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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신앙인이 되려면 (마 23: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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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어린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각양각색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어
떤 아이는 그야말로 천사처럼 마음씨가 곱다. 그래서 인간의 본래 모습이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반면에 어떤 아이는 어쩌면 저렇게도 영악스럴까 하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영리하면서도 악한 아이가 있다.

2.어린 아이 임에도 불구하고 악이 가득찬 인간우리는 그런 인간의 본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깨닫는가 결국 인간이란 저렇구나! 하는 탄식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돌파구를 찾아 이리 저리 동분서주 하게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종교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3.예수를 믿는다는 것에는 적어도 근본적으로 이런 필요성이 있게 된다. 아무런 필요성도 없이 예수를 믿으려 한다면 절대로 신앙인이 될 수 없다. 최소한 선한 인간이 되보고자 하는 필요성 정도는 있어야 한다.

4.아예 처음부터 진리를 알고자하는 형이상학적인 필요에 의해 출발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야말로 종교성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일단 이런 성격자체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귀한 유산이다.

5.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에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 타의에 의한 출발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면 이제 나자신은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 점검해보자. 분명히 어딘가에는 해당이 될 것이다.6.스스로가 종교가 필요하다고 인정을 하고 그래도 종교 중에서는 기독교가 가장 고상하다고 판단되어져 교회를 나왔다면 그는 스스로 신앙의 정도를 걷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는 관련 없이 타의에 의해 교회에 발을 딛게 되었다.

7.그러다 보니 문제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비둘기의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것과 흡사하다. 이름만 신자일 뿐 신자다운 면모가 없다. 다시말해서 변화가 없다는 말이다. 자기만 알던 사람이 남을 생각할줄 알아야 변화인데 그렇지 못하니 불행이다.

8.도리어 어떤 사람들은 남을 비판하고 책망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경우도 있다. 더 나빠지고 말았다. 바로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경우다. 그래서 주님은 참신자가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하셨다.

I.보이려고 믿지말고 은헤에 대한 감동으로 믿자(23-24).
A.십일조를 드렸다.

1.십일조를 드리되 형식저으로나 마지 못해 드린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계산해서 드렸다. 심지어 마당 텃밭에 심어 수확한 채소마저도 십분의 일을 구분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정성인가

2.본래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평강의 왕 멜기세덱에게 제일 처음 드린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 그 평강의 왕이 바로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3.고향을 떠나는 야곱은 스스로 하나님께 서원을 드렸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인도해 주시면 자기 수입의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이었다.

4.유대인들은 이렇게 조상들의 신앙을 따라 스스로 수입의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드렸다.

5.그런데 이들에게 문제가 있었다. 십일조를 드리는 일에는 칼같이 정확했으나 다른 말씀을 지키는 일에는 별로 열심을 내지 않았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이라든지 사랑을 베푸는 일,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는 일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보이기 위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었다.6.하나님께 잘보이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라는 “보상을 전제한 믿음” ,믿음이라기 보다

는 ‘종교행위’에 열심을 냈다.

B.무엇을 위한 신앙인가

1.어떤 사람은 십일조때문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사실 십분의 일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대단한 결단임에 틀림이 없다.

2.하나님이 신자에게 헌금을 강요하시지는 않는다. 스스로 믿음의 분량에 따라 행동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신앙의 분량이다.

3.신앙을 따라 하는 것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 경우라면 결코 액수에 메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빼고 줄려고도 않는다. 최선을 다해 성의를 표하려할 것이다.

4.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을 믿는가 하는 문제이고,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가에 달린 것이다.

II.겉보다 속이 중요하다(25-26).
A.보이는 것에 집착하려 한다.

1.겉보다 속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있지만 모두가 실천하지는 않는다.

2.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잘보일까 하고 신경을 쓴다. 요즈음은 교회들 마저 이런 풍토를 좆는 듯한 느낌이다. 어떻게 하든지 화려하게 장식하려 든다든지 보이는 것에 더 많은 투자를 하려고들 경쟁을 한다.

3.진리를 깨닫는 일에 힘써야 하고 개혁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오늘의 현실이 어떤지 살펴보자.

B.심령을 새롭게 하자.

1.우리는 귀를 즐겁게 하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 그래서 목회자의 설교가 얼마나 나를 회개하도록 촉구하는가가 아니고 그가 얼마나 나의 귀를 만족시켜 주는가에 관심을 둔다.

2.목회자들을 위한 각종 집회가 개최되지만 그 내용들은 거의가 천편일률적으로 “교회성장”에 관한 것들 뿐이다. 어떻게 하든 각성운동을 일으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운동은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III.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자(27-28).
A.겉과 속이 다르다.

1.겉을 보면 대단하다. 모든 면에서 나무랄데가 없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2.예수님시대에는 종교가들이 많이 있었다. 레위지파에 속한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제사장의 직무가 보장돼 있었다.

3.서기관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회에서 가장 상류사회를 형성하는 무리들 이었다.

4.오늘날 한국에는 4만여개의 교회가 있다. 그리고 목회에 종사하는 인구도 10여만을 헤아린다. 4만교회에서 봉사하는 제직들의 숫자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그들은 틀림없는 신자들이고 누구보다 열성적이다. 그들은 종교행위에 대하여 대단히 훈련이 잘돼 있다.

5.그러나 과연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고 질문하면 그들은 무어라고 대답할까 그리고 그 대답에 대하여 그들은 어떻게 실천을 하고 있을까

B.영적대각성 운동을 일으키자.

1.형식주의에 습관이 되어버렸다. 거의 모든 것이 습관화 되었다. 습관으로 기도하는 흉내를 내고 습관으로 헌금을 드린다. 그러다보니 영적 생명력이 없다.

2.세련된 설교는 여러 곳에서 들려오지만 가슴을 찌르는 설교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왠지 찌르는 설교 보다는 부드러운 설교가 더 좋다.

3.성경공부, 제자훈련 등등 숱하게 많은 모임이 있지만 그것들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5.우리는 매일 회개해야 한다. 회개운동만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와지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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