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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기초가 확실한 성도 (행 02: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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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지을 때 자재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물의 기초입니다. 일본은 전 세계적으로 지진이 많은 나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건축물들은 웬만한 지진에는 끄떡없이 견딜 만큼 견고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집중호우 때 많은 집들이 무너지고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건물을 지을 때 부실공사가 많습니다. 다른 나라가 몇 년할 것을 몇 달만에 해치워 버립니다. 빠른 것은 좋지만 그만큼 부실공사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일제 시대 때 시공한 도로, 다리, 철도들은 아직까지 건재한데 우리 나라가 시공한 건축물들은 얼마 안되어 여기 저기 고장이 납니다.
경부 고속도로는 건설비보다 보수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바입니다. 위험한 지리적 여건을 가진 건축물이 더욱 기초가 튼튼하고 건물이 견고해야 하듯 풍파 많아 흔들리는 세대에서는 능히 이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신앙의 기초와 견고함이 필요합니다.
베드로가 수제자가 된 배경에는 그의 신앙의 튼튼한 기초가 있었습니다. 바로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7-68)”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성경 속에 나타난 위대한 신앙고백들은 대부분 베드로가 한 말들입니다. 물론 베드로에게도 허물은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그의 신앙의 기초를 더욱 든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을 받고 난 뒤에 이루어지는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입니다. 이 설교 속에 베드로의 반석같은 신앙고백과 기초가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반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름도 베드로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그 무엇이 내용과 기초가 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구원의 방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1-12)”
크리스챤들이 말할 때마다 일반인들과 가장 크게 충돌하는 것은 왜 너희만 옳으냐 하는 문제입니다. 기독교의 유일성과 배타성이 문제가 됩니다. 신자들 가운데도 저들도 옳고 우리도 옳지만 우리가 좀 더 낫다 하면 좋겠는데 왜 우리만 옳고 저들은 다 틀렸다 말하는가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종교상의 옳다 그르다는 하는 것은 절대성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할 때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교란 무엇이다’라고 자기가 설정해 놓고 자기가 옳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문제를 자기가 내고 자기가 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할 때는 다 정답인 것입니다.
종교를 논하자면 절대 진리에 관한 싸움으로 종교를 논하는 것이냐, 아니면 인간이 말하는 윤리와 도덕으로써 종교를 말하는 것이냐 하는 선을 일단 긋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윤리와 도덕을 종교라 합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나는 이것을 가치있게 생각합니다. 충이다 효다 또 예의다 하며 그런 것들을 최고의 가치라고 해놓고 그 가치에 맞게 종교를 보니까 불교가 괜찮고 이슬람교가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입학시험에서 합격자 불합격자를 가릴 때 수험생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로 여부를 가리지 않습니다. 오직 정답이냐 아니냐로 가립니다. 연필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오른 손으로 썼느냐 발로 썼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정답을 썼느냐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정답은 본인이 얼마나 정답인가를 확신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낸 사람이 요구한 답을 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종교는 그런 문제를 낼 분이 있느냐 없느냐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 이야기를 할 때 모두가 자기가 문제를 내고 있으니 누가 신입니까 각자가 신이니까 정답도 인간 수 만큼 나옵니다.
문제를 내는 사람과 답을 쓰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고 하면 그가 문제를 내는 주인인 것입니다. 그를 믿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를 믿는다, 주님이 계신다, 창조주가 계신다라는 것을 모르는 한 문제는 본인이 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싸움거리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의 배타성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배타성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대학 시험을 치를 때 아무리 본인이 불쌍해도 점수가 되지 못하면 합격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시험을 내서 우리가 답을 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시험문제를 냈고 그 시험을 통과할 방법은 예수를 믿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왜 예수냐 석가면 안되냐 해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낸 문제의 답은 예수여서 인간이 아무리 따져서 자기 답대로 해도 그 댓가는 천국이 아닙니다.
겨우 커트라인에 매달려서 붙을지라도 떨어지고 붙는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상은 우리가 결단코 얼마나 잘났는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결국은 절대적인 권위로써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4)”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2-19)”
모든 종교는 유사성을 가집니다. 내세를 강조하고 선행을 중요시합니다. 다른 종교에 장점이 있으면 배워서 자기 종교에 적용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성탄절이 큰 절기로 지켜지자 불교에서도 석탄일을 국경일로 정하도록 압력을 넣고 그날에 성대한 많은 행사를 갖습니다. 교회의 여름성경학교를 배워 불교에서는 어린이 불교학교를 개설합니다. 교회의 복음성가처럼 사찰에서는 찬불가를 만들어 보급합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은 흉내내어도 유일하게 다른 종교에서 모방할 수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타 종교들은 그들 종교 창시자들의 출생을 환영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부활을 노래할 수는 없습니다. 성지순례 기간 중 구입한 책자 가운데 나오는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빈 무덤이 아니라 무덤을 비우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천주교에 가면 예수님의 죽어 늘어진 시신을 마리아가 비통하게 바라보는 조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대상은 무덤 속에 계신 예수님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우리를 사랑하사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우리를 사랑함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나 죄가 없으므로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어 그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인간이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없다 하여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12제자가 보았고, 많은 여인들이 보았고, 500여 형제가 일시에 보았고, 40일 동안 이 땅에 많은 사람이 그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예수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는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바라보는 믿음까지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전도합니까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행 17:3)”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사랑 때문이요, 그가 다시 사신 것은 그가 가진 생명의 능력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는 그 넘치는 사랑과 죽음을 이기신 위대한 부활의 능력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 11:25
-26)”
우리 믿음의 기초는 부활까지 믿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도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 그걸 네가 믿느냐고 주님은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때 우리의 부활도 믿을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을 때 그 능력으로 오늘 모든 마귀 권세를 깨뜨리도록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믿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전체에 걸쳐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확실성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일어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안에서 다시 살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예수 부활은 예수의 대속과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기독교 신앙의 기초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 신앙의 기초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예수는 우리에게 주와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새는 공중을 날고 물고기는 물에서 뛰놀고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됩니다.
왜 내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냐고 말하는 것은 왜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만 살 수 있도록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그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 인간에는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죽음은 존재의 종말을 말하지 않고 분리를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인간에게는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적인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육체의 죽음을 간직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육체의 죽음 뒤에는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문제요 인류의 문제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 놓았습니다. 마귀 사단이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인간들에게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와 저주는 하나님을 떠난 연고입니다.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사망으로 다루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은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화목제물이 되사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여신 선지자가 되셨습니다. 사단의 사망권세를 꺾으시고 부활하사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직분의 사람에게만 기름을 붓습니다.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 이 세 가지 직분을 합한 이름 그리스도. 그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천하에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구원의 유일한 문은 예수님만 되시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다른 문은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에게 왕이 되십니다.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와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그렇게 믿는 믿음이 확실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수는 많으나 세상에 대하여 영향력을 입히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감소되거나 소멸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의 기초가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소수정예라는 말이 있지만 오합지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수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구원의 방법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를 삼으셨다는 사실을 확신할 때 어느 누구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못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신앙이 있는 사람 100명만 있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기도의 거장 죤 낙스는 말했습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 안 하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 신앙의 기초가 확실한 사람의 기도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수 있습니다. 만물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와 같은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기초가 튼튼한 사람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땅이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반석입니다. 바람 앞에 굴복하지 않는 바윗돌입니다. 삶의 외형을 꾸미려고 애쓰지 말고 기초를 깊게 놓으시기 바랍니다.
생명과 능력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그가 모든 일에 이기게 하십니다. 날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만 붙드는 기초가 확실한 신앙 가운데 범사에 승리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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