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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단계순종 (창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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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신앙 단계 중 1단계 순종은 명문된 성경 말씀과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음성에 순종하므로, 은금과 육축이 풍부한 보이는 물질적 축복과 범죄의 직전에서 하나님이 건져 주시고 지켜 주시는 성결의 축복을 보이지 않는 영적 축복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믿음대로 바로 살면 보이는 물질적 축복을 3년이면 해결되고, 10년이면 경제 문제는 걱정 안해도 될 만큼 축복을 대개는 다 받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물질적 축복은 이것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중하게 여기느냐 애착하느냐 하는 시험이 따릅니다. 아브람은 은금과 육축이 풍부함으로 땅이 좁아 함께 동거할 수 없어 다툼이 생기고, 나누어져야 하는 현실에 부딪혀 지경을 정하여야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브람은 양심을 써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의 인도에 따라 지경 선택권이 하나님 수중에 달려 있음을 알고, 환경 조건 보다는 하나님의 도움과 축복에, 사람의 여론이나 중론보다 하나님의 뜻에, 자기 위주 중심보다 하나님 위주 중심으로 순종하므로 보이는 축복을 보관 관리 유지가 힘든 물질보다 권세로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 축복으로 하늘나라 시민권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축복하셨습니다.
보이는 권세 축복에 대하여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중하게 여기느냐 더 애착하느냐 하는 시험이 따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나 거하는 소돔 성읍이 주변국 왕들의 전쟁에 휘말려 그달라 오멜과 함께 한 네 왕국(시날왕, 엘라살왕, 엘림왕, 고임왕)과 소돔왕과 함께한 다섯 왕국(고모라왕, 아르마왕, 스보임왕, 소알왕, 소돔왕) 간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롯이 살던 다섯 왕국이 패하여 롯과 따르는 식구들은 네 왕국의 포로로 소유는 노획물이 되었다는 소식이 아브람에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아브람 입장이나,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기준해서 생각해 보면 롯이 어려움 당한 것은 제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요, 약은 꾀를 쓰다가 제가 파 놓은 구덩이에 빠졌는데, 어찌 보면 고소하고 잘되었다 싶을 수도 있고, 어디 한 번 고생을 해봐야 정신도 차리고 사람도 되겠다 생각할 수도 있고, 강 건너 동네 불난 집 불 구경하는 것처럼 구경할 수도 있고, 롯의 당한 입장과 처지를 동정하여 구하여야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떠나 범죄 하여 멸망 가운데 빠졌다면 “제가 좋아서 선택한 길인데 제가 판 구덩이에 빠졌는데 고생을 좀 해야 정신도 차리고 사람도 되지” 하시면서 내버려두고, 구경만 하신다면 우리의 구원은 어찌되겠습니까
아브람은 조카 롯의 소식을 듣고 방관하지 아니하고, 집에서 길리운 318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갔습니다. 아브람은 사대 강국에 섣불리 잘못 대항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요, 살신성인의 자세가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분쟁에 개입하지 못할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살신성인의 희생으로 318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간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롯이 누구입니까 한 골육이기 때문에 롯을 돕지 아니하면 안되는 의무적인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한 형제 자매요,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몸의 지체의 입장에 있는 성도들로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형제의 잘못을 내 잘못으로, 형제의 어려움을 내 어려움으로 느끼고 괴로워하고 함께 동참하여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기 전에 빌립 같은 타산적 신앙은 주님이 섭섭해하십니다.
롯을 구하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아브라함이 4대 강국을 대항을 해서 이겨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에서 군대와 규모가 전쟁 성패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으나 필요충분(완전) 조건은 될 수 없습니다. 다윗이 군대를 계수하라고 신하들에게 말했고, 그들은 순종했는데 하나님은 섭섭해 여기시고, 온역을 내려 수 만 명이 죽었습니다. 군대가 전쟁의 성패에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나님 하시면 된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아브람은 단까지 좇아가서 아무렇게나 덤벼들지 않고, 깊이 생각하고 철두철미하게 작전을 세워 승리를 거두고, 돌아가는 4대 강국의 군대를 이기기 위하여 밤중을 기해서 패퇴하는 5대 연합국의 퇴로를 통하여 두 대로 나눠서 적을 교란시키고 갑작스럽게 공격하므로 적이 혼비백산하고 도주케 하므로 완전 승리를 거두어, 잃었던 롯과 딸린 사람들과 재물을 다시 찾았습니다.(창14:16)
롯을 구출하기 위한 아브람이 치룬 전투는 자신과 딸린 사람들의 생명과 모든 소유를 다 건 투쟁이었습니다.
한 골육을 위해 투쟁한 아브람을 본 받아, 우리도 형제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것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금생에 100배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제 마음대로 덤비거나 날뛰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말만 내세우면서 미련스럽게 정면공격을 하지 않고, 밤중의 시기를 택해 두 대로 나눠 군대의 퇴로를 이용하여 교란시키고 불시에 공격한, 무슨 일이든지 조심스럽게 면밀하게 검토를 해서 하는 아브람의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아브람이 롯을 구출하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웨골짜기에서 소돔왕과 살렘왕 멜기세댁이 아브람을 영접하였습니다. 멜기세댁은 아브람을 환영한 후, 아브람의 승리는 천지의 주재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승리의 때에 영광을 자기가 차지하려 하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자기에게 공로를 돌리려 해서는 안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려야 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에 승리한 것과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것임을 감사하는 표시로 십분의 일을 멜기세댁에게 드렸습니다.(창14:20)

