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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후반전 (요 1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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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본문에서 여자는 마리아,사랑하시는 제자는 사도 요한을 말한다.

 요한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마지막 사건이며 또 유일한 사건이다. 요한복음의 기록대로 말하자면 여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아들아 보아라 네 어머니니라"하시고선 드디어 '다 이루었다'하시곤 돌아 가셨다는 말이다.

 오늘 이 기록은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뭐긴 뭐야 아들이 죽어 이제 아들 노릇 못하게 되었으니까 믿을만한 제자에게 어머니를 맡긴 것이지 심청이 보다 더 지극한 눈물겨운 효성을 말하는거야-

그러나 그런 해석은 너무나 터무니 없는 해석이다.

이미 예수님이 집을 떠나고 어머니와 형제들을 버린지는 수년전의 일이며,제자들에게도 자기를 위하여 집이나 부모 형제를 기꺼이 버리라고 말씀 하셨다. 새삼스럽게 죽는마당에 신경쓰는 척할 필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요한이 이글을 기록하는 때는 이미 예수님이 마리아를 비롯한 모든 신자들에게 영광의 주로 믿어지고 섬김받고 있던 때였다.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중 가장 중요한 십자가 사건을 기록하면서 새삼스럽게 예수님의 인간적인 효성을 다시 기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 오히려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격상 시킬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천주교가 그런 오해를 해버렸다.

 또한 예수님의 형제들도 여럿 있었고 지금까지 그들이 잘 모시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그 어머니를 빼앗아 자기 제자에게 맡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아마 그 때 당시 마리아의 집은 먹고 살기에 그리 문제 되지는 않았을 것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런 해석도 있다.예수님의 아우들은 그 당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맡길 수 없었다.그래서 제자에게 뺏어 주고 간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그런 예수님의 배려까지 생각해 낸다는 것은 상상력일 뿐이다. 사도행전 1:14에 보면 다락방에서 약속의 성령을 기다리는 기도모임에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도 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그러니 예수님이 아우들의 불신 때문에 어머니를 특별히 염려 했다는 것은 억측에 불과하다.

 그러면 무엇인가 무엇때문에 요한복음은 이 사건을 이토록 중요하게 증거해주고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요한복음을 이해하는데 요한의 상징법을 알지 못하면 요한복음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오늘 본문의 행동을 상징적행동으로 본단 말이다.

 상징적 행동이란 이게 뭡니까-영삼,브이(김대중)

오늘 본문의 사건도 그렇게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자야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사랑하는자야 보아라 네 어머니니라"

이런 요한의 상징법은 그가 기록한 다른 성경인 요한 계시록에 가면 훨씬 더 풍성해 진다.따라서 요한 계시록은 상징적으로 해석할 줄 모르면 대부분을 오해하게 된다.

 따라서 마리아에게 새 아들을 주고,요한에게 새어머니를 갖게하는 이 행동은 상징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이런 행동은 구약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 종종 강요하시던 방법이기도 한다. 그 예를 하나만 든다면 에스겔을 들 수 있다. 하나님은 그에게 여러가지 상징적인 행동을 요구하는데 심지어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기까지 한다.그리고선 울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부위하는 식물도 먹지 말라고 하신다. 이는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이 성전을 뺏어 가겠다는 의미를 담는 상징적 행동이었다.

또 호세아 선지자에게는 바람난 아내를 가서 찾아 오게한다.이것 역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려는 상징적 행동이다.

오늘 본문의 십자가 사건도 역시 그런 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요한이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는 그 행동이 바로 상징적 행동이다.

 그러면 오늘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창3:15,범죄로 타락해서 사망의 권세 아래로 쫏겨나는 아담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다,"때가 되면 여자(본문과 똑 같은 단어로 쓴다)의 후손 중 한 씨가 뱀의 대구리를 부술 것이라"여기에 아담과 하와는 아멘 할렐루야 위로 받고 소망 중에 에덴 동산을 떠날 수 있었고--그 이후로 수천년의 세월 동안 이 약속이 모든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 되어왔다.

 그런데 그 약속과 소망이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순간 드디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약속의 때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이 사건이 있은 다음 곧 이어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죽더라"로 십자가이야기를 끝낸다.다시 말하면 오늘 본문의 사건하고 창3:15 약속의 성취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창3:16절에 그 후손은 잉태와 해산의 큰 고통을 통해 오게 되 있다.지금 십자가 곁에 섰는 마리아는 새로운 하와,즉 여자로서 가슴을 칼로 찌르듯 하는 큰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 약속의 자손,즉 메시야를 낳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마리아가 언급되는 곳은 단 두곳인데 2장가나 혼인잔치 사건과 오늘 본문 단 두곳이다. 거기 모두에서 주님은 마리아를 여자여--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이 호칭은 창3:15에서 하와를 가르킬 때 부르던 말이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마리아가 술 부탁을 할 때 ,여자여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그런데 그 때가 이제 된 것이다.죽임 당하고 부활하여 승천하실 때가 온 것이다.

 여기서 이제 계시록 12장에 가보자 원래 계시록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요한복음을 설명해주고 해석해준다. 오늘 사건도 계시록 12장에 가보면 그 의미가 완전히 드러난다.

 전반전거기에 한 여자가 사탄 용의 위협을 피해 가며 해산의 큰 고통을 통해 한 남자를 낳는다. 그리고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그 아들은 하나님 보좌 ,하늘로 올라간다.

후반전그렇게 아들을 놓친 화가 난 용은 그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고 그 여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곳으로 피해 가서 양육 받으며 다시 자손들을 낳는다.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이 남은 자손들은 용과 싸우기 위해 바다 모래 위에 선다.

 만국을 다스릴 한 남자,곧 하늘 보좌로 오르신 그 남자 아들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이며--요한복음에서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자라고 부르고 있다.그러면 그 여자는 누구겠는가-구약 이스라엘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한다.

그 다음 그 아들이 하늘 로 오른 후 그 여자가 다시 난자들은 누구겠는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자들,남은자들-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 하신 후 태어난 신약의 성도들을 의미한다.

요한 복음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자는 그의 계명을 지키는자며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그리고 이 여자는 신약의 교회를 의미한다.물론 구약이나 신약의 교회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아들의 부활 승천으로써 그 두 때가 구분된다

이제 오늘 본문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리해보자.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사랑하는자여 보아라 네 어머니니라"

이제 아들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받아 하늘 보좌로 오르신다.그래서 이제 신약의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와 양육을 받으며 새 언약의 백성들을 낳을 것이며 ,새언약의 백성들은 그 신약의 교회를 섬길 것이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여자는 신약교회,사랑하심을 입은자는 원래는 하나님의 아들의 호칭이었으나 이날 이후로 신약의 모든 성도들을 부르는 호칭이 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후반전의 ,하늘로 올라가신 그 아들 (1)뒤에 남은 자들이다.

앞으로 따라 올라갈 자들이란 소망을 가지시길 축원한다.(2)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는자들이다.계명을 알고 지키는 것을 돈을 보고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게 되기를 축원한다 (3)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거하는 증거가 충만하시길 축원한다.

(4)사탄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 양육되고,훈련되고 싸움터에 내보내지는 자들이다. 만국을 다스리시는 아들의 권세로 죄와 사탄과 싸워 이기는 승리자되시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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