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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도원 일꾼의 비유 (마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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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일꾼으로서의 부름 받음
A. 포도원의 일꾼
포도원이라 함은 영적 이스라엘, 또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해 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포도원으로 비유한 것은 포도원이 자기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심는 자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교회의 설립자이시라는 것과 포도원은 목재나 잎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열매를 원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의 일꾼으로 들어오지 못한 자는 교회에 들어오지 못한 자요 버림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된 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들이 주님을 알기 전의 상태이며 믿기 전의 상태로 이방인들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뒤늦게라도 포도원의 일꾼이 된다는 것 즉 포도원으로 불러 주신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라도 당신의 포도원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라시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포도원 일꾼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주님의 뜻을 헤아려 많은 이들을 주님의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교회에서 이동해 나오는 것보다 전도를 통하여 잃은 영혼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B. 일하라고 부르는 주인
당시 유대사회나 로마 사회에서는 직업을 구하는 일꾼들과 일꾼을 구하는 고용주가 만나는 시장이 있었습니다. 오전 6시가 되면 주인과 일꾼은 품삯을 계약하고 일터로 갑니다. 일찍 계약해서 일터로 가는 사람은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뽑힌다는 그 자체가 복음이며 희소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늦게까지 고용되지 못한 사람은 점점 불안해지고 초조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의 포도원 주인은 거의 체념할 즈음에 일하라고 부르십니다.
부름 받은 일꾼으로서는 품삯의 다소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일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한없는 축복이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일할 수 있는 일꾼을 부르십니다.
어떤 사람은 요시야 왕처럼 아주 일찍부터 부르시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계속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 부름은 구원이며 영광입니다. 그 부름 자체가 우리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그리고 부름에 순종치 않는 것은 그 자체가 큰 죄가 됩니다.

II. 주인의 의지
A. 주인의 자비하심과 선하심
품삯을 지불하자 일찍 온 일꾼들은 자기보다 늦게 온 일꾼보다는 많이 받을 줄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하자 불평을 합니다. 따라서 주인은 불평하는 일꾼에게 자신의 선함을 주장합니다.
일찍 온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늦게 온 일꾼들을 주인은 불쌍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어 준 것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입증해 주는 것이고 부연하자면 율법이 없는 우리 이방인들을 부르시되 구원은 행위에 있지 않고 우리 믿는 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있음을 주인의 자비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이처럼 한없이 넓고 큽니다. 어떠한 허물이라도 가려 주고 덮어 줄 수 있을 정도로 그 사랑은 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상은 온 인류를 사랑하고 그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나눠줄 수 있을 정도입니다.
B. 주인에게 내포된 의도
포도원의 주인은 일꾼들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비록 그 주인이 나중의 어떤 것을 바라지 않고 불쌍히 여겨 주는 처사로 늦게 일꾼들을 재차 불렀는지 모르지만 늦게 온 일꾼들이 다음 날에도 일터에 나온다면 양심상 그 주인의 인자한 처사에 고마움을 느끼고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행위에서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 얻은 우리의 모습으로 주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며 충성해야 될 것을 암시해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 성도들은 주님께 최선을 다해 충성을 해야 합니다. 주께서는 죽도록 충성을 다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명령이전에 은혜 받는 자로서의 우리가 마땅히 갖춰야 할 자세요 의무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주님은 당신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은혜와 사랑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생명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내리시지만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 당신의 은혜에 보답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이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노력과 그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입니다.

III. 불평하는 인간
A. 시기하는 마음
인간은 누구에게나 시기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죄악된 본성을 버리지 못해서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고용되어 일하기 시작한 일꾼들은 아마도 처음에 고용되어 온 기쁨을 잊어버리고 노예근성으로서 그날 받을 품삯만 계산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적인 보편적인 원칙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인의 처사가 불합리하게 보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최대의 희망인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보다 훨씬 적은 일밖에 하지 못한 사람을 시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받은 보수를 시기하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을 위해 행한 일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다는 것이 됩니다.
B. 먼저된 자의 자만(욕심)
사람들은 영적으로 제각기 유사하지 못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을 원망하는 먼저온 일꾼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존재하는 악한素因(소인)을 의인화시킨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생활을 보면 아주 독실한 신자들 중에서도 눈 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신앙 연수를 자랑하고 직분을 자랑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한다면 우리 스스로는 커다란 일을 하는 것처럼 느낄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선택받은 사람은” 사랑 때문에 일을 합니다.
본문에 보면 먼저 온 자들은 주인과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하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나중 온 자들은 그저 아무 질문이 없이 주인의 관대함만을 믿고 일을 했습니다. 따라 주인의 처사는 어떤 속임수나 부당한 취급을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정 많은 주인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본 것입니다.
이는 믿음과 사랑으로 대하는 주인에게 믿음과 사랑으로 받지 않고 자기가 더욱 잘난 체하고 욕심을 품기 때문에 느껴지는 손해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고용된 사람에게는 고용주로 대해주시고 믿음으로 나온 자에게는 그 믿음에 합당하게 대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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