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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슴은 세계를, 발은 바닥을 (행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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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다 지났습니다. 96년도 새해가 되면서 많은 계획들을 우리가 세웠지만 오늘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이루어진 일보다는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고,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많은 일들이 불만족스럽습니다. 이런 사정이 저만의 입장이 아니라 여러분들도 대등소이하리라 생각합니다.
금년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면서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계획을 거창하게 세웠는데 이루어진 것이 작으면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에 대하여 크게 실망합니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럴까 일을 시작만 하고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것일까 자기 불신감마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사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계획을 가지고 늘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상이 현실이 되지 못한다고 해서 현실이 이상이 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현실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환경은 시시때때로 바뀌는 것인데 왜 그것에 그렇게 집착합니까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새해를 계획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올해에 계획을 세웠는데 결과가 시원치 않다 해도 열 개를 세웠으면 적어도 한두 개는 이루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계획 자체가 없으면 하나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실패했으면 실패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소망 가운데 다시 일어서서 다시 시도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시간은 새해를 어떤 각오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설계도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자재가 쌓여 있어도 그 자재가 스스로 집이나 건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시간과 능력과 달란트가 있다 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설계도와 시간표가 없으면 집은 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금년 한 해를 회고하며 내년 한 해를 주 안에서 설계하시기 바랍니다. 내 계획을 이루려고 노력하지 말고 나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여러분 자신을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이 그런 목표를 갖고 계시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가슴에 넓고 큰 세계를 품으십시오.
사람은 보고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행동하는 것은 결코 보는 것 이상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금년 한 해 행동하고 움직인 것이 적다고 해서 보는 것마저 줄인다면 내년에 우리가 하는 일은 더욱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만 뻥뻥해 대는 사람을 가리켜 허풍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허풍쟁이가 매사에 기죽어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아무 소망도 비젼도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허풍쟁이가 되라고 말씀드립니다. 왜냐하면 그가 무기력한 사람보다는 훨씬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큰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슴은 좁아도 그 가슴에 담긴 세계는 넓어야 합니다. 그 가슴에 품은 이상은 높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작아도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못하는 것이 없으신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에게 언제나 큰 뜻을 품게 하셨습니다. 남들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그를 부르실 때는 세계를 향한 계획 가운데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세계 복음화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
그러나 그의 삶은 늘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하나님이 그로 승리하게 합니다.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하나님은 세계 복음화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또 어떻습니까 형들의 볏단이 절하고,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절하는 꿈은 세계 복음화의 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언약을 가지고 또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같은 계획 안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능력 안에서 나를 보지 말고 나를 부르신 그분의 능력과 계획 안에서 나를 보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부름을 받은 사람은 처음부터 위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부족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위대하게 하셨습니다. 성공도 실패도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요, 연단입니다. 그러므로 실패했다고 해서 낙심할 이유도 없고, 성공했다고 해서 교만할 이유도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 앞에 있는 제자들은 거의 대부분의 삶을 갈릴리에서 보낸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시골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지금은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이제 주님은 그들로 세계를 보게 하십니다. 세계를 가게 하겠다 약속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분명히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되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부족해도 그분이 되게 하시면 모두가 되는 것입니다. 연약한 나를 보지 말고 전능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좁은 가슴에 세계를 품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슴에 분명하게 두 가지 언약을 심으십시오. 첫째는 마태복음 16:13-20의 언약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언약입니다. 둘째는 마태복음 28:16-20의 언약입니다.
둘을 하나로 이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미래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세계로 가는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성공할수록 나중에는 더욱 비참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미래로 가면 결국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언약이 있고, 꿈이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진정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계로, 미래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2. 오늘이라는 현재 시간과 여기라는 현장에 충실하십시오.
사람은 크고 높고 넓은 비젼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그 가슴에 품은 비젼만큼 그를 들어 쓰십니다. 비젼은 이상입니다. 꿈은 현실이 아니라 아득히 먼 미래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거쳐 미래로 갑니다. 여기라는 현장을 거쳐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젼을 품는 것과 동시에 중요한 일은 철저하게 사람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없는 내일은 없습니다. 이곳을 무시한 세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리차드 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이란 책에 보면 “내일은 오늘을 거쳐 다가온다. 오늘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내일은 결코 오늘 이상일 수 없다” 하는 말이 나옵니다. 꿈이 드넓고 원대한 사람일수록 현실에 철저하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준비된 사람을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준비시켰습니다. 또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기를 원했던 사람은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일은 준비된 자들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에,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38-40)
요셉은 억울하게 종살이, 옥살이를 했지만 그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윗은 양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삼상17:34-37)
오직 그리스도를 품고,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오늘, 여기에서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노라면 언젠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은 사람은 어떤 환경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환경이 그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환경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외삼촌이 열 번이나 속이고, 괴롭혔지만 하나님이 주신 벧엘의 언약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종살이, 옥살이의 고통을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셨습니다. 위치가 중요하지 않고 실력이 중요합니다.
