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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심히 주를 섬기라 (롬 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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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1-11장에서는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될 때 성품의 변화가 온다고 말하였고, 12-16장에서는 성도의 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외적인, 그리고 도덕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다 로마서 12장은 기독교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윤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봉독한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양식’을 세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섬김의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자신을 나아주신 부모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멸망의 자리에서 영생의 복을 받게된 성도들이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혜를 감사하여 우리의 정성을 드리며 찬양하는 영적 예배와, 둘째는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며 서로 사랑하며 서로 존경하며 서로 봉사하는 모든 생활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각양 은사를 주셨으며, 물질도 주셨고, 건강도 주셨고, 재간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가르치고 권면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받은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봉사하기 위하여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면 ‘은사’와 ‘은혜’가 무엇입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값없이 주신 영원한 생명입니다. 구원의 선물입니다.
엡2:8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이며 영어로는 기프트(선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받은 성도들에게 선물을 또 주셨는데 그 선물의 내용은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기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전12:7절에 보면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로써 교회에 유익을 주며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다시 말하다 섬기며 봉사하기 위해서 주신 여러 가지 기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사를 주신 목적에 대해서 피터 와그너 교수는 말하기를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에게 성령에 의하여 주어진 특별한 속성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용하도록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짹 맥고먼 교수(남침례교 신학교)는 ‘은사는 기능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회중적이다’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기능적이란 말은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재능을 주셨다는 뜻이며, 회중적이란 말은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주셨다는 뜻입니다.
4절에 보면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은사’라는 것은 몸의 한 지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봉사하기 위하여 각각 다른 은사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또 내가 받은 은사를 자랑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한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신 은사를 가지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성도들의 관계를 한 몸으로 보았습니다.
5절에 보면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가 되시며 우리는 그의 지체들이라는 것입니다. 지체들이 주어진 기능을 잘 감당할 때에 한 몸으로써 일을 잘 감당 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이 주신 은사를 따라 봉사할 때에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가 있으며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엡4:15-16절에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자라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명을 바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기능들입니다.
다 가르치는 교사가 될 수 없고, 다 물질로 섬기는 자가 될 수 없고, 다 좋은 목청으로 찬양하는 성가대가 될 수 없고, 다 몸으로 봉사하는 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서로 자랑할 것도 없고, 또 부러워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겸손히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직분대로 충성할 때에 협력해서 주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은사는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를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모든 지체가 보이지 않는 신경과 핏줄로 연결된 것처럼 우리 교회의 지체들은 겸손과 사랑으로 연합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모든 것을 다 구비하였다고 할지라도 겸손과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다 모든 지체는 죽고 썩어서 고약한 냄새와 독소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제구실을 못하게 되고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비록 어떤 기관이 좀 약해지고 병이 든다 할지라도 각 기관이 결속되어 열심히 돌아가면 약했던 기관이 다시 회복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모든 지체가 겸손과 사랑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으면 약한 부분도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가지 은사가 있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일곱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6-8절에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언과 섬기는 일과 가르치는 일과 권위하는 일과 구제하는 일과 다스리는 일과 긍휼을 베푸는 일...이렇게 일곱 가지입니다.
그리고 고전12장에 보면 지혜와 지식과 믿음과 신유와 기적과 영분별함과 방언과 방언 통역과 사도와 서로 돕는 일과 다스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에 보면 복음 전하는 일과 목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보면 7가지를 더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전적인 헌신을 위한 독신생활과 자원하여 궁핍하게 되는 일과 순교와 대접하는 일과 선교사와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과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합 27가지 은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이면 누구에게나 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그 은사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사를 활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마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보아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하여 주인에게 칭찬과 상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파묻어 두고 활용하지 않았으므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과 함께 받은 것까지도 빼앗기고 어두운 곳으로 쫓겨났습니다.
부산 고등학교 음악 선생을 하던 분이 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떤 분에게 독창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 성가대가 형편이 없어서 나만 고생하네, 성가대가 실력이 있으면 내가 편할 텐데....이렇게 불평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 그 좋았던 음성이 어디로 가고 쉰 목소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지체는 활동을 해야지 하지 않으면 지체가 굳어지고 약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라고 각각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를 최선을 다하여 잘 사용할 때에 다시 말하다 주님을 열심히 섬기며 봉사할 때 우리의 심령이 더욱 더 강건해지며 현세에서도 복을 받고 내세에서도 하나님 앞에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봉사해야 할 것인가
9-13절에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겸손과 그리고 열심과 인내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은사를 받고도 바로 봉사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써 주님을 사랑하며 그의 기뻐하시는 성도를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요일4: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았다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백성인 성도를 사랑함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이나 교회를 위해서 봉사는 일은 주님을 사랑하며 성도를 사랑하므로 바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봉사할 때에 때로는 피곤해질 때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의 사랑이 식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사랑을 언제나 공급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충만함과 사랑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즐거움으로 섬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랑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은사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12하반 절에 보면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했습니다. 기도에 힘쓸 때에 지속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 충만 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때에 형제를 사랑할 수 있고, 그래서 지체가 서로 아름답게 연합되며 서로 아끼고 존경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심이 생기며 봉사에 즐거움이 생깁니다. 피곤이 물러가고 새 힘이 넘칩니다. 그리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며 봉사할 때에 사탄의 방해가 많습니다. 그 때마다 인내하며 승리할 수 있는 힘도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견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요,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복된 은사를 사랑과 겸손으로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먼저 내 자신이 은혜가 넘치며 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로 인하여 우리 교회가 든든히 서가며 날로 성장하고 부흥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맡겨주신 복된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 앞에 칭찬 받고 크게 복을 다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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