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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데살로니가인가? 로마인가? (딤후 0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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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낳은 저 무적의 세계적인 선교사요, 사도인 바울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종말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두 번째로 로마의 옥중에 갇혀 있는 몸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로마에 투옥되었을 때는 집을 세내어 머무는 상태로 어느 정도 자유가 있었습니다(행28:30). 그 후 그는 석방이 되었고, 그가 네 번째 선교 원정을 끝맺을 무렵, 로마 황제 네로에 의하여 두 번째로 다시 투옥이 되었을 때는 모든 자유가 박탈당한 채 일반 죄수와 꼭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딤후1:16, 2:9).
그 때는 그의 동역자들 조차 그가 어디에 있는가를 잘 알지 못할 정도였습니다(딤후1:17).
예기되는 죽음을 앞에 둔 사도는 몹시 외로운 상태였습니다. 부겔로와 허모네게를 포함한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1:15). 데마도 그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 버렸다고 하였습니다(4:10).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4:10), 두기고는 에베소 임지로 각각 떠났다고 하였습니다(4:12). 의사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고 하였습니다(4:11).
그래서 전도자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너는 속히 내게로 오라(4:9)고 화급한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4:11). 그리고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과 가죽 종이에 쓴 큰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4:13).
그리고 자기에게 해를 많이 끼친 구리장색 알렉산더를 주의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4:14). 그는 지금 자기 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났다고 하였습니다(4:16). 그럼에도 주께서 자기 곁에 서서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고(4:7) 마지막에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소망을 피력하고 있습니다(4:18).
우리는 로마의 감옥에서 그 인생 최후를 앞에 두고 디모데를 속히 오라고 부르면서 바울의 입에서 거론된 두 사람을 특별히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의 입을 통하여 나타난 이 두사람은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사람이 다름 아닌 '데마와 마가'입니다. 4장 10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4장 11절에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Ⅰ. 데마를 봅니다

'데마'라고 하는 사람은 바울 서신에 꼭 세 번 그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영감의 서신에 그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의 모습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 번째 기록은 바울의 동역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빌레몬서 1장 22절로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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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바울의 복음 사역에 함께 하는 자를 뜻하였습니다. 그는 이 일 때문에 바울과 함께 투옥이 되고 많은 환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1차로 투옥되어 있을 경우로 비교적 모두가 자유로웠습니다. 이런 경우 데마의 이름은 영예롭고 축복스럽게 보여집니다.

두 번째 기록은 직함 없는 데마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4장 14절에 [사랑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도마의 이름 앞에 아무것도 붙은 것이 없습니다. 그냥 '데마'라고 하였습니다. 동역자라든가, '사랑하는 자'라든가, '수고하는 자' 등의 설명을 볼 수 없습니다.
아마 사도의 마음에 '데마'에 대한 무슨 매력이나, 기대감이나, 열정이나, 필요성이 사라져 버렸는지 모릅니다. 그저 문안하는 명단에 '따라 붙는 이름'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기록은 바울을 버린 데마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배반자, 배신자, 배약자 배은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가 바울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바울을 떠나 데살로니가로 자리를 옮겨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칼빈은 그가 바울의 투옥과 그 현실을 보고 자기 신변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렌스키(Lenski)는 그가 바울 뿐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마저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 큰 이유는 그가 '세상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4장 8절에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란 말과 너무 대조가 됩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는 바울과 같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4:7). 그런 자에게는 바울 자신과 같이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데마의 모습은 그가 단순히 바울을 떠난 것이 아니고, 바울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바울의 사상과 사역과 목적까지를 모두 내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주님이 아닌 세상을 사랑했던 이유로, 장소만 바울을 떠난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바울을 떠나 버린 것입니다.
그는 고난보다 안일을 택하였습니다. 미래의 소망보다 현실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십자가 보다 자신을 택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보이지 않는 성공보다 그리스도 밖에 보이는 현재의 성공을 택하였습니다. 위대한 소망의 영웅이 되기보다는 연약한 번영의 현실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 버렸습니다. 그는 주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말았습니다.

Ⅱ. 마가를 봅니다.

마가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 여러 번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그는 풍부한 영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난 현장을 목격한 자 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은 마지막 성만찬의 장소였습니다. 교회가 탄생될 무렵 아직 젊었습니다. 바로 베드로가 옥에 갇혀 있을 때 교우들이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였던 집이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다는 사실로도 그의 영적 배경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집은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적인 집의 장소였습니다(행12:12). 이른바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유명한 바나바의 생질이었습니다(골4:10).
그는 바울과 바나바의 첫 번째 선교 원정에 조력자로 발탁되어 동행하였습니다(행13:5).