 3단계 순종

전쟁 승리 후, 전리품 처리에 대하여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사람을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고 권했습니다. 이에 아브람은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조카를 구한 것만 해도 감사덕지한데 나는 실오라기 하나라도 취하지 아니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었지 전리품을 취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하나님 영광을 가릴까 조심이 되어서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전쟁의 승리로 인한 어떤 보상이나 혜택도 입지 않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러나 동행한 사람들과 소년들의 먹을 것과 자유로이 분깃을 받을 수 있도록 조처를 취하였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전투에서 승리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평소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가리키시는 갈 길을 깨달아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과 관계가 더 밀접해지고 돈독해지며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인도해 주시고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는 영적 전투에서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승리케 하셔서 살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고 삶의 변화와 인격의 변화가 나타나 하나님 닮은 자체와 행위로 성화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전쟁 승리로 인하여 소돔 왕의 권유대로 노획물 전리품을 취하라고 권유해도 무론 한 실이나 신들매라도 취하지 아니하였고 9왕국을 통일해서 통치하는 왕이 된다고 해도 아무도 항거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까 하나님께 욕이 될까 재물과 권세를 권한다고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해서 취하지 아니하는 주객일치로 하나님 뜻에 순종하려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노력한 결과에 대하여 알아주기를 바라거나 대우나 환영이나 보상이나 혜택을 바라는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는데에는 주관과 객관의 인도가 마찰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날, 하늘엔 이상한 징조를 나타내는 객관의 인도인 별이 나타났고 동방의 박사들은 별의 징조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왕이나 메시야가 나타난 징조임을 주관적으로 깨달았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따라 왕을 영접하기 위하여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갈랫길까지 왔습니다. 객관의 인도인 별은 베들레헴으로, 박사들의 주관적 지식은 왕이 났으면 왕궁에서 메시야가 났으면 성전에 났을 것인데 왕궁과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야 될 줄 알았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객관과 주관의 인도가 다를 때 객관의 인도를 버리고 주관의 인도를 따라 왕궁으로 갔다가 암흑을 만나고 예루살렘 성안을 소동이 나게 하고 죄 없는 3살 이하의 사내아이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주관과 객관의 인도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순종하는 주객 일치의 신앙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아브람의 신앙단계중 3단계는 주객일치의 순종 생활이었고, 주객일치의 순종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창15:4-5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난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아브람과 사라 사이에서 태어나는 독자를 주셔서 후사가 되게 하여 “자손이 하늘의 별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보이는 축복을 하셨습니다.

