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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 (잠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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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시대에 있어서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히 높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교육에 대한 열은 높은데 그에 대한 참다운 효과는 많치 않다는 것이 뜻이 있는 분들의 우려의 소리 입니다. 왜냐하면 제도에 있어서 무엇인가 교육의 방법이 잘못이 많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그 잘 못은 인정 하면서도 효과적인 대안이 나오질 않고 늘 조령모개(朝令暮改) (아침에 만들었다가 저녁에 뜯어 고친다는 뜻)식으로 자주 바뀝니다.
불란서의 철학자 데가르트라는 사람은 과학 절대주의,이성 절대주의 합리주의 사고방식 절주의를 주창 했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 서구를 비롯한 우리나라도 결과적으로 자기 제일주의, 배타주의 그리고 자기 아성의 벽을 높이 쌓는 개인 이기주의, 가족 이기주의, 국가 이기주의, 라는 인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미국의 철학자이며, 교육학자요, 심리학자인 죤 듀이(J.Dewy)라는 사람은 조기 교육과 자유교육, 실용주의 교육을 주장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이러한 교육제도를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교육 발전에 끼친 좋은 영향도 많이 있겠으나 오늘날 우리의 주변을 보십시오 인성과 덕성은 밑 바닥을 맴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까 오늘의 우리 주변의 현실은 지나치리 만치 정신적으로 타락하고, 이로 인한 결과는 윤리 도덕적 타락과 양심의 부패가 극심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분야를 비롯한 경제분야, 종교분야, 교육분야 등등의 사회의 지도 층의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아쉬워 하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있듯이 요즈음 자라나는 아이들을 돌아 볼때에 예절바른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이 들 정도 입니다. 윗 어른 들을 보고도 본체 만체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오히려 상전 노릇을 하려고 덤벼들곤 합니다. 돈 깨나 있고, 권세가 있는 집안의 젊은이나 아이들은 안하무인 (眼下無人) 격으로 사람들을 무시하고 건방을 떱니다. 그것이 느껴지지 않으면 차를 몰고 한 번 다녀 보세요 때때로 눈꼴 사나와서 못 보아줄 현상이 많습니다.
경제가 나아지고 문화가 발달 되어서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기에 살기 좋은 시대 라고 들 하지만 영적으로나 정신적 현상에서 볼 적에는 참다운 인간의 모습은 퇴행의 일로를 걷고 있슴이 여실 합니다. 교육과 학문 그리고 기술의 발달이 사람을 서로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위하지 못하고 사람이 문명의 노예화가 되어가고 있고, 물질의 노예의 현상이 되고 있으며, 명예에 노예가 되어 버린 시대인 것 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이유가 무엇 이라고 보십니까
참다운 지도자의 부재 그리고 참다운 교육의 부재 바로 그 결과 라고 밖에 볼 수 없는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한마디로 이 시대의 마지막 보루인 기독교적인 정신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들 합니다.
성경 잠언서 1:7 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에 근본이라"는 말씀이 있듯이 모든 지식의 원천은 하나님을 공경 하는데서 부터 시작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또 그것을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참된 사람을 찾아야 할 이시대에 있어서 올바른 교육의 방법을 제시 하라면 모든 지식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나아가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 인가를 알아야 하고 또 나 자신의 위치를 올바르게 분별하고 하나님 앞에 떳떳히 서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쳐준 진리 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 하면서
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주의 말씀으로 교육해야 하는지의 질문 아래서 기독교 교육의 중요성과 성경 교육의 필요성을 생각해 보면서 학교 교육만 중요시 하여 자녀들이 학교 교육의 성적만 좋으면 만족하고 신앙 교육과 성경 교육의 필요성 조차 모르고 왜면하고 괄시하므로 인하여 후회하는 날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 입니다.

(출18:20)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라고 했으며,
(신5:31)너는 여기 내 곁에 섰으라 내가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네게 이르리니 너는 그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내가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는 땅에서 그들로 이를 행하게 하라 하셨고,
(마28: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주님은 당부 하셨습니다.
또 바울 선생은 엡6:4절에"아비들아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강조 했습니다.

1 년 재미는 벼농사요, 10년 재미는 나무 가꾸는 것이요, 평생 재미는 사람 농사이다. 라는 격언이 있씁니다. 사람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 까요
다시말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후세들에게 마땅히 행할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오늘 저는 자녀들에게 지도 해야 할 필연성을 두가지 측면 에서만 찾아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이 이 두가지를 꼭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 셨습니다.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두가지는 빼 놓을 수 없는 우리의 후진 들에게 있어서 신앙의 교육이자 기독교 교육의 주체가 됩니다.

