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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개인 전도자의 자격과 자세 (요 0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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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전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막연한 생각이나 부담감만으로는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전도자의 자격

첫째로,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이는 전도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도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다른 교회에서 목회할 때 어떤 남자분에게 전도를 했는데 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분은 제게 "목사님, 제가 목사님에게 이렇게 뻗대지만 다른 데 가서는 제가 전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그리스도인인 그 분이 제 앞에서는 기독교를 공격하다가도 안믿는 자기 친구들 앞에 가면 전도를 잘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서도 불신자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공격하면 화를 내면서 방어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어도, 모태 신앙이기 때문에 혹은 들은 풍월이 많아서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하는 사람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고 자신이 구원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구원에 대해 확신과 함께 감사가 있는 사람들은 예수를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아립니다. 이 사람도 예수를 알아야 하는데 하면서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새로운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기 때문에 무엇을 봐도 다릅니다. 구원의 확신이 생기고 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구원의 확신과 구원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가슴 속에 있는 사람들은 전도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젊은 연인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우선 표정부터가 다릅니다. 눈빛이며 태도가 아주 이상야릇합니다. 부부가 앉아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 속에 있는 사람들은 조용하면서도 그 가슴 속에 열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거나 헤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자꾸 끌리고, 하나님께로 가고 싶어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하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나를 먼저 사랑하신 사건이, 이 세상에서 내가 사는 동안에 나에게 알려지고 나타났기 때문에 그 사랑에 붙잡히고 감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알게 됨으로써 그분에 대한 사랑이 나에게도 움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전부터 우리를 사랑해서 지속적으로 우리를 추적해 오셨습니다. 어떤 때는 친구를 통해, 어떤 때는 목사님들을 통해서, 어떤 때는 이웃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계속 부르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십자가를 통해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영원한 하늘 나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을 알게 되니까 자연히 우리 가슴 속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싹트게 됩 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사랑을 품게 된 사람들이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물건을 좋아합니다.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 가든지 갖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로 백화점을 돌아다닙니다. 누가 무엇을 가지면 그것을 갖고 싶어하고 어떤 때는 가져가기까지 합니다.
반면 사람중심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물건보다는 사람들을 중요시 여깁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사람 중심적인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창조하실 때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인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고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서로 대화가 되고 친교가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귐에서 얻는 재미는 장난감 가지고 노는 재미와는 상대가 안됩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과거에는 물건 중심적인 때도 있었지만 예수 믿고 나면 물건에 대한 흥미보다는 사람에 대한 흥미가 점점 증가합니다.
세상에서 화목한 가족의 모습보다 더 멋있고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아이를 안은 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신비롭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만 외따로 있는 것 이 아니라 두 사람이 어울려 있는 그 모습들이 저한테는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요
언젠가 길을 가는데 어떤 아빠가 아들의 손을 잡고 가는 뒷모습을 보았습
니다. 그때 참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대개 남자는 물건 중심적입니다. 밖에 나가서 돈 많이 벌어오고 큰 집을 사고 합니다. 그러한 것이 남자의 특징인데, 남자가 자기 아들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는 정겨운 모습을 목격한 것입니다. 남자들은 대개 자라나면서 어머니의 사랑은 많이 받는데 아버지의 사랑은 못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자는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오해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한 사람이 온 천하보다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눈을 가지고 사람을 보는 사람들이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친척이든 이웃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저 사람들도 내가 아는 이 예수를 알았으면… 내가 아는 이 만족한 삶을 알았으면…하는 마음에서 전도하게 됩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가진, 사람 중심적인 사람이 자발적으로 전도합니다. 물건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 때문에 세상 가는 줄 모릅니다. 컴퓨터를 좋아하는 사람은 컴퓨터와 이야기하고 게임하는 것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심취하는 것보다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믿는 사람은 점차 사람 중심적으로 변해 갑니다.

