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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에 기록된 기적-비폭력의 기적 (마 26: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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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가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기로 작정한 후에 무리를 이 끌고 겟세마네 동산에 당도했을 때,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 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그의 귀를 만져서 낫게 하는 기적을 베푸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 니라(52절).

이 말씀과 산상수훈의 메시지에 큰 감동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 그는 인도의 큰 혼(魂) 마하트마 간디입니다. 간디는 대영제 국의 식민지 정책에 대항하여 인도의 독립을 위하여 일어설 때, 본문 말씀을 근거로 하여 폭력을 배제하고 사랑과 진리로 민족을 위하여 싸우는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칼을 가진 사람에 대항하여 진리와 사랑으로 싸우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받은 간디는 다음과 같은 위대한 선언을 했습니다.

폭력으로 얻은 승리는 폭력으로 망할 따름입니다. 나는 사랑하는 조국 인도에 영혼의 승리를 안겨 주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는 영혼의 힘을 믿어야만 합니다.

1987년 8월 12일자 조선일보 「만물상」에 이런 기사가 실렸 습니다.

「학생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가」라고 『뉴욕 타임즈』 기자가 한국의 어느 대학생에게 질문했다. 그 학생은 폭력은 정 당화될 수 있다. 가령 나치에 대한 폭력은 정당한 것이었다….

이 글은 이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그 대학생의 논리를 우리는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폭력이 정당화될 때는 아니다. 폭력에 대한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낳는다. 비록 정당화될 수 있는 폭 력이라도 삼가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폭력을 써서 는 안 될 때이다. 지켜 볼 때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에 근거한 「거룩한 전쟁」을 제외하고는 어떤 유형의 폭력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탈바꿈을 간절히 열망하면서도 오늘날의 과격한 일부 젊은이들의 생각이나 심 지어 성경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일부 해방신학자들의 사상을 심 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점에서 간디 정신의 근원이었고 비폭력 운동의 근원이었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비폭력의 기적이 의미하는 바를 배워야 하 겠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체포하러 온 병정의 귀를 쳐서 떨어뜨린 제자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타이르면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검(劍)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이 말씀이 단순히 비폭력만을 가르친 말씀은 아닙니다. 사실 비 폭력이라는 단어 자체는 간디가 말했던 『사타크라하』라는 단어에 대한 적절한 번역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라는 단어는 대단히 수동 적이고 소극적입니다. 우리는 이 단어를 적극적이고 좋은 의미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간디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발견했던 예수님의 정신은 폭력을 쓰지 않는다는 소극적 의미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정신과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는 좀더 적극적인 정신이었고, 이것이 그의 운동의 기본 사상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본문의 메시지를 통해 칼을 쓰지 않는 중요성만을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어떻게 살 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모든 시대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는 삶의 교훈입니다. 저는 본문의 적절한 의미를 이것은 비폭력의 기적일 뿐만 아니라 인격의 기적이다라고 정의(定義)하고 싶습니 다.

인내의 기적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은 자기 목숨입니다. 인간은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는 목숨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 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 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눅 22:50,51).

히브리서 기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主)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히 12 :2).

