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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증거자 세례요한 (요 0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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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절에서 세례요하네 대하여 엄급하기를 "저가 증거하러 왔나니 곧 빛에 대하 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서 놀라운 사실은 세례 요한이 빛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증명이 필요한 것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 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증명해 본 적이 있습니다. 또 삼각형의 두 변의 길이의 합 은 제 3변의 길이보다 언제나 더 길다는 것도 익히 배워온 것들입니다. 그러나, 증 명이 안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빛입니다. 빛을 증명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보아서 이것이 빛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뿐이지 빛이 어떠하다고 증명을 하지는 않습니다. 빛을 증명해야 된다면 아무리 해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본론>

색깔을 한번 두고 생각해 보십시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뭐가 다릅니까 물론 색깔이 다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냥 '다르다'고만 합니다. 그런 것은 증명하지 않습니다. 붙여진 이 름일 뿐입니다. 둘이 다르다는 것을 색명을 제외하고 눈을 뜬 자라면 다 압니다.

이것을 증명해 줘야 할 사람은 장님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장님에게는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불간능합니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색감 으로 이야기 하며 붉은색 계통은 따뜻한 기분을 주고 푸른색 계통은 청결하고 차갑 고 냉정한 기분을 준다고 그럽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장님이 빨간색과 파란색을 알기 위하여 빨간색을 만져 보았 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뜨거운지 화상을 입었고, 파란색을 만졌더니 동상에 걸렸 더라는 말은 없습니다.

빛과 색깔을 본 사람에게는 구구하게 말이 나올 수도 있는지 몰라도 그것 그것 자 체를 증명할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우리가 바로 '빛을 증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 상에 빛이 왔으므로 이 빛을 증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증명해야 될지 참 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 빛을 볼 수 없는 영적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이 가장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죄 문제일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장님들이 빨간색과 파란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귀머거리가 소프라노와 베이스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죄라고 할때에 일반적으로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각도에서 감지하고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죄를 이야기 할 때에는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관점에서 죄의 본질 을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 님으로부터 독립되고, 분리되고, 반대되며, 거스리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를 가리켜 우리는 그를 사랑한 다, 혹은 그안에 있다, 그분이 내안에 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밀접하지 않는 관계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적대 관계라기보다 무관심의 관계입니다. 이세상에서 무관심이라는 말만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가리켜 혹자는 잊혀진 사람들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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