첫 번째 그의 모습은 배신자처럼 변절자처럼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에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라고 하였습니다. 구브로 선교를 성공리에 끝맺은 선교사 일행은 새로운 선교 여정지인 소아시아의 내륙 중부 고원으로 통하는 험난하고 위험한 길을 가는 도중에 마가는 이 두 지도자를 떠나 예루살렘 자기 집으로 되돌아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신앙과 용기는 그 위험한 선교의 고난을 견디지 못하여 뒤돌아 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상 이 일은 바울과 바나바와 그리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실망시킨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중에 이 일 때문에 바울의 제 2차 선교 원정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다툼이 일어난 동기가 되고, 결국 그 일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활동을 달리하는 결과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2차 선교 원정 때 바울은 마가를 다시는 데리고 가지 않기로 하고 대신 실라를 데리고 떠나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다른 길로 선교하기에 이르르고 말았습니다(행15:36-41).
두 번째 모습은 바울의 동역자로 나타납니다.
골로새서 4장 10절에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유스도라 하는 예수는 너희에게 문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빌레몬서 1장 24절에는 [나의 동역자 마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바울은 마가와 함께 일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마가는 나중에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새로운 은혜를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선배 바울이 은혜 받은 마가를 다시 기용하여 동역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가 바울을 떠날 수 없었고, 바울도 그를 놓칠 수 없는 관계로 성화 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세 번째 모습은 바울에게 필요 불가결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13절에 보면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경을 보면 마가는 베드로의 조력자로 영적인 아들 노릇을 한 사실을 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도 그의 최후의 장소에 마가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결코 사적인 말이 아닌 복음 사역의 공적 업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때의 마가는 주의 일을 괴롭고, 무서워 떠나 버리는 나약한 마가는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아들처럼 사랑했고, 바울이 동역자로 그의 최후를 맞는 순간에 그가 필요하리만큼 주께서 사용하시는 거룩한 장부가 되었습니다. 의의 병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바울 사도의 만년의 영감 앞에 나타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데마였고 또 한 사람은 마가였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로 등장했다가, 중간에는 이름만 부쳐 놓고 따라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떠나 버린 자였습니다. 또 한 사람 마가는 처음에는 배신자처럼 시작되었으나, 중간에는 동역자로, 마지막에는 주의 일에 유익한 사람으로 재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데마는 퇴보의 상징입니다. 영적으로 시작한 듯 하였으나, 결국 육으로 전락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용두사미(龍頭蛇尾) 격이 되어 버린 사람입니다.
마가는 진보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육으로 넘어진 듯하였으나, 결국 영으로 승리하여 하나님 나라에 빛난 존재로 성화되었습니다.
한 쪽은 기막힌 퇴보요, 후퇴였습니다. 또 한 쪽은 놀라운 진보요, 발전이었습니다. 사람이 제대로 은혜를 받으면, 초야에 묻혀 있어도 결국 하나님이 그를 찾아내어 높이 유용하게 쓰고 마는 법입니다. 축복을 받고 마는 법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뿐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1996년 12월 중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의 나의 나 된 신앙 여정을 점검을 해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데마처럼 퇴보였던가 후퇴였던가 마가처럼 진보였던가 전진이었던가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 곁으로 기울어졌던가 주를 사랑하여 주의 편으로 더 기울어졌던가 육의 득세였던 영의 득세였든가
세상것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세상 편으로 기울어졌든가 그래서 데살로니가행을 하고 있는가 그는 육신의 고향인 데살로니가로 되돌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마가처럼 치욕의 연약에서 회개하고 일어나서 디모데와 함께 바울이 기다리고 있는 로마로 향하여 가고 있는가 그리고 바울이 가고 있는 천국으로 향하고 있는가(딤후4:18).
마가의 길은 진보의 걸음이었습니다. 믿음의 진보, 복음의 진보였습니다. 사랑의 진보였습니다. 소망의 진보였습니다. 충성의 진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왕국의 진보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1996년의 확실한 결론은 우리는 모두 마가와 함께 디모데를 따라 바울이 기다리고 있는 로마를 향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향하는 천국행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경향 새성전의 역사(役事)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에 우리들의 진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상 교회에서 데살로니가행의 데마가 없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세상을 사랑하여 가는 사람들의 길입니다. 그것은 육의 길이요, 사망의 길입니다. 퇴보의 길입니다. 디모데와 마가가 행하고 있는 로마행은 바울의 순교가 기다리고 있는 주 예수의 길입니다. 바울 곁에 주님이 서 계신 길입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영광의 길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영의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진보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경향인 모두에게 이 진보의 길을 열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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