(창15:1)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하나님께서 어떤 환란과 위험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능력으로 피난처보다 더 완전한 방패가 되시고, 분배에 있어서는 축복의 근원이 되셔서 내가 바로 너의 상급이 되시겠다고 영적 축복을 하였습니다.

3단계 주객일치의 명령을 순종한 아브람에게 15장 1절에 영적 축복, 2-5절에 육적 축복을 하신 후, 6-8절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라』고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신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9절에 이 땅을 업으로 삼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무엇으로 똑똑히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물음에 가시적인 언약의 근거로 새로운 헌신을 할 것과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 염소와 삼년된 수양과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재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아브람은 생명을 걸고 결과에 따른다는 증표로 시키시는대로 재물을 드렸으나, 사체 위에 날라드는 솔개를 쫓으며 하루를 보냈으나 시간이 흘러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를 않았습니다. 해가 져서 아브람이 깊은 잠이 들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자손이 이방에 객이 되어 400년 동안 괴롬을 당할 것과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 돌아가 장사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하나님이 재물을 열납하시고 언약의 보증으로 불로 응답하셨습니다.(창15:17)

 사라의 불신

하나님의 언약과 거듭된 확인에도 불구하고 사라에게 자식이 없자 사라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니 나의 여종과 동침하여 자녀를 얻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창16:1-2) 당시 사회에선 자녀가 없는 가정엔 이렇게 자녀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때였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받아 드려진다고 해도 사라가 부정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믿지 않으면서 원망 불평으로 아브람에게 자녀를 얻게 해 달라는 사라의 요청을 아브라함은 거절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자녀에 대한 약속을 확증해 주신 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관되게 밀고 나가지 못하고 사라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라의 불신의 소원을 안된다고 하지 못하고 용납함으로 하갈이 임신하자마자 16:4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하게 되고, 사라는 하갈의 멸시에 대해 아브람 때문이라고 하나님의 판단을 원하게 되고, 가정은 불화에 휘 말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아브람은 사라에게 창16:6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했습니다. 사라에게 하갈을 처분대로 하라는 결정권을 맡겼습니다. 칼이 좋지만 맡아서 잘 쓸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지 다룰 수 없는 사람이 가지면 큰 해를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으로부터 하갈의 처분권을 받은 사라는 창16:7-8 하갈을 학대하게 되고, 하갈은 도망하여 피하게 됩니다. 사라의 학대에 피한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여주인에게 돌아가 복종하도록 이끄시고, 아들 이스마엘을 낳을 것과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창16:10-11)

사라와 하갈이 치명적인 관계를 맺은 후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13세가 되었을 때, 사라의 나이는 90세가 되었습니다.
하루 하루가 지난다는 자체는 하나님 약속 이행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입니다. 믿음 없는 사라에겐 오히려 불신이 더 심하게 되고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한 아들을 맡길 만한 사라의 성숙한 믿음을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은 40년간 광야 생활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소산을 먹을 수 있는 믿음을 연단시키고 성숙시키듯이 사라의 성급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성급한 행동도 사라의 성숙한 믿음을 성장시키는 한 과정이었지만 치르는 대가는 너무나 컸습니다.
창17:2,6,7,8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며, 아브람의 모든 것을 도와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깨닫게 하시고, ‘아브람’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가 되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으로, ‘사래’의 이름을 열국의 어미가 되라는 뜻으로 ‘사라’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사래의 불신으로 하갈로 동침케하여 아들을 얻으려는 소원이나 성급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래를 사라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범한 죄나 실수 때문에 하나님이 더 이상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죄책감의 짐을 지고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고 하시면서 할례를 받아 너와 나 사이에 지킬 언약이라 하셨습니다.(창17:11)
하나님께서 할례를 요구하심은 한 점의 살점을 베어 내는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본성을 완전히 벗어 던지고 몸 전체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일에 바치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창17:20-21 아브라함이 웃으며 속으로 100세에 어찌 자식을 낳고 사라 나이 90세에 어찌 생산할 수 있겠느냐고 하나님께 고할 때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을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물음에 하나님께서 정상적인 방법을 비정상적인 기적적인 방법으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만 치우치면 합리주의가 되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치우치면 신비주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절망적인 병을 정상적인 약이나 치료보담 하나님의 기적적인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을 때때로 사용하심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계획을 새롭게 깨달아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에 새로이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 한 번 살펴봅시다

