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탄의 본래 의미 (눅 02:8-14)

첨부 1


지금부터 2000여년 전 저 베들레헴 근교, 들 밖 밤하늘에 메아리친 천군천사들의 찬송 소리는 영원한 복음의 멧세지였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베들레헴의 목자들은 이러한 천군과 천사들의 멧세지를 들었습니다(2:8, 13).
[무서워 말라](눅 2:10)고 하였습니다. 이는 '무서워하는 것을 멈추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성전에서 기도하던 사가랴에게도(1:13), 그리고 예수 수태 예고를 받던 마리아에게도 들려졌습니다(1:30).
[내가 ….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2:10)고 하였습니다. '좋은 소식'이란 바로 복음을 뜻합니다. 바로 구원의 복음입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본질이 있습니다.
큰 기쁨의 좋은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2:10).
이는 '좋은 소식'으로서의 기독교 위대성, 중대성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사건의 중대성을 함축하고 있는 말입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2:10)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온 백성'은 만 백성 곧, 국적, 남여 성별, 재산, 명성, 사회적 지위, 교육, 문화와 역사를 초월하는 전 시대, 전 영역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만인 공유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인류가 죄인일동안 저들에게는 예수 구원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나셨다]고 하였습니다(2:11)
이는 예수 성탄 사건이 '오래전에 약속된 것이고'(예언), 이제 그 약속대로 메시야께서 다윗의 왕통을 이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계대)를 성취하기 위하여 역사를 타고, 역사 중에 나타나셨습니다.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의 본질적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인류의 구세주(SAVIOR)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바로 그 주님(The Lord)이십니다. 그는 인류의 선도자나 혁명가, 영웅, 정치가, 경제가, 사상가, 교육가, 계몽가, 아니면 이상적인 모범자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가 그 표적이라고 하였습니다.
2장 12절에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표적( )은 그 표적(The Sing)으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후에 목자들은 허다한 천군과 천사들이 함께 하나님께 올리는 찬송 소리를 들었습니다.
2장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 '영광과 평화', '하나님과 사람들', '지극히 높은 곳과 땅'으로 상관하고 있습니다.

다음(엔터) 연속출력(NS) 기타(Z) > NS
I. 먼저 하늘은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2:14).

왜 예수 그리스도의 강탄이 하나님께 영광인가
이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인간계에 나타내신 자신의 독자적 사랑계시이기 때문입니다.

1. 성탄은 하나님의 신적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 시작된 사건입니다. 곧 하늘의 문이 땅을 향하여 열려진 사건입니다. 하나님 자신께서 세상의 죄인을 향하여 하늘의 문을 친히 열어 놓으신 권능의 행사입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께서 숨지실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성소와 지성소가 하나가 됨과 같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중간에 막힌 담을 헐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된 장면을 가리켜 '새롭고 산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성탄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심은 이 사건이 하나님 자신께서, 하늘로부터 시작하신 당신의 주권적인 권능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2. 성탄은 하나님이 인간을(죄인) 찾아 구원하러 오신 목적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특색이 있습니다. 모든 이방 종교는 사람편에서 스스로 신을 만들어 놓고 또 사람편에서 스스로 신을 찾아가서 그 신을 섬깁니다. 이것을 가리켜 자율주의 종교라고 이름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 편에서 사람을 찾아오는 종교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이 범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싫어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아담을 찾아와서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고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편에서 메시야를 약속해 주셨고(창 3:15) 하나님 편에서 벗은 이유로 두려워 떨고 있는 아담에게 친히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었습니다(창 3:21).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서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죄인(세상)을 향한 하나님 자기 사랑의 최종, 최고 계시였습니다. 모든 날 마지막에 그의 아들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공개한 행위였습니다(히1:1-3). 그 목적은 죄인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요 3:16).
이것은 확실하고 뚜렷한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필연적인 목적이었습니다.

