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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눅 19: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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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을 바라보시며 예루살렘성을 향하여 앞서서 가셨읍니다.
평화의 왕으로 나귀를 타시고 입성을 하셨읍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옷을 벗어 길에펴고 나무가지를 꺽어 길에 깔았읍니다.
종려나무가지를 들고는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호산나,다윗의 자손이여,찬송하리로다.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하늘에는 평화요,가장높은곳에는 영광이로다.” 환호하였죠 이 열광적인 무리의 환호의 함성은 파도처럼 거리를 넘치게하였읍니다. 한마디로 거리마다 온통 축제 분위기였읍니다.
이때 한 바리새인이 나타나서 “선생이여,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말했읍니다.
예수님이 답하시기를 “뭐 잘못된게 있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리라.” 고 하셨읍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성 가까이 가시면서 성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읍니다.“너희가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았을뻔 하였거니와 지금 너희들이 알지못하는도다. 이성의 돌하나도 돌위에 남기지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날을 네가 알지못함을 인함이라.”고 탄식하셨읍니다.42-44절

예루살렘에 가면 통곡의 벽이란게 있읍니다.
주후70년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점령당하고 과연 이 도시는 옛모습을 찾아볼수없을 정도로 폐허가 됐읍니다. 그때가 유월절이였읍니다. 명절로 모여들었던 1백만이넘는 유대인들이 무참히 죽어갔읍니다. 죽지않은 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전세계로 흩어졌읍니다. 1948년 독립이 될때까지 1900여년 동안을 나라없는 설움으로 울어야했고 뜻있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성전에 찾아와 부서진 성전벽의 돌을 어루 만지며 하나님의 택함받은 민족이 왜 이모양이 되였는고하며 돌들에 맺힌 민족의 한을 생각하며 울어야했읍니다. 그래서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하였고 지금도 독실한 크리스챤들은 어서 속히 이 백성이 주님께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리 내다 보시고 우리 주님 소리를 내셔서 우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주님을 우시게 하였으며 통곡의 벽이있어야 했으며 과연 예수님 말씀대로 돌들의 소리를 들어야하는 민족이 됐읍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하였기때문입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며 계속 환호했어야 할 백성들이 나쁜 제사장 바리새인들의 선동에 의하여 환호의 함성을 그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하며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값으로 통곡의 벽에서 울어야했읍니다. 돌들이 소리를 지르는 소리를 들어야 했읍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돌들이 소리지르는 소리가 무수히 들려오고 있읍니다.
돌들이 소리지르지않도록 택함받은 하나님의 사람들로서의 사명을 다 해야할것입니다.

1. 돌들이 소리지르지않게하는 방법은 구주 예수를 영접하는 길밖에 없읍니다.

본문의 “호산나” 란 말은 “오! 주여,구원하소서” 구원의 외침입니다.
시118:25에서는 “주여,청컨대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라고 호산나에 대한 주석을 붙여주고 있읍니다.
백성들이 “호산나”하며 주님을 영접했을때는 평화의 물결,기쁨의 물결,온 도성이 축제의 분위기였읍니다.
잠시후 나뿐 제사장 바리새인들의 선동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예수님을 영접하지않고 배역했다가 비극의 백성이 됐읍니다.

우리도 주님을 잘 영접해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야,꼴좋다. 잘 해봐라.”하며 돌들이 소리지르게 됩니다.이 돌들의 소리지름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지않을수없게 됩니다.

우리한국에 복음을 들고 온 최초의 선교사는 1866년 Thomas 목사님이였읍니다.
그는 중국에서 한국인 천주교신자 김자평,최선일을 만나 한국선교가 시급하다는 말을 듣고 많은 한문 성경을 들고 미국 상선인 Sharman호를 타고 한국에 찾아왔읍니다.원래 이 배는 서울에와서 조정당국과 통상협상을 하려고 한강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잘못하여 대동강으로 들어왔고 대동강변을 지키고 있던 수비대가 적으로 오인하여 불화살을 쏘아대여 불행하게도 배는 대동강에서 불타버리게 되였읍니다.
토마스목사는 불타는 갑판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읍니다.
“오,하나님 이시여,아직 복음을 듣지못한 한국민에게 은혜를 내려주소서” 그리고 성경상자를 풀어 성경을 한권씩 육지를 향하여 힘껏 던졌으나 모두 강물에 떨어졌읍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 성경이 잠긴 강물을 마시는 자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를 마시게 하옵소서” 기도하였읍니다. 불길이 마구 타올라 토마스 목사의 몸으로 타오르고 있읍니다. 그는 물속으로 뛰여들어 헤엄을 쳐 육지에 오르기는 했으나 즉시 체포되여 평양감사 박규수에게 심문을 받고 사형을 당하게 됐읍니다. 사형집행장에서 나졸에게 가슴안에 지녀왔던 성경을 주면서 “예수-”하였으나 목을 쳐 순교의 피를흘렸읍니다.그의 피는 헛되지 않아서 후에 김익두목사 같은 능력의 종이 나타나 큰 역사를 하게 되였고 김익두목사 집회에서 토마스목사의 목을 베였던 나졸 박춘권이가 회개하고 예수믿게 되였읍니다.
그후 한국교회는 급성장하여 오늘 세계적인 교회가 되였읍니다.

복음이 전래된이후 한국교회는 “호산나,주여,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외치며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감에 따라 조국은 개화되였고 문화민족 신앙한국을 만들어가게 되였읍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호산나 주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하는 외침의 소리가 줄어들어 감과 동시에 교인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역사와 세계역사를 살펴볼때 호산나 소리가 드높을때는 태평성세를 누렸으나 호산나 소리가 줄어들고 없어졌을때 돌들이 소리지르며 인간에게 비극을 초래했읍니다.

