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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재물은 인격 시험품 (눅 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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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불의한 청지기의 기민한 처세술을 주목하게 하시면서 성도들의 삶 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삶의 지혜, 특히 재물을 사용하는 지혜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문민 정부 이후 개혁 대상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보면 좋은 신앙이 좋은 일상생활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이 제대로 재물의 사용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거나 실천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일만 불 국민 소득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주님이라기 보다는 부자의 주님이라고도 합니다. `주님이 가난해지신 것은 우리를 부요하케 하기 위함이라 하지 않았었느냐'고 합니다. 일리가 있으나 그럴수록 가진 자가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를 본문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1. 재물은 어디까지나 좋은 도구일 뿐이다

오늘의 본문의 의도는 그 재물의 조성경위나 원 소유자가 누구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재물은 본래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나 재물이라는 것은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도구적인 것으로서 목적을 따라서 여기서는 친구를 사귀는 데 얼마든지 이용될 수도 있다고 가르칩니다. 재물은 사용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지 숭배하기 위한 신은 아닙니다. 인간은 재물보다도 더 소중합니다. 이 사실을 혼돈하거나 뒤집는 경우에는 너무나 비인간적인 일들이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돈에 의해 처분당한다면 우리의 인격은 돈의 격보다 못한 것이 되고 맙니다. 한 달의 월급을 위하여 일한다고만 생각하면 그처럼 비참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청지기는 악하기는 하였지만 사람을 위하여 돈을 쓸 줄 알았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보니 땅을 팔 수도 없고 빌어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것이기는 하지만 얼른 재물을 이용할 생각을 하였습니다. 재물에 압도당하지 않았고 재물이란 사람을 위하여 쓰이는 도구라는 것을 이례적인 사건을 통하여 극명하0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청지기의 생각은 최소한 돈에 매이지는 않은 것입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일입니다.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옥을 발견했는데 이 사람은 그것을 고을의 관리인 자한이라는 사람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나 자한이 받지 않자 농부는 이것은 저의 보배가 아니니 원컨데 받아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자한은 그대는 그 옥을 보배로 알지만 나는 받지 않는 것을 보배로 아오. 그러니 내가 그것을 받는다면 그대와 나는 모두 보배를 잃는 것이 될 것이오. 하고 사양하였다고 합니다

2. 재물은 나누어져야

재물이 한 군데로 몰리게 된다면 필요한 사람은 많고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명분만 있으면 그 명분에 과도하게 의지하여 돈을 한 군데로 모으는 경향이 있습니다. 14절에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는 말을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과 비견하여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믿는 자들은 힘으로 빼앗지는 못해도 명분만 있으면 과도하게 부를 모으며 땅에서 모아진 그것을 하늘나라의 어떤 것보다 더 자랑하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다까 인간은 좋은 명분을 가지고 모아 놓기만 하는데 그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은 인간의 명분을 거스려 불의한 자를 통해서라도 나누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의 빚을 마음대로 탕감해 준 것도 악한 일이고 탕감받은 사람들도 같이 나쁜 사람들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재물이라는 것은 쌓아만 놓아서도 안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내 뜻과는 반대 되게 남의 손에 의해 탕감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점은 귀한 교훈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냉엄한 논리는 내 돈 벌어 내가 쓰는데 누가 말하느냐는 것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명분만 그럴 듯하지 불공정 경쟁에서 남의 돈을 휩쓸어 가면서 내 돈이라고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경쟁자들이 `그 돈이 어째서 네 돈이냐 내 돈이지.' 하는 마음으로 비논리적인 울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스스로 나누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나누시고 하나님을 대리한다고 자칭하는 인간의 폭력이 나눌 수도 있다는 사실은 역사상의 수 많은 미화된 민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의 화폐에는 4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50프랑 짜리에는 온 식구가 과수원에서 수확하는 광경(근로 생활)이 그려져 있고, 100프랑 짜리에는 군인인 크리스천 마르치노가 말에서 내려와 자기 외투를 가난한 자에게 주는 광경(사랑의 봉사)이 그려져 있고, 500프랑에는 청년의 상징인 샘(참된 생명의 귀중함)이 그려져 있으며, 1,000프랑 짜리에는 죽음의 춤(돈의 위력)이 그려져 있습니다(기독교 문장 대백과 사전 19권 634쪽). 아마 1,000프랑 쯤 되면 나누기도 힘들고 위험하기도 한 모양입니다.

3. 재물은 장래를 위하여 좋은 투자가 되어야

불의한 청지기는 사악하기는 하였어도 장래를 준비할줄 아는 사람이었습 니다. 돈을 눈앞의 현재만을 위하여 쓴다면 그의 인격은 처절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우리는 현재는 굶어도 아이들의 등록금을 내개 되는 것이고 휴가를 생각하며 땀을 흘리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소비 행태를 보면, 개인이든 교회이든 장래에 대한 투자보다는 현실적인 소비 선택에 많은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에 맞게 기독교인의 본분에 맞는 소비 순위가 바로 장래를 위한 투자일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이 땅에서 거두는 것보다 이 땅에서 살더라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거두는 일에 더 비중을 두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병자년에 대흉년이 들어서 굶는 자가 속출하였습니다. 신재효는 그들 중에 얼마라도 구출하기 위하여 무엇이든 작은 것을 가져오고 곡식과 바꾸어 가게 하였습니다. 자기도 자랑하기 싫었고 그들의 의지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도 싫었기에 그리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도둑이 들었습니다. 신재효는 풀어 주면서 맘껏 곡식을 가져가라고 하였으나 감히 엄두를 못내자 곡간에서 돈 백 냥을 성큼 집어 주었습니다. 몇 년 뒤 그 도둑이 돈 백냥을 들고 찾아왔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었으면 그로써 족하오. 그 돈은 당신의 개과천선을 위하여 투자한 것이니 그냥 가지고 가시오. 하였습니다.

재물은 인격의 시험품입니다. 재물은 그 가진 자가 두 나라 사이에서 어디에서 살까를 항상 고민하게 만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작정함으로 최소한 의식주에 대한 염려와 이웃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잘살게 될수록 그 시험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큰 사업을 위하여 큰 도구를 주실수록 그 사용법이 까다롭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재물을 능력보다 넘치게 주실 때에는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지혜도 주시라고 간구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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