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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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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많은 신(神)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종교와 많은 신이 있다고 하는 사실은 타락한 인간의 왜곡된 종교성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신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만들어 낸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기가 섬기는 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도 허다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이 인간을 찾아 왔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있습니까 모두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신 앞으로 가서 그 신에게 복을 달라고 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찾아 오시고 그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탄절은 바로 이 참된 종교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뻐하며 이 세상 죄인을 구원하신 일에 대하여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이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Ⅰ.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본문 말씀 10절에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인자]는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는 말로 자주 표현하였습니다.
[온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말합니다(요1:14).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죄인을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본문에 나오는 삭개오의 사건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오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 본문은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1. 우리 본문은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 가시더라"고 하였습니다(1절).

현대의 여리고는 작은 마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고대 예수님 당시의 여리고는 상당히 규모가 큰 도시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종려나무가 우거져 있고 발삼향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진귀한 물건들이 상거래되는 상업이 성행한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는 세금을 징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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섟活있을 정도로 큰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유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죄인 삭개오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은 이 도시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는 큰 부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삭개오는 권세도 있고 명예도 있고 돈도 있었기 때문에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었습니다.
삭개오가 나타나면 그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가 벌벌 떨면서 굽신거렸습니다. 그러나 돌아서면 그를 온갖 말로 비웃고 욕하였습니다.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성경에는 그 사람을 "죄인"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죄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복주심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회중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시1:5).
그런데 그에게 참으로 즐거운 소식이 들려졌습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여리고에 들어오신 것이었습니다.

2. 삭개오가 있는 뽕나무 아래까지 오셨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에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셨다는 소문은 금새 톱뉴스가 되어 온 도시에 전파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몰려 갔습니다.
삭개오에게도 예수께서 여리고에 오셨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 졌습니다. 그 소식은 삭개오의 마음을 충동하였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려가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저렇게 가는 것일까 라고 하는 의아심과 호기심으로 견딜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도시에 오신 예수님을 보고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달려갔습니다(2절). 그러나 그는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길 가에 있는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나무 가지에 걸터 앉아 예수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삭개오에게 이러한 마음이 왜 일어났습니까 왜 달려갔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까 예수님이 자기 도시에 오셨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일어 났습니다. 삭개오가 걸터 앉아 있는 그 나무 아래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뽕나무 아래까지 오신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고 나무 위에 앉아있는 삭개오를 우러러 보셨습니다.
이것이 죄인을 찾아오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Ⅱ.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죄인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 10절에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잃어버린 자"는 누구입니까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목자의 우리에 있어야 할 양인데, 길을 잃고 헤매는 양처럼 제 멋대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잃어버린 자입니다(눅15:4-7, 벧전2:25).
주머니에 있어야 할 동전인데 잃어버린바 되었던 동전처럼 영적인 무지에 깊이 빠져 있거나 무감각한 자들이 잃어버린바 된 자입니다(눅15:8-10).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고집과 아집 때문에 아버지의 곁을 떠나 거지가 되었던 둘째 아들처럼 억지를 부리며 하나님의 품을 떠나 자의로 살아가는 자,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지체하는 자들, 그들이 잃어버린 자입니다(눅15:11-32).
인생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떠난 죄인입니다(롬3:23, 5:12).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롬6:23).
예수님은 이러한 죄인들을 찾아 오셨습니다(눅19:10). 이들을 구원하려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1. 죄인을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은 삭개오를 초청하였습니다.

본문 5절에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의 이름 삭개오는 히브리어 [쟈카이]에서 온 말인데, 그 뜻은 "청결한" "의로운"입니다. "의로운 사람" "순결한 사람"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이름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남을 속이고 헐뜯고 모함하며, 착취하였습니다. 빛의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어두움의 권세 아래서 어두움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을 도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죽입니다. 속입니다. 미워합니다. 시기합니다. 간음합니다. 탈취합니다. 늑탈합니다. 자기도 똑같이 죄인들 가운데서 태어났고(시51:5), 죄 중에 살고 있고 죄를 지으면서도 자기는 의인인척합니다. 다른 사람만 죄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것이 죄인들이 하는 일입니다.
여리고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도 자기들은 의인이지만 삭개오는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무 아래까지 오신 예수님은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 위를 우러러 보시고, 삭개오를 향하여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죄인"이라고 놀림을 받고 있는 삭개오를 향하여 "너는 죄인이다"고 하지 않고 "삭개오야"라고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속히 내려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네 집에 들어가 유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자기 이름만 불러 주신 것이 아니라 속히 내려 오라고 하시고 또 자기 집으로 들어가 유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죄인을 초청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그는 지금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마10:28).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선망의 대상인 정치가의 집으로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멸시하고 조롱하며 조소를 보내는 삭개오의 집으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그 집에서 유하겠다고 말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삭개오도 놀라고 사람들도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2. 죄인을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초청을 받은 삭개오는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급히 내려왔습니다. 나무 위에 더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급히 뛰어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 다음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예수님께 고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뽕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아시고 그곳에 오신 주님이 아닙니까 자신의 이름을 아시는 주님이 아닙니까 그는 참으로 전지하신 주님입니다. 그 주님 앞에 섰을 때 그는 자신의 죄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앞에 서 계신 주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가 모았던 많은 물질을 선한 일을 위하여 사용하겠다고 하였습니다. ①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하고 병들고 못사는 이웃을 위하여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②착취한 남의 것은 사 배나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지은 죄까지도 다 아시는 예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는 말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영접한 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마3:8). 만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버림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마7:15-21).
사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는 것입니다(사59:1-2). 예수님을 만난 성도라면 죄를 마음에 숨겨 두고 살 수 없습니다. 빛 앞에 그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죄는 주님과의 만남을 방해하며 나아가 자신을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롬6:23).
빛이신 주님을 만난 성도마다 자기의 죄를 숨김없이 고백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그러하였습니다(눅5:8). 이사야가 그러하였습니다(사6:).
죄를 자백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지금까지 남의 것을 착취하여 치부한 것에 대하여 성경의 원리대로 되돌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은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철저한 회개에는 확실한 용서, 확실한 구원이 주어집니다.
삭개오는 본래부터 하나님이 택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구원을 받아야 할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잃어버린 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본래부터 잃어버린 자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그것을 재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 날은 삭개오의 생애 중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날이 되었습니다.
왜냐구요 그것은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님이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 여리고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용서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소식을 다시 한 번 들었습니다.
예수님,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요3:16). 예수님, 그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빌2:6).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1:10-11).
여리고의 죄인 삭개오를 찾아오셨듯이 나를 사랑하여 나를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저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위하여 33년의 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었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저주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무덤에 장사 지낸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지금은 하늘 우편에서 우리들을 위하여 성령을 보내시고(요16:7), 우리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롬8:34, 히7:25).
그는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잃어버린 자였던 나를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백성"은 죄에 빠진 자, 멸망받을 죄인입니다. 그 죄인들을 멸망으로부터,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성탄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죄인의 친구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마11:19). 그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였습니다(요15:13).
그는 내게 구원을 주고 영원한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14:2, 3).
예수님은 속죄의 양으로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요1:29, 사53:7-8). 그가 죽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고, 그가 죽으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고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사53:6).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대속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위한 속전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에서 19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죄인인 나를 구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는 나를 아시는 자입니다. 그는 날 구원하신 자입니다. 나는 구원받은 아브라함의 자녀입니다. 내 모든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로 다 씻음받았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즐거운 일입니까 믿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그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 기쁘고 복된 소식을 성경 속에 기록하게 하신 성령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기쁘고 복된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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