자, 우리 이런 질문을 한 번 해봅시다. 영웅이 시대를 만들어 갑니까 시대가 영웅을 만듭니까 일반적인 이론은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별 볼일 없던 사람이 시대를 만나 날개를 달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 나름대로의 주장이 있겠지만 성경은 사람이 먼저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먼저 준비시키시고 그들에게 시대를 붙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 시대를 붙였습니다. 이삭에게, 야곱에게, 요셉에게 그 시대를 붙였습니다. 마음의 성실함과 손의 공교함을 지녔던 다윗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붙였습니다. 그러므로 쓰임 받기를 원하는 자는 자리를 탐내지 말고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120명의 성도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가 다락방에 들어가 주시기로 약속한 주의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기다리면서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일꾼을 뽑았습니다. 맛디아를 뽑아 열둘 수에 가입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일꾼의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1:21-22)
일꾼을 어디에서 뽑았습니까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와 똑같이 훈련받은 평신도 70인 가운데 뽑았습니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예수님이 세례를 받던 날부터 승천하신 날까지 항상 제자들과 함께 거했던 사람들 중에서 뽑았습니다. 그 일꾼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와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도들은 복음을 증거했습니까 목숨을 걸고 했습니다. 생명을 다 드려서 했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모든 제자들이 다 순교했습니다. 맛디아도 순교했습니다. 일꾼의 기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행6:3-6)
일곱 집사를 세우는 기준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세워서 안수하고 집사의 직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말꾼이 되지 말고 일꾼이 되십시오. 일꾼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며 오늘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자가 내일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3. 가슴과 발이 만나는 때까지 계속 전진하십시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창세기 1:27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밝혀 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만 하는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창세기 1:28은 세계 복음화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시작을 세계 복음화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시작도 이 언약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가슴(머리)과 발은 신체 중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슴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세계 복음화의 언약을 품고 발은 현장을 누벼야 합니다. 서로가 다른 방향을 향해 달려가다 보면 결국 둘이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가슴과 발은 함께 있으면 안됩니다. 출발부터 가슴과 발은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꿈꾸는 것처럼 보여도 둘은 따로 놀아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어떤 어려움의 현실 가운데서도 세계 복음화의 비젼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어려운 현실에 매어 끌려 다닌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바닥에 살아도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우물 속에 있어도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사는 지역이 좁고, 내가 하는 일이 작아도 세계를 품어야 합니다. 지역이 복음화 되어야 민족이 복음화 되고, 민족이 복음화 되어야 세계가 복음화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단 한 사람을 전도해도 세계 복음화를 한다는 마음과 자세로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가슴에 그리스도를 품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1:20-21)
그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9:21에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했습니다. 로마서 15:23 이하에서는 로마 복음화를 마친 후에는 서바나까지 가리라 했습니다. 그의 비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자기 생명 다하는 날까지 미래로 가는 것입니다. 복음 들을 자가 남아 있는 땅 끝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잠자도 늘 세계 복음화를 꿈꾸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꿈은 더 깊어져만 갔습니다. 더욱 뚜렷해졌고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의 현실은 밝지만은 않습니다. 나와 세계는 멀어만 보입니다. 내가 천국에서 면류관 쓰고 상급 받는 일은 아득히 먼일로만 여겨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세계 복음화 꿈을 품고 가다 보면 어느덧 그 자리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 내가 설 때까지 우리의 노력은 쉬지 말아야 합니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이런 마귀의 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자아 만족에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우리는 잡은 줄로 생각하지 말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이상과 현실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이 현실이 되어야지 현실이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바닥에 살아도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살아도 눈은 언제나 땅 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청주에 살아도 우리는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이 약속은 언약 가진 자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디쯤 왔는지 몰라도 우리가 결국 서야 할 자리는 뒤로 물러서는 퇴보도 아니고, 오늘 이 자리도 아닙니다. 넘어져도 앞으로 넘어지시기 바랍니다. 일어설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움켜쥐고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미래에 그 자리에 굳게 서야 합니다. 세계 가운데 우뚝 서야 합니다. 가슴과 발이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가지만 둘이 현실 가운데서 만나는 뜨거운 감격, 반드시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 복음화는 그 언약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는 자, 노력하는 자, 이 언약에 자신의 삶을 드리는 자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주역이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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