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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은 양의 비유 (눅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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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비유 가운데 잃은 양의 비유 만큼 잘 알려진 것 도 드물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 누가복음 15장 4-7 절까지의 말씀을 통 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서로 나누고자 합니다.

 잃은 양의 비유를 알기 전에 먼저 , 전체 장에서 이 잃은 양의 비유의 위치를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은 하나의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15장에 나오는 3개의 비유를 통해 분명해 집니다. 즉 잃은 양의 비유, 잃은 은돈의 비유, 그리고 잃은 아들의 비유들 속에서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것을 찾았을 때 가지게 되는 기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세번째 비유인 잃은 아들의 비유에서는 잃었던 사람의 상황과 , 탕자 의 돌아옴에 기쁨 대신 분노를 표현한 떠나지 않은 아들의 상황이 표현됩니 다.

 이것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올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를 손가락질 할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비유입니다.

그 비유중의 하나인 잃은 양의 비유는 목자가 다른 양들을 떠나 혼자 길 을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의 기쁨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인이 회개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비유가 끝나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결론은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과 비교할 때 회개하는 죄인이 더 큰 기쁨을 가지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즉 회개하는 사람에게만 구원이 있고 회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의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에게 이 기쁨을 가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가 장 거룩했던 무리들인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가장 천대의 대상이었던 세리, 죄인들을 대상으로 하였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잃은 양을 발견할 때까지 찾아다닌다고 4절에서 말하고 있습니 다. 사랑하는 자녀를 잃어버려본 적이 있는 부모님들은 그 심정을 아실 것입니다. 자녀들이 아닐 찌라도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을 잃어버렸을 때 그로 인해서 나타나는 수많은 고통은 당해 보신 분들만 아실 것입니다.

 바로 목자의 심정이 그런 심정입니다. 잠은 물론이고 맛난 음식조차 입 에 댈 수 없는 심정, 만약 돌아오기만 한다면 무엇이라도 다 해주고 싶은 심정, 이런것이 목자의 심정이기에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은 6 절의 잔치까지 차릴 정도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양이 돌아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찾아다니는 것은 목자이지만 15장 전체를 보면 그 양이 돌아올 결심을 해야 함이 분명합니다. 7절에도 보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 이라고 했 고, 바로 뒤에 있는 비유인 잃은 은전의 비유에서도 10절을 보면 "죄인 하 나가 회개하면 ..."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의 잃은 아들의 비 유에서도 아버지는 기다리셨지만 결코 사람들을 동원하여 찾아 다니지 아니 했습니다. 오직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잃은 양의 비유가 죄인을 사랑하시고,세리와 죄인들을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참예케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의 의지도 필요한 데 그 것을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도 그들이 들을 마음을 가지고 왔기에 그 일이 가능했습니 다. 만약 우리의 의지가 없이 오직 모든 일은 하나님에 주관 하신다면 우 리는 힘써 하나님을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찾고 구하고 인도하 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 본문 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말은 무슨 말입니까 즉, 우리의 사명을 말 해주는 것입니다. 누 군가가 세리와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왔고 그 결과 그들은 영생의 주님을 소유 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우리의 주변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잃은 양들이 자신의 불행도 모르는채 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 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마치, 생수를 경험하지 아니한 사마리아 여인은 그 필요를 몰랐던 것 처 럼,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아니하여 자신이 잃은 양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 다.

 그리고 또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잃은 양의 비유가 똑같이 나오는 마태복음 18장 10절부터의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 니다. 같은 잃은 양의 비유가 나오지만 이곳에서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 다.

 18장 전체를 훑어보면 1절부터는 어린아이처럼 낮추라는 말이 나오고, 6 절부터는 작은 자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말라고 하며, 10절부터는 작 은자를 업신여기자 말라는 내용이고, 12절 부터는 잃은 양의 비유가 나옵니 다. 그리고 그 뒤에는 죄 짓는 형제에 대한 용서, 끝 없는 용서,용서하지 않은 악한 종의 비유가 계속 나옵니다.

 즉 18장의 잃은 양의 비유의 주제는 18장 전체의 주제와 일치합니다.

즉 1절의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 과 6절부터의 "작은 자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 짓게 하지 말라"와 10절 "작은 자를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 는것은 14절의 결어 "작은 자들 가운데 하나라 도 잃어버리지 않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으로 종합이 됩니다.

 누가 복음에서는 찾았을 때의 기쁨을 말하지만 , 마태복음에서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길을 잃은 것을 원치 아니하시는 다는 것을 말 해 줍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의 의미 만큼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에는 열심이지만 (그것도 하는 사람만 하겠지만요) 전도 해서 앉혀 놓으면 이젠 끝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찾으시는 목자의 심정을 생각해 볼 때 ,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영적인 치유문제는 꽤나 갈급한 것이고, 이것을 제대로 하 지 않았을 때, 즉 공동체 안에서 어느 적은 자라도 소홀히 되거나 무시되거 나 잃게 되는 사례가 있게될 때,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설때 계산할 것이 무 척 많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마태복음은 제자 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 중에서 적은 자 하나라도 결코 소홀히 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그 비유를 제 자들에게 하셨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 비유와 교훈은 우리들에게도 적용 이 됩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의 제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비유이고 , 우리에게 주신 교훈입니다.

