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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뜻이 없는 시련은 없다 (히 1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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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간에게 위대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사 람은 역사의 교훈을 바로 들을 줄 압니다. 역사의 교훈을 잊어버린 백 성과 그 나라는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하기가 쉽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9년전 바로 오늘, 북한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남한 을 기습 공격하여 6.25 동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오늘 일부 젊은 세대들이 6.25의 교훈을 바로 알지 못하고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은 성서에 나타난 역사적 교훈을 바로 깨달아 아 는 생활이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수천년 전 출애룹의 고통을 오늘도 되씹으면서 이 지구상에서 꿋꿋하게 생존하는 선택받은 민족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6.25 의 고난을 뼈저리게 체험한 민족입니다. 그리고 잿 더미 속에서 다시 일어나 올림픽대회까지 성공적으로 치른 강한 의지 력과 투지를 가진 위대한 민족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Kierdegaard)는 내가 고통한다. 그 러므로 나는 존재한다.(I suffer,therefore I am.)라고 말했습니다. 인 간은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흑암중에서도 끝까지 여호와를 경외 하는 백성을 치하하고 있습니다. 또 히브리서는 우리가 때때로 징계를 받으나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그 징계를 통하여 의와 평 강의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미국의 설교가 랠프 사크만은 사람이 인간이 고통받는 이유를 네가지 로 요약했습니다. 첫째, 개인의 죄 때문에 오는 고통입니다. 술을 많 이 마셔서 건강을 해친다든지 윤리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오는 고통 입니다. 둘째, 집단적인 죄악 때문에 오는 고통입니다. 사회의 집단적 인 죄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무죄한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셋째, 실수로 말미암은 고통입니다. 교통사고와 같이 다른 사 람의 실수고 말미암아 내가 고통을 당합니다. 넷째, 불가항력적인 고 통입니다. 자연의 지해로 인한 고통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 는 불가항력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종류의 고통이든지 우리로 하여금 그 고통 의 깊은 뜻과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루이스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평안하고 즐거운 때는 우리 에게 귓속말로 말씀하시고,열심히 일할 때는 보통말로 말씀하시고, 고 통과 시련중에서는 고함을 질러서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라고 말했 습니다.

 어떤 어린이가 잘못해서 수면제를 먹게 되었스니다. 이 어린이는 계 속해서 잠만 자기 시작했습니다. 의사에게 데려가니 의사가 보고는 이 아이가 앞으로 4시간 이상을 더 자게 되면 죽게 될테니 어떻게 해 서든지 빨리 깨워야만 합니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꼬집고 때려서 마침내 깨워 살려냈습니다. 그대로 두면 영원히 잠에 빠져 죽어버리기 때문에 아이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잠을 깨우 는 것과 마찬가지로, 때때로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잠을 깨우 는 새로운 뜻과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뜻이 없는 시련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몇가지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시련을 통해서 보다 큰 은혜를 깨닫고 됩니다.

옛날 우스 땅에 모든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있었습 니다. 그는 열 자녀들이 있었고 가축을 수천 마리나 기르고 있는 부자 였습니다. 그는 건강했고 정직했으며 명성도 높아서 주위의 모든 사람 이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갑자기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하루는 폭풍이 불어와 지붕이 무너져서 10명의 자식들이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재앙으로 수천 마리나 되는 가축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 리고 건강하던 그에게 악창이 나서 기왓조각으로 자기 몸을 긁는 고통 을 건강하던 그에게 악창이 나서 기와조각으로 자기 몸을 긁는 고통을 당하게 되었슴니다. 마치 저주받은 사람처럼 되고 만 것입니다. 그가 바로 욥입니다.

 그러나 욥은 이런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도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고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실지니이다(욥 1:21)라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습니다.

