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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락방은 알고 누리고 전하는 것입니다2 (마 28:16-20)

첨부 1


사람이 태어나자 마자 선천적으로 취득하는 신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인에 의사에 관계없이 얻게 됩니다. 국적이 그렇고, 호적이 그렇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국적을 선택하여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를 선택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하여 어떤 나라에 누구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신분과 소속을 갖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한 신분과 소속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과는 무관한 자로 태어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까지 불신자는 어쩔 수 없이 여섯 가지 신분과 운명 속에 살아갑니다.
①마귀의 자녀(요 8:44)
②마귀의 종(엡 2:2)
③정신적인 문제(엡 2:3, 마 11:28)
④육신의 고난(행 8:4-8)
⑤내세문제(눅 16:19-31)
⑥후손의 문제(출 20:4-5)
자기 힘으로 이와 같은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 그리스도의 직분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이와 같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신분이 바뀌고 그 신분에 따른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①양자권(요 1:12, 요 5:24)
②성령동행권(요 14:16-27)
③기도응답권(요 16:24)
④천사동원권(히 1:14)
⑤사단결박권(마 12:23-25)
⑥천국시민권(빌 3:20)
⑦세계정복권(마 28:16-20)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고 그 신분에 따른 여러 가지 권세를 소유하게 됩니다. 예수만 믿으면 누구나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으면 모두가 자녀 신분에 따른 권세를 소유하게 됩니다. 권세라고 하는 것은 손에 잡히는 어떤 물건이 아니라 권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권리는 행사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악하고 죄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귀를 꺾을 권세를 우리 안에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다한 사람들이 이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면 신분만 가지고 있는 것이요, 삶의 내용은 불신자와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장로님이 저에게 양복 한 벌을 사 주셨습니다. 너무 좋은 것이라서 제가 입기에 어색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아껴두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말을 합니다. “빨리 입어요. 아끼다 보면 죽을 때까지 못 입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옷이라는 것은 입으라고 있는 것인데 그리고 장로님이 사주셨으니까 입을 권리는 나에게 있는 것인데 안 입으면 옷 없는 사람과 똑같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권세가 그렇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일곱 가지 축복이 있는데 사용하지 않으면 무력하게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자녀의 신분에 따른 권세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다락방이 무엇입니까 다락방은 첫째는 이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불신자의 상태 여섯 가지와 신자의 축복 일곱 가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이 권세들을 누리는 것입니다. 셋째는 권세의 축복을 누린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숫자는 심히 많습니다. 그러나 신자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신자에게 누림이 없으면 무력합니다. 삶에 기쁨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까 오늘은 신분에 따른 권세를 어떻게 누릴까 하는 부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삭이 블레셋이 살고 있는 그랄 땅에 가서 농사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흉년이 들었는데 이삭은 그 해에 백 배를 얻었습니다(창 26:12). 이삭의 이 권세와 축복을 어떻게 우리가 누릴 수 있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응답을 받습니다. 기도응답을 받아 축복받은 자가 되어야 복음이 잘 증거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구원받은 자의 축복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 줍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성도를 축복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기도응답이 뒤따라야 자신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 하고 계신 하나님을 남이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곱 가지 축복을 누리는 삶은 성도들에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의 생활에, 삶에, 인생에 끌어들이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성도는 기도를 통해 일곱 가지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에서 풀어 해방하실 때에도 기도할 때 그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겔 36:37)
아합의 범죄로 인하여 삼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던 이스라엘 땅에 비를 주실 것을 엘리야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도 갈멜산에 올라가 일곱 번이나 기도할 때 응답되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왕상 18:41-44)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주님이 다 아십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도 기도할 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7-11)
그러면 하나님이 꼭 기도해야 그것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할 때만 응답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하나님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일의 전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악하여 분명히 하나님이 하신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이루어졌다고 말을 합니다. 천지와 우주만물을 만드신 분이 분명히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떻게 말합니까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저절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홍해 바다를 가르고 육지같이 건넜는데 세상은 갈대밭을 건넌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분명히 나일강이 변하여 피가 되었는데 시내산이 석양을 받아 피빛으로 반사되었을 뿐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합니다. 하나님 존재도 부정합니다. 이와 같은 세상에 하나님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두루 퍼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가까운 곳에 전파되는 것이 전도입니다. 멀리 전파되는 것이 선교입니다.
출애굽할 때 하나님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퍼부으셨습니다. 처음에 애굽의 장자를 치셨으면 간단하게 끝났을 일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사 내보내지 않게도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만방에 알리기 위함입니다. 애굽의 모든 신들을 멸하고 하나님이 승리하신 것을 온 세계가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첫번에 끝나버리면 사람들은 우연이었다고 고집부립니다. 그러나 열 번에 걸쳐 재앙을 반복하고 그때마다 하나님께 구하여 그 문제가 해결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 이름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우연으로 몰아 붙이려 해도 그럴 수 없어집니다. 첫 번째 재앙을 경험한 사람도 있지만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더 많았습니다. 재앙의 소문을 들은 사람도 있지만 못 들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보고, 모두가 듣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유월절 사건과 홍해 바다를 육지처럼 건넌 일을 40년이 지나서 여리고에 살고 있는 기생 라합도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듣고 알고 믿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기도는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원하는 바 소원이 이루어지면 우연인지 다른 신이 도와주었는지 스스로 혼미해집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았을 때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기도할 때 응답 받으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이 도우신 것입니다. 기도하여 응답 받으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을 높입니다. 그분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2.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도적은 주인의 의사를 전혀 무시합니다. 오라 초청하지 않아도 옵니다. 시간도 밤낮을 가리지 않습니다.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비정상적인 방법을 택합니다. 마귀가 바로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마귀 사탄을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법적으로 찾아와 사람들을 장악해 버립니다. 온갖 죄와 저주를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그분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래서 최대한 우리를 존중하십니다. 하나님은 강제적으로 우리를 꺾을 수 없는 무력한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문을 밖에서 두드리십니다. 강제적으로 열어 제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오셔서 자녀 삼아주시고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여러분 중에 결혼할 연령에 있는 분이 계시니까 이렇게 비유하면 이해가 쉬우리라 생각합니다. 과년한 딸을 둔 아버지가 좋은 사윗감을 구하여 딸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남이 보아도, 아버지가 보아도 좋은 사람입니다. 딸이 같이 살다보니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딸의 의사를 묻지 일방적으로 결혼을 시킨 것은 딸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조금 부족한 사람이라도 딸에게 묻고 동의를 구하여 결혼을 시키는 아버지는 딸을 존중하는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할 때만 응답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은 우리를 존중하시기 때문이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은 아닙니다.