3. 성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요 1:14). 우리는 그를 봄으로 하나님을 친히 보게된 것입니다. 천사들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역사상에 어느 신이 사람이 된 일이 있었던가
어느 신이 죄 없는 사람으로 죄인의 세상에 와서 죄인들과 함께 거하시다가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였던가 이것은 기독교의 초자연성을 나타내는 진리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인류에게 나타내신 이적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하향(下向) 사건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지혜를 모으고, 돈을 모아 기계를 만들어 사람의 힘으로 달나라에 갔다 오는 상향(上向)사건을 성공시켰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주시대를 도래시키고, 더 높은 과학 문명의 만세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하늘을 뚫고 달을 점령하고 우주 로ㅋ에 사람을 실어 초공의 하늘을 나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만드신 '산소'를 가지고 가지 않는다면 꼼짝을 못합니다.
더우기 사람의 지식이 달나라여행의 꿈을 실현시킨다 할지라도, 죄인을 변화시켜 하늘나라의 사람(구원인)으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탄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 시작된 신적인 산물이요, 죄인 구원을 위한 목적적 산물이요, 그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전능의 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II. 땅에는 사람에게 평화로다

1. 성탄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지고 왔습니다(2:14).
예수께서 세상에 갖고 오신 평화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죄'의 평강입니다. 인류가 겪고있는 본질적인 고통은 죄와 죄의 삯인 사망의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경제문제, 정치문제, 사회문제, 교육문제보다 본질적으로 우선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사람들만이 지닌 영원한 고통의 문제였습니다. 사람외에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죄 문제 때문에 당하는 고통은 없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의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선언하셨습니다(막 2:17). 인류가 받은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었습니다. 예수는 그 죄의 삯인 사망을 지불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왔다고 하였습니다(막 10:45).
성경이 말하는 '대속물'이란 노예나 포로를 석방시키기 위하여 지불하는 몸값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또 다른 말로 '속전'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죄와 죽음의 노예 상태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성탄은
(1) 하나님과 사람과의 화평관계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원수 관계를 헐어버리려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성탄은 하나님과 인간에의 화평이 목적이었습니다.
(2) 사람과 사람 관계를 화평으로 이루었습니다.
예수의 성탄은 사람과 사람과의 원수 관계를 헐어버리려 오셨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개인과 민족과 인류는 언어와 문화와 역사의 전통이 달랐음에도 하나의 가족, 하나의 공동체, 한 시민의식으로 뭉쳐졌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지구에 오신 이후 2000년 간의 인류 역사가 이를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선교사역을 통하여 이것을 생생하게 지금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본래적 의미는 죄용서함을 받는 자만이 누리는 사죄의 평화, 영의 평화, 마음속의 평화로부터 시작됩니다.

2. 성탄은 땅에사는 사람들 중에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만의 평화입니다(2:14).
마태복음 1장 21절에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자기 백성'이란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자'(눅 2:14)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성탄은 만인의 것이 아닙니다. 성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의 전유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결코 성탄의 평화는 정치적인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것이나 사회적인 여건이 우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 개인이 받은 사죄의 은총과 최우선의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만민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이란 바로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 기뻐하심을 입을 자들을 가리킵니다. 곧 선택 받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전 세대, 전 우주 공간에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볼 때 성탄은 참으로 특별한 사람들에게 특별히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지난 주 어느날 울산에서 '피자나라'지점을 개점하는 우리 성도의 가정에 개업예배를 인도하고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그 주인(남자)이 집에서 나오면서 자기 집 뜰에 장식한 성탄 추리를 보고 "성탄은 세상 장사하는 사람들 집에 먼저 찾아 오는 것 같습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성탄 시즌에 여러 고객들을 위하여 성탄 분위기를 세상 업소에서 먼저 조성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이 보통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처음 성탄은 장사하는 사람들의 집에 먼저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처음 성탄은 마리아와 요셉에게, 그리고 양치던 목자들에게,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지 않고 지키던 시므온과 안나에게, 그리고 저 먼 동방의 박사들에게 먼저 찾아 왔습니다.
그럼에도 사실상 성탄의 본래 의미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입니다.
'영광'과 '평화' 이것이 성탄의 본래적 의미입니다. 죄인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성자 계시!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엿새동안에 일반계시인 천지만물을 만드시던 날마다 자신(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만족하였습니다. 그 창조의 목적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만들셨기 때문입니다(사 43:7).
그 하나님이 죄인 구원을 위한 특별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기뻐하심은 당연합니다. 만족하심은 당연합니다. 이것이 자신의 영광 선포라고 하였습니다.
그 영광 선포의 결과(성탄) 그 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요 13:1)에게 사죄의 평화, 구원의 평화가 주어졌음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성탄의 본래 의미는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에게는 평화입니다. 이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아 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