우리는 목숨이 위태로운 현장에서도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이 요구하 시는 삶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인내해야 합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한국인의 기질 가운데 가장 크게 문제되고 있는 특성이 참지 못하 는 성급함입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점은 미국 사람들은 잘 참는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종 가운데 서 한국 사람을 구별해 내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가운데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한국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인내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절실히 느끼고 하 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람이 한국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인내를 주십시오. 지금 당장 인내를 주십시 오.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인내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쉽게 출세하기 원합니다. 쉽게 성공하기 원합니다. 거쳐야 하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기대합니다. 벼락 부자를 꿈꾸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만 달성하려 합니다. 이런 의식 들 덕분에 오늘날 한국 경제가 초고속으로 성장했는지 모르지만, 그 와중에서 우리의 인격은 파괴당하였습니다. 올바른 삶의 태도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과정을 중요시해야 합니 다. 우리는 이 과정을 무시한 대가로 오늘날 발전하고도 부끄러운 모습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짧은 시간에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부흥을 일으켰습니 다. 그러나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세상과 다름없이 수단과 방 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 인 수가 천만 명을 넘는다는 양적 팽창을 자랑하지만 한국 교회가 진정으로 세계 앞에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내 놓을 것이 없는 부끄러운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교회의 난립과 그나마 아주 작은 교회에서조차 추악한 싸 움과 분쟁이 그치지 않음을 볼 때 과정을 무시한 결과주의가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수치스러 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주님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밀알이 죽어야 함을 아셨습니다. 그 래서 그분은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 고난 다음에 올 영광을 바라보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아무런 죄 가 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셨 습니다.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께서 값 비 싼 대가를 지불하신 결과, 우리가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되 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 니다. 십자가가 없다면 기독교는 값싼 은혜의 종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십자가 때문에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값 비싼 복음이 되었습니다.

대가 없는 결과는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십자가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상당한 경제 기적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족은 결과주의에 치우친 나머지 국 제 무대에서 인격에 금이 가는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내부에 진정한 인격 혁명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인 간 관계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참을 수 없는 상황을 겪고 있 습니까? 우리 모두를 향해서 하신 주님의 말씀에 도전을 받읍시다 . 목숨이 위협당하는 순간까지도 참읍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인 내의 기적을 요구하십니다.

사랑의 기적 ^ 예수께서 이렇게 인내하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자기를 체포하러 온 사람을 도와 그의 귀를 치료하는 기적을 베 푸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 예수께서 말로만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원하십니까? 원수도 사 랑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사랑은 관념이라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사랑이라는 단어의 가장 구체적인 의미는 『아가페』라는 단 어에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의 의미는, 사랑해야 할 대상의 이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어 떤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성경이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 런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은 구체적인 친절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수고이어야 합니다. 나를 박해하고 못살게 굴고 나에게 심각한 손해나 피해를 입힌 사람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것 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 2:14).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 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 :19,20).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는 사랑이 부족합니다. 원수가 생존의 위협을 당할 때 그를 도와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경지여야 합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당신은 원수에게 구체적인 친절을 베풀 수 있습니까? 이것이 주 님이 주시는 도전입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닙니다. 사랑은 구체적 인 관심이고 수고입니다.

나치와 싸우면서 삶에 대한 많은 교훈을 남겼던 독일의 유명한 신 학자 본 훼퍼는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아름다운 고 백을 했습니다.

그분은 철저하게 타인을 위한 존재였다.

주님은 남을 위해서 평생을 사신 분이었습니다.

자신을 체포하려는 대제사장의 종에게 관심을 갖는 주님을 보십시오. 그 종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으나 주님은 그에게 관심을 보이 고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까지 이러한 모습을 보 여 주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고 조롱하고 야유하고 침을 뱉는 무리를 보면서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 니이다(눅 23:34).

예수께서는 한 강도가 회개하자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 으리라(눅 23:43) 하시며 최후의 순간까지 영혼 구원에 힘 쓰셨습니다. 그분은 마지막 피 한 방울을 흘리시면서까지 자기 자 신이 아닌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영국의 어떤 목사님 한 분이 불치의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런 데 어떤 사람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化身)이라면서 헌금 을 하면 고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그 존경받는 목사님이 이 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예수님의 화신이라고요? 그렇다면 당신의 손을 내게 보여 주십시오. 당신의 손에 못자국이 있나 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옆구리에 창에 찔린 상처가 있나 보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주님은 나를 위해 못자국을 남기셨습니다. 나를 위해 상처받은 그 주님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를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십니까? 그를 위해서 당신이 상처받기를 원하십니까 ? 희생이 없는 사랑을 말하지 마십시오.

중세 기독교에는 이런 사건도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말할 수 없이 부패해 있어서 사람들이 설교를 듣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일 때 이탈리아 산간 마을에 한 수도사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이 분의 설교만은 잘 들었습니다. 그 설교에는 수도사의 삶과 인격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수도사가 병석에 눕게 되었 습니다. 투병 중이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마지막 설 교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습니다.

