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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요 11:17-11)

첨부 1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도 더 존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과 관계되지 않은 일들은 본인이 아무리 중요하게 여긴다 해도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내가 귀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에 우리가 집착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을 살리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생명을 위하여 고난을 참으셨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구원 얻은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죽어 가는 영혼을 건지는 생명 살리는 전도와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중요한 일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그 일에 헌신하시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죽음은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절망 상태입니다. 오늘 본문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주님의 능력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단순하게 죽은 자를 살렸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능력도 있다 이 정도가 아닙니다. 엄청난 구원의 비밀이 이 말씀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나사로의 가정은 예수님의 구원과 생명의 여러 가지 비밀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음으로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였습니다. 주님은 나사로를 통해 부활과 생명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구원의 감격과 감사를 회복하고 사명을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1:25)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자기 스스로를 ‘나는-이다’라고 표현한 경우가 몇 번 있습니다.
①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셨습니다.(요6:51)
②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요8:12)
③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요10:7)
④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요10:11)
⑤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요14:6)
⑥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요15:5)
⑦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요11:25)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서로 도와주는 단순한 협력관계가 아니라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될 생명관계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는 생명이라는 말씀을 16번이나 강조하고 계십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존재요, 함께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어버리는 존재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나사로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기던 마리아의 오라비였습니다. 그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소식을 접하고도 이틀을 더 머물러 계셨습니다.(요11:6) 그리고 나서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된 상태에서 가서 살리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빨리 나사로에게 달려가 그를 고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죽은 다음에야 내려가시고 무덤에 찾아가셔서 살리신 사실은 무엇을 알리고자 함입니까
①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리시기 위함입니다.
오라비의 죽음을 앞에 놓고 드리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고백을 보십시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32)
주님이 사람과 함께 하시고, 사람이 주님과 함께 할 때에만 사람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두 자매를 통하여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실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후에 주님은 친히 무덤까지 찾아가셔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영이 죽은 자가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알리시기 위함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와 허물로 다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하늘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생명의 회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②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임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부활이 무슨 뜻입니까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통과함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가 생명의 부활로 승리하신 분입니다.
생명은 무엇입니까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영이 죽은 자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 만나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고도 이틀이나 그곳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과 생명임을 스스로를 통해 보여주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장면을 통해 우리의 부활과 생명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짐을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2.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셔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어찌 보면 예수님은 예수님의 눈물은 무의미해 보입니다. 인간에게 죽음보다 절망적인 상황은 없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인간은 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눈물이 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우실 필요가 없습니다. 살려 버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친히 부활이요 생명이신데 왜 우십니까
살릴 능력이 없다면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울어야 하겠습니다만 살릴 능력이 있는데 왜 우십니까 그리고 그가 죽은 게 그렇게 불쌍했다면 죽기 전에 내려 오셔서 고쳐 주셨으면 될 것 아닙니까 죽게 버려두셨다가 찾아오셔서 그것도 살릴 만한 능력이 분명히 있으면서도 왜 우십니까 예수님의 눈물에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눈물은 단지 나사로 한 사람만을 위한 눈물이 아닙니다. 모든 인류를 위한 눈물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죄 가운데 빠지게 되어 있고, 사단에게 종노릇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바로 인간의 근본문제입니다. 근본문제 속에 빠진 인간은 불신자로서 여섯 가지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① 마귀의 자녀입니다.(요8:44)
② 우상숭배하며 마귀에게 종노릇합니다.(엡2:2)
③ 우상숭배 하면 정신문제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마11:28, 막5:1-11)
④ 육신문제가 찾아옵니다.(행8:4-8)
⑤ 죽어서 심판 받고 지옥에 가게 됩니다.(눅16:19-31)
⑥ 후손에게 영적인 유산을 물려주게 됩니다.(출20:4-5,고전10:20)
이 여섯 가지 문제는 본인이 거절하고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불가항력적으로 이 상황은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나사로를 살릴 수 있는 주님이 왜 우셨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생, 근본문제에 빠진 인생, 불신자의 여섯 가지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우신 것입니다. 여기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에 견딜 수 없는 아픔 때문에 우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주님입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그를 울게 한 것입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신 주님은 하나님을 떠나 살던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무덤 앞에서 흘리신 눈물입니다. 그 눈물이 저와 여러분을 살린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온몸의 진액을 째내셨습니다. 겟세마네라는 말의 뜻은 ‘기름을 짜는 틀’입니다. 하나님께 “아버지여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실 때에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아닌 피가 흘렀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의 넘치는 사랑이 그로 울게 했고, 진액을 짜게 했고, 피 흘리게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여러분은 여러분의 무덤 앞에서, 죽음 앞에서 눈물 흘려 보셨습니까 우리는 알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데 모든 영육간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통곡하시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바울은 영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결과를 인하여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랑 하사 눈물을 쏟으시며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
우리가 그를 알기 전에 그가 먼저 우리를 아신 바 되었고, 우리가 그를 사랑하기 전에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안타까움에 울고 계신 사랑입니다.

