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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는 대로 끌리고 듣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존재'와 '되어짐'의 문제, 곧 사람이 being이냐 becoming이냐--독립된 존재냐 환경의 산물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끝없이 왈가왈부합니다마는 쉽게 해답이 나올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은 엄연히 하나님 앞에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만물에 대해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독립된 존재입니다. 사람은 환경이 낳은 사생아(私生兒)가 아닙니다. 만일 사람이 환경의 산물이라면 그에게는 아무 책임도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책임을 물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으로 괴로워하여야 하는 것은 인간이 존재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보트로 보시지 않습니다. 책임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환경을 따라가라는 것도 아니요, 환경의 산물로서 살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환경을 다스리라, 만물을 지배하라--이것이 하나님의 계시적인 뜻입니다.
나는 가난하니까 악해도 된다,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부하니까 교만할 수 있다, 통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고독하니까 원망할 수 있다, 역시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 물건 도둑 맞았다고 남의 물건 도둑질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미움받았다고 내게 남을 미워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존재의 좌표입니다. 사회의 사생아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할 때에 더 깊이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이렇게 다투는 모습을 봅니다. 본래는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내 성격이 당신 때문에 이렇게 못쓰게 되었다고…… 그러나 이런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내 문제는 끝까지 내 문제입니다. 환경 탓으로 돌릴 수가 없습니다.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양심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바른 안목을 지녀야 합니다. right insight--바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듣고, 바로 보고, 바로 말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좀 거슬러 올라가 6절과 7절을 봅시다. 예레미야가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이라 하지 말라"--"나는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따라갈 뿐입니다" 하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지시하십니다. "너는 아이라 하지 말아라. 내가 가라는 곳에 가서 내가 하라는 말을 하라." 우리는 좀더 깊이 보는 안목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대영 학술협회가 신경성 정신질환 500가지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그 병의 원인이 외적 과로에 있는 것은 겨우 2%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연구 결과가 무엇을 말해줍니까 병의 원인은 대다수가 개인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외적인 환경 탓이 아니라 나 자신이 원흉(元兇)이라는 것입니다. 돈 때문도 아니고, 누구 때문도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우리가 지녀야 할 것은, 깊은 곳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그런 문제를 볼 줄 아는 안목입니다.
제가 늘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똑같이 흉내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언짢을 때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면박을 주지는 못하지만 마음속으로 '그게 아닌데……' 할 때 말입니다. "왜 이리도 교회가 많으냐! 아래윗집이 다 교회요, 한 집 건너 교회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저렇게 또 교회를 짓고 있으니……"하고 교회를 비난하는 말, 여러분도 더러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커다란 착각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한번 간단한 통계를 내볼까요 함께 생각해봅시다. 편의상 우리 교회가 위치한 강남구를 예로 들겠습니다. 행정구역으로서의 강남구 인구는 얼추 70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중 42%가 기독교인이라고 구청 통계에 나와 있습니다. 이처럼 교인이 많다고 해서 강남구에는 '교회구'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교회와 교인이 가장 많은 구가 강남구라는 말씀입니다. 줄잡아서 약 30만 명이 교인이라고 합니다. 이제 그 30만 교인을 놓고 생각해봅시다. 한 교회가 평균 200명을 수용한다면 교회가 몇 있나 있어야 하겠습니까 1500 곳은 되어야 현재의 교인을 모두 수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기존 교회들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30만 교인 중에는 강북에서 이사와 아직 강북 교회를 찾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만약 강남 사람들이 모두 강남 교회를 찾는다면 교회는 현재보다 다섯 배는 더 많아져야 합니다.
자, 이래도 교회가 너무 많다는 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처럼 생각 없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마귀적이요 불 신앙적인 이야기입니다. 교회서는 것을 보고 짜증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공산당 아니면 마귀밖에 더 있겠습니까 저는 아파트 위에 십자가가 세워진다는 것을 별로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밤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에 밑을 내려다보면 거기에 빨간 십자가들이 군데군데 서 있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볼 때에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이곳이 내가 사는 땅이다 생각하면 기분이 매우 좋아집니다.