넷째로,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또 마귀의 손에서부터 하나님의 손으로 옮겨지는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사리 되는 일은 아닙니다.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에 반드시 영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전도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놓고 그 사람을 위해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위해 오랜 시간 꾸준히 기도할 때 그 사람을 영적으로 점점 사랑하게되어 결국은 그 사람을 자기 가슴속에 잉태하게 됩니다. 가슴 속에 잉태된 그 영혼은 언젠가는 태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다섯째로,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을 헌신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게는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하는 기도가 그 입술에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마리아가 자신의 몸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내놓았던 것처럼 자신을 헌신합니다.

여섯째로, 전도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무조건 아이를 키우는 것과 육아에 대해 공부하면서 키우는 것은 다릅니다. 전도할 때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질문하면 무슨 내용으로 대답해야 할지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전도 훈련을 받은 사람은 훨씬 마음 편하고 자연스럽게 복음 제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만 급해서 "우리 교회에 가자"는 이야기밖에 못 합니다. 인도도 하고 전도도 할 수 있으려면 전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훈련받아야 합니다.

일곱째로, 직접 전도를 해 보아야 합니다.
배운 것을 가지고 반복적인 전도 실천을 해야 합니다. 몇 번 해보면 그 방법과 원리를 터득하게 됩니다. 전도하는 삶을 살 때 사는 재미를 맛보게 됩니다.

전도의 한 예-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요한복음 4장에서 우리는 전도의 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물가에 앉아 계시는데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돼지나 죄인처럼 취급했습니다. 그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앗수르와 유대인들간의 혼혈 족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인 예수께서 그 당시 관행을 깨고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목이 마르니 물을 달라 하시면서 말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다소 놀라는 듯하다가 예수께 물을 주었습니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그 여자와의 접촉점을 자연스럽게 찾은 것입니다. 우리도 전도할 때 먼저 상대방에게서 공통점이나 접촉점을 찾고자 해야 합니다. 단도직입적인 대화가 아니라도 간접적인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신상에 대해 자연스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물을 달라고 하자 사마리아 여자는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9절)라고 물었습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예수님은 외모상으로도 유대인인 것이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출생 신분을 가지고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에 대화의 다리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의 물음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전도자는 상대방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 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11절).
그 당시 물 긷는 것은 여자들의 일이었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이나 물을 길러 다니는 것은 참으로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유대인이 생수를 준다고 하니까 사마리아 여인은 이 사람과 잘 사귀면 물을 길러 안 와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이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 까」"(12절).
이제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생수를 원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전도자는 상대방에게 원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생수란 "영생"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4,15절).
바로 이 부분에서 예수께서는 결정적인 부분을 건드리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16절).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이 여자에게는 사실 남편이 없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솔직하게 사실을 말했고 이로써 그녀는 죄인임이 드러났습니다. 전도자는 죄인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렇게 되자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 이야기를 예수님이 더 이상 못 하시도록 논쟁을 벌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20절).
어떤 사람들은, "예정된 사람들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내가 예정받은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할거냐"고 시비를 겁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담배나 술을 못하게 하는데 그게 무슨 죄가 되냐"고 합니다. 또 "꼭 교회를 가야 예수믿는 거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회에 가 보니까 형편없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피전도자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영적 도전을 피하기 위해 신학적, 성경적 논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만약 피전도자와 이런식으로 논쟁에 휘말리게 되면 복음 제시까지 가기가 어려워집니다. 되도록 논쟁을 피해야 합니다. 간단히 한 마디 정도만 언급하고 바로 복음 제시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사마리아 여인이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고 시비를 걸어오자,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21,23절 )라고 하신 후에 곧바로 복음 제시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25절)라고 응답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제 영적인 흥미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이때 예수께서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26절)고 하시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히셨습니다. 메시야인 자신의 신분을 보여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이라고만 생각했다가 점점 "선생님", "야곱보다 크신 이", "선지자"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던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가 지금까지 얘기한 사람이 바로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기뻐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복음 제시를 듣고 결신한 사마리아 여인은 동내방내 다니며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전도해서 온 동네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 과정입니다. 오늘날도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유대인 정도로 알고 있고, 어떤 사람은 훌륭한 사람으로 알고 있고, 어떤 사람은 종교 지도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인간의 구주이심을 발견할 때 그들은 결신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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