누가 애국자입니까 누가 진정 조국을 가장 사랑하는 자입니까
이 백성의 가슴마다에 믿음을 심는 사람들입니다.
호산나를 부르짖는 민족은 외침을 당하거나 난국난세를 당할수는 있어도 아주 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땅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교회가 이 선교적인 사명을 소홀히한다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게 될것입니다.

애국애족의 선지자 예레미아는 “내가 다시는 하나님을 선포하지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쳐니 답답하여 견딜수 없나이다.” 라고 말하였읍니다.렘20:9
우리는 조국을 사랑하기에 민족복음화의 꿈을 버릴수가 없읍니다.
호산나 주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 부르짖음을 멈추고 뒤돌아선다면 돌들이 소리지르는 비운을 맛보게 될것입니다.
조국의 현실을 보십시요. 이때야말로 호산나 주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간구해야 할때입니다. 이 민족을 구원하실분은 오직 구주 예수 뿐이기때문입니다.

2. 주님의 음성을 듣지않으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면서 “예루살렘아,--”하시며 소리내여 우셨읍니다.
왜 우셨읍니까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자들을 돌로 치는자여,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아니하였다” 예루살렘아,--하며 말씀하셨읍니다.
주님의 경고의 말씀이였읍니다.
멀지않은 장래에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사면초가로 가두고 자식들을 땅에 메여치며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 아니하리라” 예루살렘 멸망을 바라보시고 슬퍼하신 것이였읍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구원이요 기쁨,평강입니다.
듣지않으면 멸망 심판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심판하십니다.
얼핏보기에는 불의가 세력을 가지고 팽창하는것 같지만 결국은 패망입니다. 악은 하나님의 심판에 멸망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과 악의 투쟁에서 선이 결국 승리할것임을 선언합니다.

논에 피사리를 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벼 이삭이 아니라 가라지입니다. 피를 뽑아내고 그 이튿날 가보면 어느새 많이 돋아났읍니다. 그것도 벼이삭 보다 더 웃자라있읍니다.더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추수때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죽쟁이가라지는 불구덩이에 던져버립니다.

악마의 화신이라 일컷는 헤롯대왕,네로황제,독일의 히틀러,이태리의 뭇솔로니 같은 사람들을 보세요.
한때 그들의 세력은 대단하였읍니다. 예수님을 비롯 뭇성도들을 무참히 죽여 없앴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라지 운명에 지나지 않았읍니다.
이는 불의에 도전하는 끝없는 투쟁때문이 아니라 불의를 파멸시키는 하나님의 능력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전합시다. 이것만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조국을 사랑하기에 교회는 이 백성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죄의 값이 멸망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 인생은 유한함을 돌들이 소리치고 있읍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예루살렘성은 멸망당했읍니다.그리고 그때 판을 치던 사람들도 다 가버리고 말았읍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고올 모든세대가 하나님 말씀대로 되여져 갈것입니다.

사40:6에 “말하는자의 소리가 있어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같으니 풀은 마르고 꽂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 말씀하였읍니다.

인생은 고작해야 100년 미만에 끝나는 것이요 죽어야 할 존재입니다.그후에 반듯이 심판이있읍니다.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짧은 인생을 부끄러운 일로 먹칠하지 말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세조가 어린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성삼문은 단종의 왕위 복귀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38의 젊은 나이에 사약을 받고 노량진 언덕에 사육신묘의 한줌의 흙이되고 말았읍니다. 반면에 신숙주는 수양대군을 도와 왕권찬탈에 공을 세워 우의정,좌의정,영의정 까지 지내고 61세에 죽었읍니다. 신숙주는 성삼문 보다 23년을 더 살고 갔읍니다.
충신의 피를 흘리게 만들고 20년도 못되는 영화를 누리려다가 신숙주는 역사의 죄인이 되였읍니다. 불쌍한 인생이였읍니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는 3살에 황제에 즉위하여 영화를 누리다가 황실몰락과 더불어 일본에 피신했다가 왜놈들에게 이용당하고 이용하다가 마침내는 전범으로 전락했고 특사로 풀려 나기는 했으나 비참한 여생을 보내며 고궁이된 자금성에 들어가 옛날을 추억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았읍니다. 인생무상을 특별히 교훈해 주고 있었읍니다.

시39:4을 보세요
“야훼여,나의 종말과 년한의 어떠함을 알게하사 나의 연약함을 알게하소서.주께서 나의 날을 손넓이만큼되게 하시며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런지 알지 못하나이다.주여,내가 무엇을 바라리요,나의 소망은 주께만 있나이다.”

인생은 허무합니다.인생은 반듯이 끝나는 날이 옵니다.어두운 밤이 옵니다.
일할수없는밤이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호산나 다윗의 자손! 나를 구원하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읍니다. 나의 진정한 삶의 소망은 예수밖에 없읍니다.
사도 요한의 말대로 너희는 이 세상이나 세상의 있는것들을 사랑치말라.이 세상에있는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그것은 하나님께로 좇아 나온것이 아니요 다 세상으로부터 좇아온 것이라.이 세상도가고 정욕도 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세세에 있을 것입니다.

호산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면 멸망입니다.
“내가 세상에 온것은 심판하러 온것이 아니요,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하셨읍니다.
오늘 이 민족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정치인들,경제인들,종교인들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호산나의 외침이 그쳐서는 안됩니다.
호산나의 외침이 없어면 돌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돌들이 소리지르기전에 우리 입으로 외쳐야 합니다. 호산나,주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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