을 교회 안에서 발견해야 된 다. 우선 교회 안에 성도들이 모일 때 서로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갖도록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먼저 그들이 마음 속에 안도감을 갖게 하고 두려 움이 없도록 분위기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교회에 모일 때 하나님 이 거기 계시다는 느낌과 기대를 가지고 나온다. 교회에 나올 때 하나님이 무언가를 말씀해 주시고 행해줄 것을 기대한다. 이러한 믿음과 기대감을 가 지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나온 사람에게 이 앞에 있는 강단에서만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어떤 일으리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회중 가운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어떤 일을 하 시는 것이 아니라 역사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 는 교회 안에서 회중들이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임할 때 그 안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 다음은 성령의 은사가 교회 안에서 진행되게 하기 위해서는 바른 조직 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예배가 올바른 조직을 완전히 무 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예배의 구조라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행하느냐 하는 구조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 예 배의 모든 순서를 통해서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나타내도록 해주는 그런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 전체 예배뿐만 아니라 그룹,구역,속회, 작은 그룹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구조 속에서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분위기와 여유가 만들어져야 한다.

2) 성령의 은사가 교회 안에서 바르게 역사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실 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때때로 우리 마음이 불편해지고 거북스러운지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에는 우 리가 어리석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그런 분위기로 이끌어 나가야 되는 것이다. 나는 주 님 앞에서 깊이가 낮은 물이 되기 보다는 깊이 흐르는 강이 되길 원하다. 우리가 실패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만 있다면 그 실패는 결단코 실패 가 아니다.

3) 성령의 은사가 교회 안에서 올바로 역사 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분위기 가 필요하다. 우리가 사랑에 근거해서 서로의 잘못과 부족을 시정해 줄 때 는 결과가 좋지만 사랑 없이 잘못을 시정해 준다면 그 사람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 함게 모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의 분위기 가 운데 관계를 맨어야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항상 자기의 개 인적인 권위를 주장하고 요구한다면 그 분위기는 깨질 것이다.

4) 성령의 은사가 교회 안에서 올바로 나타나고 실행되기 위해서는 성경 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하나님 앞에 경건하고 성경적인 지도자가 예배를 인도해 줄때 예배의 참여한 모든 회중이 마음에 참된 안도감과 평안을 느낄 것이다. 이 경헌한 예배 인도자들은 회중을 위하여 예배 방향을 바로 인도 해줄 것이다.

5) 우리가 기대치 않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은사가 개발될 수 있다 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 나는 우리 교회 안에서 예언적인 은사가 시행되었 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바로 그 사람 때문에 나는 아주 소심하고 소극적이 어서 그런 기대를 전혀 갖지 못했던 사람이다. 나는 우리 자신의 판단에 따 라서 이 사람 같으면 도저히 아무 것도 안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6) 교제권 속에 있거나 그들에게 알려진 사람을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신 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회중에 들어온다. 그리고 나서 그 예배 순서에 끼어들어 방해를 한다. 이러한 일들을 우리는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시행할 사람은 회중이 알고 있거나 또는 소개된 사람만 가능하다.

7) 성령의 은사는 성경이 기록된 말씀에 따라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 우리가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한 우리에게 행 해지는 성령의 은사는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 성령의 은사는 교회 안에서 올바로 시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이 성령의 은사를 골고루 원하시는 대로 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여러분들이 성령의 은사를 골고루 원하시는 대로 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 위해 기도하길 바란다. 그런 뒤 확신에 근거해서 이 러한 성령의 은사를 우리의 삶의 현장에, 사역의 현장에 실제로 이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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