3.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어릴 때 아이는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합니다. 밥도 부모가 먹여줘야 먹습니다. 잠을 잘 때도 부모가 옆에 있어줘야 잡니다. 어디를 갈 때도 동행해 줘야 합니다. 모든 매사를 다 부모에게 의존합니다. 그럴 때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면 어떻습니까 독립심이 생기고 교만해집니다. 부모 없이도 다 잘할 수 있을 것같이 생각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인들도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굳게 붙들다가도 형편이 나아지면 교만이 찾아옵니다. 언제나 이것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여리고 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한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힘으로 이긴 것인 양 아이성 전투에는 교만해져서 삼천 명만 데리고 갔다가 대패하고 물러났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을 자신의 힘으로 이룬 양 교만해져서 백성의 수를 계수 했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어려울 때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던 그가 왕이 되어서는 궁궐에 누워 뒹굴다가 저녁 무렵에 일어나 밧세바를 보고 간음하게 되었습니다. 충신 우리야도 죽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왔을 때 그는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는 왕의 권좌에서 밀려나도 좋으나 주의 성신만을 내게서 거두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
신앙인은 기도하지 않을 때는 실패합니다. 전도하러 나갈 때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를 제어할 능력을 받았던 제자들이 미친 어린 아이 하나를 놓고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나중에 주님이 오셔서 고치셨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능히 고치지 못하였습니까” 주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막 9:29)
기도해야 도우시고 기도할 때만 능력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교만을 꺾고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어려움 가운데 두시는 것은 겸손하게 낮추사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떠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으면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떠나면 껍데기요, 주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신분입니다. 기도할 때 능력을 얻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다락방은 알고 누리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자신들이 여섯 가지 처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빠져 나오는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신자는 어떻습니까 일곱 가지 축복을 몰라 불신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분명히 구원 얻은 자요, 권세를 소유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면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으로 그쳐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압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사회에서 활용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지식도 생활로 삶으로 할용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일곱 가지 권세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응답하십니다. 기도할 때 권세가 하늘로부터 임하게 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 5:13-18)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선지자로 하나님 떠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길이 되십니다. 그는 제사장입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에게 소속되어 있는 인간을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해방하신 왕이 되십니다.
인생의 근본 문제,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께서 기도하라 말씀하십니다. 고난 속에, 고통 속에, 가난 속에, 질병 속에 신음하지만 말고 일곱 가지 권세를 알고 있는 너희는 그것을 기도하여 누리라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기적의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 응답 주시고자 모든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기도하기를 기다리십니다.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고 씨름하던 야곱처럼 하나님께 매달립시다. 기도합시다. 응답 받읍시다. 축복 받으시길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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