3.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1:40)
죽은 사람이 사는 법은 없습니다. 더욱이 나사로는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을 막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저할 때에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나타나는 역사가 무엇입니까 새로운 신분과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먼저 어떤 신분이 됩니까
① 하나님의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8:44 → 요1:1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요일3:2)
② 성령이 함께 하시는 신분이 됩니다.(엡2:2 → 고전3:16)
③ 기도할 수 있는 신분이 주어집니다.(요14:14)
이 세 가지 신분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특권이 무엇입니까
① 기도할 때마다 천사가 동원됩니다.(히1:14)
② 사단이 결박됩니다.(마12:25-28)
③ 하늘나라 시민이 됩니다.(빌3:20)
④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권세를 주십니다.
우리가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과 상황에 관계없이 이 신분과 권세를 주십니다. 믿을 때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상실했던 창세기 1:27-28의 임마누엘의 축복을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구원 얻은 하나님의 자녀, 성도에게는 사명이 주어집니다. 창조의 축복과 목적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성도가 그 사실을 체험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1:45에 이 장면을 지켜본 많은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었습니다.(요12:11) 이 일로 개개인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이 주어졌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믿을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믿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부활과 생명으로 믿고 계십니까

4. 나사로야 나오라 명령하셨습니다.(요11:43)
말씀에 순종할 때 주님은 나사로야 나오라 명령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걸어나왔습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물동이 여섯에 아구까지 채우라 명령할 때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기적, 믿는 우리가 놀라고 불신자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는 기적, 이것은 믿고 순종할 때 나타납니다. 주님은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은 나를 통해 말씀을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그것을 말씀운동이라 합니다. 그리스도운동이라 합니다. 말씀운동을 할 때 어떤 역사가 나타납니까
① 죽었던 자가 살아납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마른 뼈를 향하여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할 때에 생명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마른 뼈가 이스라엘의 큰 군대가 된 것입니다.
② 죄악된 성읍이 주 앞에 돌아왔습니다.
니느웨에 가서 요나가 하루를 외쳤는데 왕으로부터 짐승까지 베옷을 입고, 재를 쓰고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③ 세계 복음화의 위대한 동역자를 만나게 하십니다.
핍박자 사울을 예수님은 다메섹 언덕에서 꺾으셨습니다. 예수 믿게는 다메섹에서 하시고 그리스도는 아나니아에게 가서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전 세계를 살리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떠나면 죽게 창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또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달리 살아가면 그것도 안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으로 축복을 누리고 생명 건지는 사명을 감당하도록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나사로 한 사람만 산 것이 아니라 나사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죄와 저주, 마귀와 사망의 올무에서 예수님이 누구야 나와라! 말씀하심으로 구원 얻은 자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신분과 권세를 깨닫고 사명 감당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고백하며 날마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굳게 붙잡아 주시도록 기도하며 순종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감사하며 충성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축복의 은혜가 날마다 넘쳐 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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