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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앉은뱅이를 일으킵시다 (행 0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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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예수님이 변화산에 계실 때 제자 9명이 미친 어린 아이 하나를 가운데 두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주님이 내려오셔서 고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능히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하였나이까”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이것이 주님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문제는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도저히 해결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찾는 것,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곧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고 문을 열어 주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은 우리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함께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전도자는 기도의 비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할 때 전도자는 응답을 받게 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시간을 정해 정시기도를 했고 또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했습니다. 정시기도했다는 증거가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도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라고 했습니다. 제 구시만 되면 베드로와 요한은 항상 성전을 찾아 기도했습니다. 정시기도, 무시기도를 통해 주께서 이루신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창 3:1-10).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죄 때문에 누구나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로 태어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형편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관계없이 출생할 때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된 자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때 그의 문제는 비로소 해결됩니다. 앉은뱅이가 하나님을 떠났는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전까지 그는 가장 가까운 곳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구원의 환경에 가장 가깝게 있기는 하지만 구원을 못 받은 사람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이 선택한 선민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나라에 기독교 인구가 채 2%도 안됩니다. 지금도 그들은 예수님을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다.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소아시아 지역에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있습니다. 과거 복음이 왕성하게 전해졌던 장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98%가 회교를 믿고 있고 철저하게 관광코스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장소와 유적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귀로 듣고도 믿을 수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환경 가운데 내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은혜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들로 놓고 볼 때는 서글픈 일이요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분노하실 일입니다.
오늘 본문 속의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성전 미문은 이방인의 뜰이라고도 했는데 바로 성전에 들어가 제사하기 위해 짐승을 잡는 장소였습니다. 성전 문턱에 바로 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구원의 환경 가까이에 그가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만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서 물과 음식을 먹지 못하고 굶어 죽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식당 옆에서 냄새 맡으며 죽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디에 있어도 굶어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비참하기로 말하면 식당 옆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더 비참합니다.
이 앉은뱅이의 문제는 그가 앉은뱅이로 평생 걸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육신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다고 했을 때 그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마귀에게 속아 물고기가 물을 떠난 것처럼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저주받아 해산의 고통을 하게 되었고, 남자도 저주받아 이마에 땀이 흘러야 겨우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엉컹퀴를 내고 끊임없이 인간에게 반항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인간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때 창세기 1:27-28의 축복을 회복하게 됩니다.

2.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의학이 발달해서 과거에 불치병으로 분류했던 수많은 병들을 고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최첨단의 의학으로도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재간이 없습니다. 앉은뱅이가 된 사람은 평생 그렇게 추한 모습을 가지고 남에게 동정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더 불쌍한 것은 평생을 남에게 동정 받으며, 멸시받으며 서럽게 살아왔다는 이유로 앉은뱅이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죄 때문에 안됩니다. 하나님은 죄가 하나도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앉은뱅이도 예수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을 남에게 조롱 받고 멸시받고 사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았다는 이유가 구원에 있어 동정 받을 만한 가치는 전혀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저에게 늘 잊혀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에 유재찬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형님네 집에서 사는데 가족들로부터 설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모없이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려니 자연적으로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공부도 못했고 머리도 나빴습니다.
누구 하나 그 곁에 가서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봄소풍을 갔는데 다른 친구들은 김밥에다 과일, 과자 등 푸짐하게 간식을 싸 가지고 왔습니다. 그 친구는 멀리 한 구석에 가서 깍두기에 보리밥을 싸 가지고 와서 남에게 차마 보이지도 못하고 가방에다 반찬을 두고 울면서 꺼내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불쌍해 보이던지요. 소풍가는 날이 되어도 김밥하나 싸줄 수 있는 부모가 없다는 사실, 부모가 없어도 형이나 형수가 싸줘도 좋으련만 차갑게 냉대할 뿐 따뜻한 시선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소풍날은 그에게 더없이 슬픈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그날 집에 돌아가 이불 속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형님이 고등학교를 보내주지 않아 사회로 나갔습니다.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그 친구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속으로 그랬습니다. ‘천국에 가면 너는 이 세상의 모든 천대를 벗어 던지고 행복할 수 있을 거야. 그날까지만 참아라’ 그 당시에는 제가 예수를 믿지도 않았는데 그 애가 하도 불쌍해서 그렇게 속으로 말했습니다.
