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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딤후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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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친구 부인이 아이들과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세 가족이 그 자리에서 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모두가 그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했고, 불쌍하다 말했습니다. 죽음이 먼 곳에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주 가깝게 우리 곁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에게는 죽음의 내용과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는 마지막이 있기 마련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처음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습니다.
오늘은 1995년 12월 31일 금년도 마지막 날입니다. 1월 1일 시작이 엊그제 인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입니다. 시작인 듯 싶었는데 벌써 마지막이구나. 아마 이런 느낌을 가장 절실하게 받는 사람은 머리가 히끗히끗 하신 할머니 할아버지일 것입니다. 한해를 보내고 맞이하면서 이 하루를 보내는 감회는 우리가 서로 다르리라 봅니다. 그러나 한 가지로 동일하게 우리는 그 의미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생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영원한 심판이 있음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1년은 52주인데 금년은 53주입니다. 1월 1일이 주일이었는데 12월 31일 오늘도 주일입니다. 금년은 주일로 시작해서 주일로 끝이 나는 해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람의 생애의 날들이 주안에서 시작하여 주님 안에서 마쳐지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우리는 사도 바울이라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자기 인생을 정리하면서 남긴 말씀을 통해 우리 삶에 중대한 교훈을 얻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 하면 나이 먹어 병들어 죽는 죽음을 연상합니다. 물론 그런 죽음이 가장 일반적인 죽음이지만 뜻밖의 죽음도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살다가 때가 되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누구에게는 빨리 누구에게는 늦게올 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는 존재입니다. 살고 죽는 권세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그걸 알고 사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지혜자는 하루의 시작을 보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해야 합니다. 남의 인생을 보면서 내 인생을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시작하여 하나님 앞에서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앞에서라는 신전의식(神前意識)을 가져야 합니다. 똑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그 인생들은 성공한 인생과 실패한 인생으로 나뉘어집니다. 행복한 인생이 있고 불행한 인생이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판단으로 누구는 성공한 인생, 누구는 실패한 인생, 누구는 행복한 인생, 누구는 불행한 인생이었다고 판단하지만 인간의 판단은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짧디 짧은 세상살이만을 놓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하나님과 영원한 천국과 지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판단은 하나님 안에서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딤후 4:1)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단지 몇십 년 짧게 살다간 그 시간만을 두고 평가하지 마십시오. 인생은 하나님 앞과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어떻게 판단하실 것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지난 해 겨울 몹시 추운 날에 친구 목사님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상가집에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삼일밤예배 후에 문상을 갔는데 새벽 두시쯤 되어 상가집에 도착했습니다. 장작불 주위에서 불을 쬐고 있던 사람들 몇몇이 추위에 견디기 힘들었는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시는 것도 잘 돌아가셔야돼.” 말인즉슨 날이 너무 추운 날 돌아가셨으니 호상(好喪)은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했습니다. 따뜻한 날 방안에 편히 누워 잠자듯 죽으면 그러면 행복한 죽음인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은 어떻게 죽었느냐가 아니라 누구 안에서 죽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 안에 사는 인생은 행복합니다. 예수 안에서는 죽음도 행복입니다. 승리입니다. 사도들이나 초대교회 성도들의 죽음은 인간적으로 보면 전혀 행복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과 야고보는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습니다. 초대교회에 성도들은 신앙 때문에 사자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온갖 처참한 방법으로 죽었지만 그들은 행복자입니다. 예수 안에서의 삶이었고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의 삶, 예수 안에서의 죽음. 그것은 외견상 어떻게 보여도 행복한 죽음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의 죽음은 아무리 화려해도 비극적인 죽음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안에 살다가 예수 안에서 죽는 죽음, 그 죽음은 아름다운 죽음이요 행복한 죽음입니다. 여러분은 금년 한해 예수 안에서 사셨습니까 예수 안에 죽기를 소망하며 사셨습니까
열매는 심은 대로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믿음을 심어야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눈물과 수고를 심어야 상급을 거둘 수 있습니다. 날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서 거두게 될 열매를 계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수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철저하게 계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아는 모세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2.세상은 하나님과는 다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해를 마칠 때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라고 말들을 하는데 금년 한해에는 유독 여러 가지 대형사고와 큰 사건들이 국민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총체적인 난국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어려움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져만 갈 것 같습니다. 때가 이르면 사람들 가운데 어리석은 세 가지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3-4)
①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②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게 됩니다.