창11:30 수태하지 못하는 여자에서 시작되어, 창12:7 그 땅을 차지할 자손에 대해 말하시고, 창15:4 태어날 아이는 양자가 아니고 그의 몸에서 태어날 것을 말씀하시고, 창17:16-19 연로한 사라가 자녀의 어미가 될 것을 확실히 해 주시고, 창18:10 내년 이맘 때로 약속하셨습니다.
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내년 이맘때 태어날 아들 이삭에 대한 소식을 마므리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 장막 문에서 세 사람으로 나타난 천사를(히13:2) 부지 중에 대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편리한 시간이나 일과 중 예약하고 보내시지 않고, 휴식을 취하려는 시간에 부지 중에 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땅에 굽혀 영접하며 편안하게 해 주려고 애를 쓰고 먹을 것을 준비하는 동안 휴식을 취하라고 권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요리해서 대접했습니다. 접대를 받은 손님들이 사라를 찾았고 “내년 이맘 때 사라의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라는 시들어 메말라 금방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자신에게 어찌 기쁨이 있으리요 라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왜 웃으며 늙었다고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창18:14)
아브라함은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후 소돔으로 떠나는 천사들을 전송하러 나갔다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중함과 부르짖음이 큰 것을 말하고, 소돔 고모라의 멸망을 알리고 아브라함에겐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과 자식과 권속들에게 명하여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8:19)

천사들이 떠난 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고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이 불가하니 하나님께서 공의대로 심판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기도했습니다.
(창18:25) 하나님의 공의를 붙들고 하나님 앞에 티끌 같은 존재임을 잊지 않고 노하지 말라고 부탁하면서 의인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이 있다면 멸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의인 10명이 없어 소돔 고모라는 멸망을 당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셔서 롯과 그의 처, 그의 두 딸은 구원하였으나, 롯의 처는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습니다. 사라는 노년에 아들을 생산하는 기적을 보고 감격한 나머지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였습니다.(창21:7)
사라가 아들을 얻기까지는 끝이 없는 기다림이었고, 말씀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갈수록 퇴색하는 것 같았고, 때론 낙망적으로 보이기도 했으나, 불가능하게 보였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성취하시는 은혜에 탄복할 때, 아브라함은 롬4:7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자라 젖을 떼는 날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사라가 본즉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 광경을 사라고 보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사라의 직관으로 이스마엘이 한 집에 산다면 이삭이 어깨를 펴지 못하고 눌려지내리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행동하여 아브라함에게 여종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했습니다.(창21:10) 아브라함이 근심할 때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시키는 대로하라고 간섭하셨습니다.
인간의 잔 꾀로 얻은 열매는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뜻을 명백히 하셨고, 사라의 감정적이고 직감적인 충동적 행동은 오늘의 중동 사태의 원인이 이처럼 된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어느 정도 양식과 물을 가지고 집을 떠나 브엘세바 광야를 방황하다가 양식과 물이 다 떨어져 절망하여 기진맥진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샘물을 보지 못하고 방성대곡할 때,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셔서 새로운 양식과 샘물을 찾게 하시고, 이스마엘을 활 쏘는 자로 광야 생활에 탁월한자로 애굽땅에서 여인을 아내로 삼아 살게 하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브라함의 전 생애를 통하여 가장 어려운 시험을 만났습니다. “고개 넘어 또 고개 있고, 또 고개 넘어 또 고개 있어 동행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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