 우리도 고난과 시련 속에서 욥과 같이 찬송을 부를 수 있어야 하겠습 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항상 찔리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혹자는 이것을 간 질병이라고도 하고, 또 안질병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침받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 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이 때 사도 바울은 말하 기를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12:9)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찔리는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 앞 에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6.25 동란을 겪은 사람은 그 처절한 시련과 고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5년 동안 공산 치하에서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학대를 받았습니다. 배고품은 이길 수가 있었지만 정신적인 자유를 박 탈당했을 때의 그 고통이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6.25 동란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습니다.하나 님께서 살아게신 것을 눈으로 목격했고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확실히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중에서도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저를 지 켜 주신 것은 저희 어머니와 제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이요, 철 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바쳤던 결과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는 6.25동란 때 가족과 헤어져서 생사조차 알지 못한채 혼자서 부 산으로 피난했습니다. 그곳에서 친척 한 분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 분에게 제 가족 소식을 물었더니 군산 피난민 수용소에 있다고 알려주 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트럭에 올라타 군산으로 갔 습니다. 그러나 어느 수용소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거리 를 지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가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 그 넓은 군산에서 어떻게 찾 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길을 걸어가다 보니까 아이들이 판자 위에 비누와 쵸코렛을 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사람씩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금란교회에서 목사를 하는 동생 김홍도 목사가 새까만 얼굴을 하고 물건을 팔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함께 수용소로 가니까 부모님도 죽은 줄 만 알았던 자식이 돌아왔다고 저를 부둥켜안고 우셨습니다. 우리 가족 은 그 때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죽었던 생명 살았으 니 저희들을 하나님 앞에 바치겠습니다. 부활의 생을 하나님 앞에 바 치겠습니다.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고난중에 받은 바 은혜를 증거할 때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6.25동란중에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까닭에 우리는 남과 다른 믿음을 가지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 고 있는 것입니다.

 25시를 쓴 작가 버질 게오르규는 한국을 세 차례나 방문했습니다.

그는 고난속에서도 흰 옷을 입고 지조를 지키며, 시련 속에서도 종교 와 예수를 가지고 있는 우리 믿고을 '고난 속의 위대한 만족'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더 받아야 합니다.

 2.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인격을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인격입니다. 우리 의 인격이 새로워지고 성숙해지는 것이 주님의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차원높은 인격을 얻고 됩니다. '고난 '이라고 하는 위대한 학교에서 연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제 아들 둘이 군대에 입대하여 최전방에서 휴전선을 지키다가 제대하 고 돌아왔을 때에 저는 그들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생각 도 달라져서 불가능이란 없다며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볼 때에 '고난' 의 학교에서 배운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난의 학교에서 고난의 교사를 통해서 배우는 위대한 진리는 보다 성 숙한 인격을 낳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 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17) 라고 말씀했습니다. 고난을 통해 서 과거의 모든 망상은 다 사라져 버리고 강한 의지와 투지와 지혜와 소망과 용기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엔나의 어느 음악교수가 노래를 잘 부르는 한 학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학생은 칭찬할 만한 좋은 서대를 가지고 있소. 지금 까지 그의 인생은 그에게 너무 친절했소. 어느 땐가 그에게 큰 시련이 닥쳐온다면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성악가가 될 것이오.위대한 예술가, 위대한 철학자, 위대한 신앙인은 모두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그 인격이 다듬어진다는 말입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12:11)

눈물의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과는 얘기를 하지 말라는 어느 철학 자의 말이 있습니다. 위대한 인생론입니다. 시련을 통해서 다듬어진 겸손해지고, 너그러워지며, 아량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값진 교훈입니다.

 평안북도 정주에 오산학교라는, 민족주의를 지고의 이상으로 삼는 학 교가 있었는데,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옛날 그 동네에 아주 똑똑한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가난했지만 열심히 일 을 했습니다. 그는 주인집의 요강을 아침마다 깨끗이 닦아 놓았습니 다.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 각하여 이 청년에게 학자금을 주고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로 보내서 공 부 시켰습니다. 마침내 그가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교향인 오산에 내려 와 오산학교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머슴살이하던 사람이 선생님이 되었다고 하면서 모든 사람이 그를 칭찬했습니다. 한번은 졸업반 학생 들이 그 선생님에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 니까 하고 물었더니 머슴살이했던 그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시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시오.