불쌍한 사람은 억울해서라도 천국가야 합니다. 나사로가 이 땅에서 그 처참한 멸시와 천대를 다 받았는데 지옥에 가서 그 고통을 또 받았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그가 천국 가는 길은 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만나 그의 죄가 용서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사 53:5-6)
그가 고통받고 십자가에 죽은 것이 나의 죄 때문이라고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만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앉은뱅이는 불쌍합니다.
앉은뱅이 곁에는 육신의 봉사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를 불쌍하게 여기고 매일 성전 미문까지 데려다 앉혀주는 육신의 봉사자가 있었습니다. 저 사람 저래서 어떻게 사나 하면서 동전을 던져주는 물질을 봉사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앉은뱅이의 생활을 돕는 현실적인 도움을 될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되지 못합니다.
인간적인 도움으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원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물질의 봉사자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육신적인 불구 이전에 자신의 죄를 해결하지 못한 영적인 앉은뱅이였습니다. 원죄를 간직하고 있는 자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였습니다. 하나님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엡 2:1,3). 앉은뱅이의 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 성전에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그는 성전 문 앞에는 있었지만 성전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불구자, 장애자는 성전 안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문은 들었으나 정확하게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영혼의 안내자를 만나야 했습니다.

3.모든 불신자는 마귀에게 소속되어 있습니다(요 8:44)
불신자는 그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관계없이 여섯 가지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①마귀의 자녀(요 8:44) ②마귀에게 종노릇(행 10:38, 8:7-8) ③정신적인 문제(마 11:28, 막 5:1-12) ④육신적인 문제(행 8:4-8) ⑤내세문제(눅 16:19-31 ⑥후손의 문제(고전 10:20)
예수 믿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섯 가지 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앉은뱅이는 사단에게 소속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알든 모르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 그의 근본 소속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바리새인,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이 안보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거기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인들에게 이와 같은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마귀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로서는 이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 불행한 여섯 가지 상태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인생들이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합니까 반드시 우상숭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출 20:4-5).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 80%가 문제가 있을 때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국회의원 가운데 50%도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마귀에게 소속되어 그가 영적인 아버지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앉은뱅이는 여기에서 먼저 벗어나야 했습니다. 신분의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주목하여 보라 했을 때 저들에게 은과 금을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가 기대하는 은과 금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이 엄청난 이름의 권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할 수 있는 선지자의 이름 예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사장의 이름 예수, 온갖 죄와 저주와 불행을 가져다주는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이름 예수,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주었을 때 그가 일어났습니다. 육신이 치료되었습니다. 마음에 기쁨을 얻었습니다. 성전에 뛰어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눈에 보이는 육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영의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육신의 봉사, 물질의 구제는 영의 구원 이후의 문제입니다.
오늘 구원받은 우리도 자꾸 문제를 눈에 보이는 문제로, 현실의 문제로만 보면 영적인 앉은뱅이입니다. 정시기도, 무시기도를 베드로와 요한이 할 때 하나님은 앉은뱅이 손에 있는 5,000명을 보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4:4에 보면 이 일로 인하여 5000명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5,000명의 영혼을 건지기 위해 앉은뱅이를 수십 년간 미문에 앉혀 두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위해 기도할 때 그를 거기 두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미문 곁에 앉은 앉은뱅이를 모든 유대인들이 알고 있습니다. 15개국 사람들이 그 앉은뱅이를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전도와 선교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그를 고친 이야기가 전세계에 전파되었습니다.
우리 곁에, 주변에, 이웃 가운데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앉혀두신 앉은뱅이가 있습니다. 찾아가서 은과 금을 주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십시오. 그래야 구원받습니다. 그가 구원을 받아 일어설 때 그 주변에 5,000명이 그를 보고 구원을 받습니다. 살펴보십시오. 찾아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십시오.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5,000명 구원을 위해 앉혀둔 앉은뱅이를 더 이상은 방치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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