1.하나님을 잘 섬기는 법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본분이 무엇 입니까
(전12:13)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받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친 말씀이 있습니다.
(신6: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6: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4:10)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왜 이러한 가르침을 요구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 입니다.
모세를 통한 가르침을 또 보십시요
(신5:29)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신6:2)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신:13)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시편 기자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111:5)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시111:10)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시112:1)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28:1)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128:4)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잠언서 기자도 같은 말씀을 합니다.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과 규레와 약속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시대의 많은 기성 세대들을 보면 영적이요 정신적 그리고 이성적 만족 보다는 찰라적이요 감각적이면서 육체적이고 지극히 현세적인 본능적 만족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눈에 보이는것, 귀로 듣는것, 입으로 느끼는것, 육체로 즐기는 것을 가지고 행복이라는 개념을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극히 감각적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 귀에 들리지 않는 말씀, 몸으로 감지 할 수 없는 희열은 도저히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성 시대에 속한 사람들의 현상을 영적 질병에 걸려 있는 환자라고 할 수있습니다.
이러한 중증 환자들에게는 복음의 약효가 잘 먹혀 들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적 정신적 심성의 구조가 오늘의 세태에 의해서 극도로 타락되어 있고 그 질병의 증세가 심히 악화 되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치유의 노력이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 하심이나 혹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효혐을 내기가 좀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들이 설령 복음을 받아 들여서 교회안에 들어왔다 할지라도 구원의 확신과 믿음 뿌리가 내려서 성숙한 그리스도인 으로서의 본분을 세우기 까지는 많은 시험과 유혹과 어려움이 많습니다.
또 그 이전에는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이해 타산적 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극히 영적 정신적으로 오염된 세상에 물들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예수를 믿어도 내게 유익이 되고 어떤 이익을 보기만 원하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거나 주를 위해 살기를 바라야 한다는 가르침은 지극히 어려운 실정 입니다.
이러한 부류애 속한 사람들은 바로 영적인 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 이런 영적 정신적 질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사실은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기독교의 복음이 어떤 면에서는 순수한 어린 심령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훨신더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 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바로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 하는것" 이것이 이 시대에 꼭 있어야 하고, 힘써야 할 본분 인 것 입니다.
어린이의 본성은 아름다운 모습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께서 마18장4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했습니다. 어린이의 본 바탕에서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있다는 것과 이렇게 겸손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교훈 입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18:5) 라고 합니다.
영접 이라는 말의 뜻은 요1장12절에서 믿음을 뜻 했습니다. 마19장14절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자의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은 어린이의 진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이고 거짓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바로 이러한대에 복음이 심어져야 하는 것 입니다.
영국의 저술가 어기스트 해아 라는 목사님은 "봄에 이 피지 않는 나무에서 어떻게 가을에 열매를 바라랴!" 고 했습니다.
헬루구 라는 사람은 "어린 나무는 구부러지나 큰 나무는 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대영 박물관에는 강철같이 단단한 돌 하나가 있는데 거기에는 작은 새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답니다. 필경 그 단단한 돌이 언젠가는 작은 새가 디뎌도 발자국이 날정도로 물렁물렁 했었다는 증거이지요. 그토록 물렁한 물체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단한 돌이 되었답니다. 지금은 큰 코끼리가 밟아도 발자국이 생기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는 돌이 되었습니다.
어린 청소년의 마음은 굳어지기 이전의 물렁물렁한 것과 같습니다. 누가 무슨 자국을 남기든지 그 자국은 오래 갑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사랑의 자국을 미리남겨 놓지 않는다면 마귀가 시기와 저주와 죽음의 자국을 남겨 놓을 것이 번 합니다.
그러기에 아이들의 신앙교육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2.이웃 사회에 관심과 사랑의 정신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말씀하신 이것을 지킬 뿐 만 아니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지극히 적은 일이라도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배워고 가르쳐야 합니다.
오래전 독일 베를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노인이 공원 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습니다. 지나 가던 경찰관이 하도 이상히여겨 가까이 가니 무엇인가를 주 머니에 가득히 담고 막 가려고 하는 참이었습니다. 그 노인을 파출소로 연행하여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머니 속에서는 깨진 유리병 조각과 못, 그리고 삐죽삐죽 나온 쇠붙이 같은 것들이 나왔답니다. 깜짝 놀란 경찰관이 그런 것들을 무엇하려고 주워 모으느냐고 묻자 이러한 것 들을 어른들이 무심코 버릴 때 얼마나 많은 어린 아이들이 다치게 하겠느냐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스위스 의 유명한 교육학자 요한 페스탈로찌 였답니다.
비단 우리가 이런 특별한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드라도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인격자로 가르쳐야 할 필요가 우리 그리스도 인들에게 있는 것 입니다.
주님은 사랑의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요15장15-14절에서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다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결론
우리가 무엇을 본 받고 가르쳐야 합니까
창조주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랑으로 서로가 봉사하고, 돕고, 희생하며, 시대가 부패해도 같이 썩어들어 가지 않도록 기르쳐서 믿음을 지키어 나가는 의인들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 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어 가는 지름길이 될 것 입니다.
오늘 귀한 날 아이들에게 돈이나 주고 선물이나 주고서 어린이 주일을 보내며 어린이를 존귀히 여긴다는 허울좋은 날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 입니다.
여러분!
신앙 교육이 얼마나 중요 한가를 재 인식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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