 고난과 시련의 역경 속에서 인격은 단련됩니다.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의 인생이 그에게 너무 친 절했기 때문입니다. 가난에 쪼들려도 보고 잿더미 속에서 어려운 시련 을 당해본 사람만이 위대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3. 시련을 통해서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시련을 겪은 사람은 비록 인종과 언어가 다를지라도 서로 일체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 단련된그 리스도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고난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신앙으로 무장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것을 우리는 텔레비젼을 통해 보았습 니다. 저는피로 물든 천안문 광장을 가슴조이며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는 결국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학살 당했다는 소 식을 들었습니다. 탱크를 가로막던 그 젊은이도 처형당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까 중국 공산당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용감 한 대학생들을 군중 앞에서 재판을 하여 사형선고를 내리고는 그 자리 에서 총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유가족들에게 총알값을 내라고 했습니다.이것이 그들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세상에 이런 야만적인 백 성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의 실체일지도 모릅니 다.

 우리는 지금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하면서 왜 아직도 북한 땅을 향해서는 민주화의 소리를 외치지 못합니까 그 무서운 독 재에 대해서는 왜 힐책하지 못합니까그렇게도 이 나라의 민주화를 부 르짖고 독재를 지탄했던 그 소리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에게도 똑같은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오늘 우리 젊은이들은 공산주의에 대하여 너무도 모릅니다. 그런 까 닭에 우리는 중국에 예배당을 세우려고 기도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환난당하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환난을 당해본 사람 이라고 고린도후서 1장 4절에 말씀했습니다.

 제 친구 목사님이 축구를 하다가 머리를 다쳐 뇌수술을 받게 되었습 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그가 의식이 회복되었을때 교회 청년들이 부르는 찬송 소리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그 때 이 목사님 은 그 찬송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렀습니다. 그 찬송이 그 분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그 분은 하나님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 다. 그후부터 이 목사님은 병석에 누워 있는 형제만 있으면 찾아가서 찬송을 부르며 환자들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고난을 당한 자만이 남을 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록도의 문둥병 환자들이 한번은 우리 교회에 와서 찬양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손마디가 다 떨어져 나간 손으로 하모니카를 불면서 '할렐 루야' 찬양을 부르고 간증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큰 충격 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건강하면서도 감사할 줄 몰랐던 우리, 우리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배고파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시련을 당해 본 사람만이 시련을 당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게 합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 뇨 흑암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뢰할지어다(사50:10).

 배에는 두 가지가 꼭 필요한데, 그것은 키와 닻입니다. 키는 배의 방 향을 바로 잡을 수가 있기 때문에 꼭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풍랑이 일어날 때에 내려야할 닻입니다.닻이 없으면 배는 풍랑에 밀려 파손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환난중에 믿음의 닻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믿음의 닻을 그리스도에게 내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실망하지 아니하고 더 굳은 신앙 가운데 승리해 나갈 수 있습 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저는 지난번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 그곳에 사는 우리 교포들의 생활 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난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우리 형제들을 보면서 저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모택동 모자를 쓴 중국인을 한 사람 만났는데, 그는 매우 흥분 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자격으로 6.25동란 때 참전했는데, 그 보상으로 그 날 1천원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나는 당신들에게 포위당해서 죽게 되었던 생명이었으나 하나님께 기도하여 살아났소. 나는 그 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발 견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목사가 되었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6.25동란중에 수많은 재물이 불에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명예 와 지위가 사라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손이 었지만 내 생명이 소중하고,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생각 하나 때문에 지금은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 니다.

 저는 언제나 아침에 아내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 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셨고 이 세상에서 살 아만큼 살게 해주셨으니 이제는 순교할 각오로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6.25 동란 때에 죽을 우리의 생명을 살려 주셨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재물에 애착을 갖지 마십시오. 남에게 비난거리가 되는 삶은 살지도 말고 부끄러운 삶을 살지도 말아야 합니다. 값있게 최선 을 다해서 살아갑시다.6.25동란을 체험한 고난의 백성답게 믿음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승리 해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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