③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게 됩니다.
왜 세상은 이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일까요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죄악 속에 사람들은 자꾸 빠져들어 가는 것일까요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본능적으로 죄의 품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죄가 악한 생각을 갖게 하고 죄를 저지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악의 그 깊은 뿌리는 무엇으로부터 온 것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생겨났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니 사단이 인간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소극적으로는 하나님에게 대하여 무관심하여 죄를 짓고, 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도전하며 죄를 짓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세상에 죄악은 더욱 커지고 많아져 갈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근원적인 해결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여기서 빠져 나오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인생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생 근본문제의 완전한 해결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만나는 길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제사장이십니다. 사단의 권세를 꺾고 승리하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여러분들은 금년 한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따라 살았습니까 성령의 인도 가운데 그리스도를 좇아 사셨습니까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누구를 좇아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3.성도에게는 죽을 때까지 감당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영광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온 세상 구석구석에 퍼져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이것이 인간이 창조된 목적입니다. 피조물이 창조 목적을 상실해 버리면 무용지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구원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인간은 타락 이전의 창조목적을 다시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9장에는 창 1:28과 동일한 사명을 방주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창 9:1-2)
구원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사명이 무엇입니까 전도와 선교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한 이들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동일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지상과제로서 우리에게 이 명령을 주셨습니다.
마 28:16-20에는 모든 족속에게 가서 이 말씀을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막 16:15-20에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행 1:8에는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확실하게 한번 물어봅시다. 사람들이 각자 다른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어떤 자세,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재물을 많이 쌓아놓고 살면 행복할까요 지위와 명예를 얻으면, 권세를 얻으면 행복할까요 남보다 뛰어난 지혜를 얻으면 행복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솔로몬을 통해 확인해 볼까요 솔로몬은 세상에서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왕이요, 아들도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조건을 다 가지고도 솔로몬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살아간 모든 것이 헛되다 했습니다(전 1:2). 눈은 보아도 만족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았습니다(전 1:8). 지식이 많았으나 오히려 그 일 때문에 번뇌와 근심이 더 많았습니다(전 1:17-18). 그가 경험해보니 인간이 웃는 웃음도 미친 짓이었습니다(전 2:2). 그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실 분이라고 말했습니다(전 12:13-14).
솔로몬은 모든 걸 경험해보고 알았지만 바울은 다메섹에서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을 만나고부터 깨달았습니다. 미리 알고 그의 생애를 살았던 바울 사도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것을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도 부탁하고 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5)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우리 모두에게 주는 자기 인생의 결론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사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내 안에 성령으로 계신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이 일을 이루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습니까 금년 한해 그 사명 얼마나 잘 감당하고 사셨습니까
복음전파는 우리 주님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정말로 사명 감당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복음 전하기로 결단만 하면 됩니다. 열매는 주님이 거두시고 상급은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려간 사람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는 죽음도 두려움이 아닙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2-23)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내게 다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죽음도 이깁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구원받으면 노인에게도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넘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에게 꿈이 있습니까 기쁨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만 품으십시오. 사명만 굳게 붙잡으십시오. 95년을 마치고 96년을 살아가야 할 여러분들이여! 우리에게는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상급을 바라보며 새롭게 다시 출발합시다.

복음전파의 사명은 죽는 날까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복음전파의 사명은 죽을 각오로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복음전파하는 인생만이 후회가 남지 않는 생애가 됩니다.
복음전파하는 일꾼을 이 땅 위에 남겨야 합니다.
복음전파는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지속되어야 할 유일한 운동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부르심을 앞에 놓고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부탁한 이 말씀들이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날 우리가 다시 믿음의 후손들에게 남길 수 있는 유언의 말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 오직 성령, 오직 증인. 95년도 마지막 달 마지막 카렌다를 넘기면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영원한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성령의 인도 동행하심이 96년 새해에는 더욱 여러분의 가정과 삶에 넘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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