일본을 여행할 때에 가장 기분 나쁜 것은 어느 곳에서나 십자가를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믿는 사람한테는 교회가 둘이든 셋이든 많이 보이면 많이 보일수록 반가운 것입니다. 어찌 이것이 달리 보여질 수 있겠습니까
사도행정 18장을 봅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가서 전도를 하는데 핍박이 많고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도할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그처럼 나약해 있을 때에 성령께서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여기에 아직도 많이 있다, 그런고로 두려워 말고 복음을 전하라--하나님께서 독려하십니다.
우리는 깊이, 그리고 멀리 볼 줄 알아야 합니다. 10년 후 20년 후 그 언젠가 우리 후손들이 오늘의 이 세대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할 것인지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을 지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눈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세상을 보고 나를 보는 영적 안목(spiritual insight) 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물을 보는 기존을 이성과 감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이성에 근거한 통찰은 자기 지식이 기준이 됩니다. 합리적인 상식에 비추어 자기가 아는 것은 보고, 자기가 모르는 것은 부정합니다. 자기가 경험한 것은 인정하고, 자기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부정하려고 듭니다. 이렇듯 지식에 묶인 눈--이것도 큰 병입니다. 세상에는 내가 못 본 것도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내가 못하는 일은 하나님도 못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못한다고 다른 사람도 못합니까 자기 지식에 근거한 지나친 이성적 판단이 사람의 생각을 어리석게 만들고, 눈을 흐려놓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 감정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도 문제를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모든 것을 기분으로, 감정으로 봅니다. 이를테면 '나와 친한 사람은 다 좋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다 나쁘다' 라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이지요. 자기 사랑에 기준해서 좋다 나쁘다, 의다 불의다를 판단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그렇다면 진실을 진실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믿음의 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는 12명의 정탐군을 뽑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요단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을 살펴보고 오게 합니다. 그중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경과 보고를 이렇게 합니다. "그곳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제 들어가서 살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열 사람은 전혀 딴소리를 합니다. 성벽이 하늘에 닿았다고 말합니다(신 1:28). 하늘 만큼 높은 성벽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레 겁에 질려서 과장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한다는 소리가 '아낙 자손들은 장사요, 그들은 보고 우리를 보니 마치 메뚜기 같더이다' 하고 한심한 소리를 합니다(민 13:33). 믿음 없이 보면 저들처럼 됩니다. 만사를 불가능하게 보고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안목은 병중에서도 가장 큰 병입니다. 그야말로 고질병입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볼 줄 아는 바른 안목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눈은 어떠한 눈입니까 오늘의 본문은 무엇보다도 징조를 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인(sign)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을 말씀한 것으로 우리가 잘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솨케트'인데 그 뜻이 재미있습니다. 솨케트에는 '성급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구나무는 곧 '성급한 나무'입니다. 다른 나무들은 아직 모두 말라 있는 초봄에 살구나무만 가장 먼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결국 살구나무는 이스라엘에 있어서 봄의 선구자 격인 셈입니다. 살구나무 가지에 물이 오르고 꽃이 터지기 시작하면 이제 얼마 안 있어 다른 나무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살구나무 가지는 봄이 가까이 온 것을 말해주는 sign입니다. 징조입니다.

'징조'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전에 없이 허리가 뻐근하고 무릎이 시리다, 노곤해도 막상 누우면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 것이 신호입니다. 무슨 신호입니까 늙었다는 신호요, 앞으로 더욱 쇠약해질 것이라는 시호입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아주 쉬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는 징조입니다. 죽을 조짐이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입니까 아닙니다. 시작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 25장에서 앞으로 일어날 환난을 예고하십니다. 전쟁이 있고 재난이 있고 기근이 있고 사랑이 식어지리라, 무서운 환난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이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큰 환난, 깜짝 놀랄 환난이 있겠으나 이것은 재난의 시작이다, 징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큰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버마 랑군 사건이 있었고 칼(KAL)기 사건이 있었습니다.
