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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눈물(3) (마 26: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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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구세주로 오셔서 3년 6개월의 공생에 중에 눈물 흘리며 우셨던 사실을 통해서 예수님이 왜 우셨는가 왜 우셔야 했는가 눈물 흘리신 주님의 뜻을 찾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고,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면서 우셨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우리들을 지켜보시고 계시는 주님은 지금도 우리들이 죄에 의해 지배받고 영적 죽음의 상태에 머물려 있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을 보시면 주님은 심히 안타까워 우십니다.

많은 사람들의 환영 속에 예루살렘 성으로 향하시던 주님께서 성에 가까이 오셨을 때 성을 바라보면서 소리내어 우셨습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눅13:34)

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인 도시야, 너를 도우려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돌로 치는 도시야,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병아리가 어미 닭의 품으로 들어오기는 컹넝 오히려 배반하고 병아리들이 어미 닭을 죽이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님은 오셨습니다. 그들의 죄악으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게 될 성을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뿔뿔이 다 흩어질 것을 바라보시며 우셨습니다.

우리들을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거절하고 자기의 고집대로 세상으로 나아가면 실패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우리들이 그 실패로 인하여 고난을 당할 것을 미리 아시고 슬퍼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에 놓고 결심의 기도를 드리려 게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는 길에 심히 슬퍼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고민하다(αδημονω)-고뇌와 슬픔으로 가득 차다.
슬퍼하다(λυπω)-비탄에 젖게 하다. 몹시 슬퍼하다. 말은(λπη)에서 유래-몸이나 마음의 고통, 깊은 슬픔

왜 이처럼 고민하시고 마음에서부터 깊이 슬퍼하시며 세 번이나 같은 기도를 반복하셨을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히 5:7-10 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5:8 그가 아들이 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5: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5:7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경외하심을 보시고서,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의 경외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심을 얻었습니다.
히5:8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복종을 배우셨습니다.
히5: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10 하나님께로부터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서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1. 육체로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실 때는 인간으로 계셨기에 자신의 처절하고 비참한 죽음을 앞에 놓고 고민하고 마음의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이 솟아올랐기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고민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죽음이 영광스러운 죽음이라 할 지라도 죽음의 길을 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전 인류의 죄를 지고 가는 저주의 죽음입니다. 죄의 값을 치는 죽음이기에 처절하리 만큼 고통스럽고 비참한것이였습니다.

2. 아버지에게 대한 믿음의 눈물 이였습니다.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

아들이신 예수님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에게 대한 믿음의 눈물 이였습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죽음으로 아버지 하나님으로 하여금 독생자의 죽음을 지켜보게 하는 고통에 대한 눈물 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비참한 죽음을 당하지만 자식의 비참한 죽음을 보시고도 참으시고 그 죽음에서 구원하여 주실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눈물 이였습니다.

3. 간구와 소원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39 조금 나아가 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은 통곡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서 간구와 소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 예수님에게는 아주 중요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믿음직스럽고 사랑하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를 데리고 게셋마네 동산으로 오라 가셨습니다.
지금까지 메시야로 일해 온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하고 완성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잔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으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느냐 거역하느냐
사명을 성공적으로 이루느냐 실패하느냐의 중요한 문제가 놓여 있기에 눈물 흘리며 간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마셔야 할 잔이 너무나 큰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내가 그 잔을 꼭 마셔야 합니까 지나가게 하시면 안됩니까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히브리서 기자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5:8 그가 아들이 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5: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포기하는 아픔과 고통을 격어야하기에 눈물의 간구를 하지 않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완성하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맺는 말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면서 세 번을 우셨는데 세 번 모두가 죄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죄가 예수님을 슬프게 했고 우리들의 완악함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통곡하게 만들었고 우리의 죄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죽음의 고통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저와 여려분들은 어떤 경우에 눈물을 흘리게 되고 어떤 경우에 통곡을 하게 됩니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입니까
멸시를 당했을 때입니까
남편 되시는 분들이 속을 썩였을 때입니까
자식이 속을 썩을 때입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할 때입니까
먹을 것이 없어서,살기가 힘들어서 우셨습니까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통곡해 보셨습니까
나의 죄가 예수님으로 고통받게 했다는 사실을 인하여 눈물흘려 보셨습니까

나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통곡과 간구와 소원의 기도를 드려 보셨습니까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던 주님은 우리들의 눈물을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죄를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완성케하는 힘이 있습니다.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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