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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질서있는 교제 (살전 0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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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교제가 아름답게 경험되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교훈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때때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질서가 상실된 관계속에서는 올바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은 특별한 교훈이 아니라 상식적인 교훈일 것입니다. 세상은 인간답게 사는 방법으로 법을 만들고 그 법으로 인간의 질서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복잡한 인간관계가 나타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이라는 것을 만들기도 합니다. 다시말해 서로가 아름다운 교제를 경험하려면 인간의 죄를 규제하는 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도 서로의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 어떤 질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법에 지배당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법에 지배를 당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에 지배를 당하는 특징은 세상의 어떤 법에 지배당하는 것보다 도덕적이며 인간을 풍성하게 해준다는데 그리스도인들의 자부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특징은 개인성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는데 그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순종과 연합의 경험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점점 성적인 타락과 폭력으로 망가져 가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질서를 상실한 이 세대의 비극이 아닌가 합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질서의 세계속에서 우리는 신앙의 질서로부터 참된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공동체를 우리는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는 서로의 질서속에 경험된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신앙 공동체에는 어떤 질서가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영적 지도자와의 관계와 형제들간의 교제에 대해 권면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우리가 관계속에서 더욱 성숙할 이유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1. 영적 지도자에 대해 알아라(살전5:12)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지식은 하나님앞에만 순종하면 되지 사람앞에 순종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모두가 평등한데 누가 누구에게 순종할 이유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앞에 순종이 무엇인지 안다면 이러한 잘못된 신앙의 지식을 가질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경험되는 아름다운 교제를 갈구한다면 그 시작은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신앙의 영적 질서 속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영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권하는 첫 내용은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라고 말합니다. 안다는 말은 경험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서로를 신앙으로 섬기고 가르치는 영적 지도자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인간의 부족함을 짐으로 안고 주님에게 순종하기 위해 감사와 겸손으로 여러분을 섬기는 영적 지도자들에 대해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영적 지도자들의 삶의 자세와 사랑과 고뇌를 안다면 13절에서 바울이 요구하는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라는 권면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진정 아름다운 교회로서의 경험을 원한다면 이 교회의 질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습관은 지도자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과 지도자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무책임성이 오랜 세월 동안 ‘내리 사랑’이라는 관념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그로인해 오늘날 우리들의 영적 지도자들은 진정한 사랑을 시도할 능력을 잃어버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그 들음은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영적 지도자들이 말씀으로 올바로 무장되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양육 받는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과 무관한 믿음으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셀 그룹’ 교회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구체적으로 섬기는 영적 지도자들에게 대해 생활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이 바울 사도의 권면앞에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적 지도자를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사랑의 교제가 경험되기 원한다면 성경적인 시작이 우리의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삶의 책임을 함께 나누겠다는 사랑이기도 한 것입니다. 삶을 나누지 않는 교제는 구체적인 사랑의 관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영적 지도자들에 대해 감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섬기는 영적 지도자가 무너지면 그것은 한 공동체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5:13)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관심의 촛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이 성경의 말씀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먼저 이해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휴머니즘은 불신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불신자를 사랑하기 위해 형제와 자매에 대해 무관심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 어떤 관계 보다도 그리스도안에서 형제와 자매간의 사랑을 우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도전적인 교회가 되려면 세상이 부러워하며 함께 하고 싶어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도의 이유로 세상에는 관용적이고 친절하면서도 형제간에는 신앙인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 하면서 이해와 용서가 인색하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공동체를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누가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인가를 잃어 버리고 삽니다. 그래서 후회라는 아픔을 갖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런 광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이 말은 그 어떤 아름다운 조건을 가진 여자라 하더라도 내 삶에 관계되어 함께 인생을 나누는 여자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카피를 이렇게 바꾸어 봤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형제와 자매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비록 부족하고 때로는 갈등을 경험하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서로의 삶을 나누고 있는 상대인 것입니다. 그런 서로가 화목하지 못한다면 거기서 우리는 상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어서 영적으로 상대적인 성숙을 가진자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3. 형제의 책임(살전5:14-15)
그 첫 번째 권면이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규모 없는 자는 경제적인 생활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은 형제간에 무절제한 경제생활에 성숙한 자가 간섭하라고 권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제원칙이 얼마나 개인의 삶을 풍요하게 해 주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이 교훈에 순종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인격적인 나눔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이 말씀을 적용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죄를 나누라는 말씀으로 오해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신앙이 어려서 말씀으로 삶을 극복하지 못하는 순간에 있는 형제 자매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내려 줍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의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에게 커다란 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공동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교회의 모습을 이루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공동체, 서로가 서로를 끔찍하게 아끼며 사랑하는 공동체, 영적 지도자와 양육 받는 성도간의 모델적인 공동체, 영적 지도자와 성도간에는 자식처럼 사랑하고 돌보며, 자신을 섬기는 지도자에게 믿음과 순종으로 사랑을 확인해 주는 그런 관계, 형제와 자매간에는 서로를 소중하게 아끼며 사랑하는 그런 관계. 그래서 삶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공동체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타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부모가 없어도 남편이 혹은 아내가 없어도 더 나아가 자식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이 교회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그런 고백이 나타나는 교회를 경험하고 싶은 것이 제 목회의 소원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이상적일까요 인간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서로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없는 여러분과 여러분이 없는 나는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영적 공동체의 모습은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순간 서로를 통하여 경험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시며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있으며 그 믿음을 나눌 수 있는 형제와 자매가 있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며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열망하는 내 형제 자매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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