각종 데모가 일어나고, 폭력이며 강도며 끔찍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도처에 전쟁이 있고 기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입니다. 끝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액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본격적인 환난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오늘 벌받는다고 합시다. 그 벌로써 끝나는 것입니까 그 벌 다 받고나면 상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지요. 지금 받는 벌은 영원한 형벌의 징조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본체입니다. 앞으로 더욱 엄청난 사건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건의 징조가 바로 오늘인 것입니다.
여러분,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혹은 세계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참기 힘든 환난이 있습니까 그것은 재난의 징조입니다. 앞으로 있을 큰 사건에 대한 징조가 여기에 나타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인물 중에서 참으로 미련한 사람이라고 제가 늘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왕이 그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사람은 열 가지 재앙을 다 당했습니다. 한두 가지 재앙을 당했으면 그만 눈치채고 회개할 일이지, 글쎄 열 가지 재앙을 다 맛볼 것이 무엇입니까 미련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를 볼 때마다 답답합니다. 너댓 번 그러다가 그만두었으면 좋았지 않습니까 끝내 고집을 부리고 완악하게 행하다가 열 가지 재앙을 다 뒤집어썼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바로 왕만의 미련함이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어떤 사람은 일생토록 매를 맞습니다. 열 번 정도가 아니라 백번 천번 두고두고 매를 맞아도 정신차리지 못하는 불쌍한 심령들을 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또 예레미야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무섭게 부글부글 끓는 가마가 북에서 남으로 기울어져 있다--실로 무서운 징조입니다. 곧 쏴하고 쏟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무사하다고 해서 무사한 것이 아닙니다. 내 집이 평안하다고 온 세상이 다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아무 일 없었다고 '내일도 안녕히'가 아닙니다.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짐짓 불의의 길을 고집하다면 반드시 사고가 터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긍휼은 가리워지는 법입니다. 저 끓는 가마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을 징계하십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십니까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하나님께서 북쪽에 있는 느부갓네살과 그 포악한 사람들을 부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들이 유대를 노략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준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을 징계하십니다. 그 징계 속에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구원도 봅니다.
하나님은 죄를 타깃(target ; 과녁, 표적)으로 하여 회개할 때까지 화살을 쏘십니다. 그러나 죄를 징계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징계 속에 하나님의 구원이 있고, 당신 백성에 대한 그 사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치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북쪽 바벨론 왕을 시켜서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까지 저들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심판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개하면 그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집트에는 피라밋이라고 하는 거대한 묘가 있습니다. 고대 국왕과 왕족들의 미이라가 그 속에 있습니다. 언젠가 발굴팀이 한 무덤을 발굴해보니 4000년 묵은 미이라의 주먹 속에서 밀알이 나왔다고 합니다. 아주 재미있는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밀알 몇 개가 옥토에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4000년이면 그것이 온 세상을 덮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 손바닥에 쥐어진 밀알은 그대로 밀알 몇 개로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죽은 자의 손에서는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생명력을 잃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로 저 밀알 하나와 같이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쥐어질 때에는 마침내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대를 보고 있습니까 내가 당한 어려운 일을 보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끝이라고는 보지 말아야 합니다. 시작입니다. 앞에 있는 큰 재난의 시작이요, 징조에 불과합니다. 앞에 있는 것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끝났다 생각하지 말고 이제부터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 자체, 환난 그 자체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그 징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징계를 똑바로 보며, 그 앞에서 회개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느부갓네살을 징계의 회초리로 쓰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회초리를 드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손길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의 약속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견고한 성읍이 되고 쇠기둥이 되고 놋 성벽이 되게 하리라.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징계 저편에 있는 구원을 볼 줄 아는 바른 안목을 지니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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