주일이 되자 그 마을 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에서까지 많은 사람들 이 설교를 들으려고 몰려왔습니다.

그 날 이 수도사의 설교 제목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는 부축을 받으며 강대상에 올랐습니다. 수도사의 요청에 따라 교 회 내부의 불을 모두 껐습니다. 캄캄한 교회당에서 등불을 높이 든 수도사가 강단 앞의 고통당하는 예수님 상(像)을 향해 비틀거 리며 걸어갑니다. 그는 등불을 높이 들더니 예수님의 못자국 난 손에 등불을 비추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창에 찔린 옆구리에 등불 을 갖다 대었습니다. 사람들은 수도사가 든 등불을 따라 못자국 난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지켜 보았습니다. 등불을 다 비춘 그 는 천천히 강대상에서 내려왔습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설교였습 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상처를 통해 우리를 향한 사랑을 증명하 셨습니다. 당신은 이웃의 수고와 아픔을 짊어지고 상처를 받으면서 구체적인 이웃 사랑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께서 이 사랑의 기적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적  예수께서 칼을 쓰지 않으시고 순순히 십자가로 가신 이유가 무엇이 겠습니까? 마태복음 26장 5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營) 더 되는 천 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한 영은 삼천 명 내지 육천 명으로 구성된 로마 군대의 편성 단 위입니다. 예수께서 살려고 하셨다면 얼마든지 사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향해서 가신 이유는 다음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54절).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었기 때문 입니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중요한 시대 정신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내 힘을 과시할 것인가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 들에게 불을 내려 다 없애버렸다면 이것은 얼마나 멋진 힘의 과시 가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나의 힘을 과시할 것인가, 나를 욕되게 하고 있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혼쭐을 낼 것인가?를 고 민하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인가를 생각하 셨습니다.

당신은 욕을 먹고 손해를 보면서도 분노하고 앙갚음할 생각을 하는 대신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을 갖출 수 있습니까? 영국의 유명한 장군이며 정치가이고 수상까지 역임한 바 있는 크롬 웰은 인기와 권력의 정상에서 하루아침에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나는 이제 내 시골 교회당에 돌아가서 말씀을 가르치며 주님을 섬기고 싶소.

『아니 수상 각하, 각하는 아직도 힘이 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떠나려고 하십니까?』 나는 환상을 좇지 않습니다. 나는 주님의 뜻을 좇고자 합니다.

권력을 붙들고 있는 것,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 그것은 크롬웰 에게 환상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동화책에서 본 것이 생각나는데, 엄마와 어린 딸이 들판으로 소풍 을 왔습니다. 아이가 나비를 보고 잡으려고 쫓아갑니다. 그때 엄 마가 소리를 칩니다.

안 돼, 거기로 가면 안 돼! 이 아이는 나비만 보다가 그만 앞의 절벽을 보지 못하였던 것입니 다.

당신이 추구하고 있는 권력, 야망과 성공 바로 건너편에 어쩌면 우리 인격의 파멸이라는, 영혼의 파멸이라는 절벽이 당신을 기다리 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 환상을 좇다가 정말 중요한 삶의 자세를 잃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환상을 좇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 님의 뜻을 구하고 있습니까? 요한일서 2장 17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 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당신은 어떤 상황 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무엇이 당신을 고민하게 만듭니까? 현재 상황에서 내가 받는 상처, 내가 당하는 어려움 이나 손해를 중심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 지 발견하십시오. 주님 뜻에 순종하기를 간구하십시오. 이것이 십 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인격의 기적을 구할 수만 있다 면 우리 삶은 큰 변화를 맛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 정신에 근거한 인격의 기적을 우리 민족에게 주 고자 하십니다. 이 기적은 어떤 정치 지도자에게만 요구할 사항은 아닙니다. 이 민족의 구성원인 당신은 오늘이라는 역사의 현장에 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당신과 가까이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웃들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새롭게 결심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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