 우리는 오늘 두가지 형태의 잃은 양의 비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아까 말 씀 드린데 누가 복음의 잃은 양의 비유는 우리들에게 선교적 사명을 이야기 해줍니다. 잃은 양의 비유와 함께, 잃은 돈의 비유,잃은 아들의 비유가 같이 잃은 것의 찾음에 대한 기쁨을 말해줍니다.

 잃어진 곳과 찾아야 할 곳은 바로 교회 밖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라 고 하는 바리새파 사람, 서기관들이 외면하며, 비난하며, 멸시하는 이방인 들, 세리, 죄인들이 바로 잃은 자들이며, 그들을 교회에 돌아오게 하며, 회 개시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잃은 양 비유는 이같은 한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이야기임으로 우리 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인 잃어진 자들에게 눈을 돌려야 함은 마땅합니 다.

 오늘날 교회지도자격인 남선교회,여선교회,청년회 회원들이나 교인들이 불신자를 멸시하며 무관심하면 하나님의 기쁨은 사라질 것입니다. 목자는 바깥에 잃어진 양들을 찾아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 하나를 찾을 때까지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다 겪을 것입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찾고야 마는 목자 의 정열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굶주리며, 헐벗으며, 죄로 비참해 진 인생들 하나 하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이방인들인 불신자들을 향한 선교 정책을 보다 강 하게 세우고, 한 영혼에 대한 애착과 사랑을 가지고 교회 일을 해야 할 것 입니다. 그래서 돌아온 영혼이 있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대외선교, 즉 공산권 선교, 타 종교 선교, 언어 풍습 전통 이 다른 타 문화권 선교, 교포 선교 등 해외 선교에까지 확대시켜서 누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계 복음화 과정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마태복음에서 말한 것 처럼 교회 안에 들어온 제자의 무리 즉, 교 인들을 잘 관리하고 돌봄으로 어느 한 생명도 잃어지게 말도록 즉, 오도되 지 않도록 해야만 합니다. 14절의 말씀처럼 소자중의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오늘날 대교회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교회는 옷잘입는 사람, 돈 많은 사람, 권세 가진 사람이 오면 크게 환영해 주고 보 잘 것 없는 사람이 오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사례, 한 교인에 대한 교육 프 로그램 즉 교인 양육 계획에 대한 무관심, 몇 천명씩 모이는 큰 교회는 한 교인이 타락해도 마음에 충격이 없는 무관심한 모습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린이 또는 작은자 에 대한 관심은 극소하고 모든 것이 어른 위주의 목 회, 교인과 교역자 사이에 대화가 없어 교인 한 사람의 문제가 전혀 고려 되지 않는 대량주의 목회, 1년에 한번도 담임목사와의 대면이 없는 교회,교 회 밖에서 인사를 하면 성도인줄 알아볼 수 없는 목회, 교인들이 탈선을 해 도, 이단에 빠져도, 어디에서 무슨 성경 공부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 하는 현대판 대교회 목회는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것은 교역자들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남선교회 내의 일 이고, 여선교회 내의 일이며, 청년회 내의 일이고, 교회학교 내의 일인 것 입니다. 평신도도 마찬가집니다. 하루라도 먼저 온 신도는 모범이 되고 늦은 신도의 교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자는 것이 오늘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우리교회는 절대로 타락한, 안일한 ,무성의한, 세상을 사랑하는 그런 교 회가 되서는 안됩니다. 오직 대내적으로는 사랑과 아낌과 겸손, 순종, 봉 사로 화목하고, 대외적으로는 세리와 죄인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본 받아 최선을 다하여 전도해야 할것입니다.

 물론 이로 인하여 얻어지는 손해도 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 혹은 서 기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지탄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의 바리새인 과 서기관은 누구일까요 오랜 , 그리고 형식적인 종교적 생활로 습관화 된 그런 사람이 오늘날의 바리새인일 것이고, 종교를 지식으로만 이해하려 는 지식화된 그런 사람이 오늘날의 서기관일 것입니다.

 박사가 높은지 목사가 높은지를 모르고 박사까운을 입고 당당하게 단 위 에서 설교하시는 그런 분들이나 , 영혼구원 보다는 정치나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신 분들에게서 우리는 손가락질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날도 세무소 직원은 언제나 최고의 불법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리를 욕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모습은 정당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정당함을 보지 않으셨고 영혼의 구원을 최고의 목표로 보셨기 때문 에 세리를 사랑하고 그들을 돌보신 것입니다.

 영혼구원은 교회의 사명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였습니다. 이 귀중한 영혼 구원의 사명이 결코 악세사리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온몸과, 정성과, 힘과 , 모든 열심을 다하여 주님이 명령하신 이 명령들 을 지켜 나갈 때 우리는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랑스러운 귀한 자녀가 될 것입니다. 아멘

설교 하는 마음으로 작성하라고 하셔서 대지,소지는 따로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화는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삽입하지 않고 본 문만을 사용했습니다.(상황에 따라 예화를 넣을 것입니다.) 대예배를 설 교하는 마음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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