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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을 안고 가는 나그네 인생 (창 50:22-26)

첨부 1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바른 효도를 하고 바른 감사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정으로 부모님을 위하는 길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지나갑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부모님도 오늘 다시 보면 주름이 깊게 패이고 많이 늙으셨습니다. 앞으로 사실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칠 팔십 년 사는 인생 중에 벌써 황혼을 맞이해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분들에게 참된 효도는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 육신적으로 건강하도록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궁핍하지 않도록 용돈도 넉넉하게 드려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런 육신적인 효도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차원을 넘어선 영원한 효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에게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이치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인생이 육신이 죽는 것으로 끝이라면 육신적인 효도만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와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을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인생을 바른 믿음을 가지고 바른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시도록 안내해 드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우리들이 최우선으로 해드려야 할 효도입니다.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가지느냐에 따라 인생이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종교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신앙을 가졌느냐에 따라 말하고 생각하는 것, 살아가는 모든 모습들이 달라집니다.
충북대학교 총장을 지냈던 정범모 박사가 쓴 「종교인과 교육」이라는 책에서 보면 종교가 가져다주는 영향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① 회교 국가-현재 지향적입니다.
② 유교 국가-과거 지향적입니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요순시대를 찾습니다. 한국인들도 지금도 족보를 뒤척이며 조상을 자랑합니다. 죽은 조상의 묘역을 호화롭게 꾸미고 그것이 효도인양 착각합니다.
③ 기독교 국가-미래 지향적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삶을 개척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 들어가는 나라마다 위대한 변화를 가져온 것을 역사를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과거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 현재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 이 셋 중에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까 과거가 아무리 좋았어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거의 꿈이 아름답고 소중했던 만큼 그에 비해 오늘은 더욱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현재를 바라보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눈에 보이는 대로 반응하고 판단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평생 동안 좋은 일이라는 게 얼마나 됩니까 행복이 없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살 것처럼 집착하며 사는 인생은 참으로 불쌍합니다.
①괴테:나는 일생 중에 즐겁다고 생각한 시간은 불과 4주일에 불과했다.
②시세로(로마의 웅변가):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고 그 다음 행복은 하루 속히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다.
③바이론:나는 일생 중에서 즐겁다고 생각한 시간은 오직 하루뿐이었다.
④솔로몬: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것이 현실만 바라보았을 때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현실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의 행복은 불과 며칠이요, 아예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꿈은 미래를 향하는 것입니다. 과거가 불행했었어도 미래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오늘 어떤 고난과 시련이 자기 앞에 있어도 꿈이 있는 사람은 미래의 소망을 인하여 그 어려움을 이겨냅니다. 성도의 꿈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겠지’ 하는 막연한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로부터의 꿈입니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꿈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행 2:17-18)
성령이 임하면 젊은이가 환상을 봅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노인이 성령을 받으면 꿈을 꿉니다. 노인이 어떤 존재입니까 꿈이 없는 존재입니다. 노인은 도대체 이 세상에서는 꿈을 가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노인은 육신적으로 힘이 없습니다. 시간이 가면 그나마 있던 기력도 더욱 쇠잔해져 갑니다. 일할 힘이 없으니 경제적 능력도 없습니다. 과거에 가졌던 꿈들을 시간이 가면서 하나 둘씩 포기해야 되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꿈을 새롭게 얻는 방법이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간절해지고 확실해지는 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바로 영원한 본향, 아버지 집에 대한 소망,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꿈을 가진 노인은 꿈이 없는 젊은이 보다 힘있습니다. 능력 있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 우리가 부모님들에게 갖게 해드려야 할 꿈은 과연 무엇입니까

1.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해드려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한번은 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실 믿는 성도들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육신적인 죽음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변화의 한 과정입니다. 성도들에게 죽음 이후에 영원히 행복한 처소가 준비되어 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간절히 묻히기를 소망했던 땅이 있었습니다. 소망했을 뿐만 아니라 꼭 그들이 묻혔던 땅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나안의 막벨라굴입니다. 막벨라 굴은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가 죽은 뒤에 헷 사람에게 거저 얻을 수도 있는데 비싸게 값을 주고 산 땅입니다. 그곳에 아브라함 자신도 묻혔습니다.
그곳에 이삭과 리브가도 묻혔습니다. 야곱의 아내 레아도 그곳에 묻혔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죽으면서 나를 막벨라 굴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그 아버지의 명령을 받들어 막벨라 굴에 장사하고 되돌아왔습니다((창 49:29-31, 창 50:12-14).
그 아들 요셉도 애굽에서 죽으면서 유언하기를 “이 땅은 너희가 영원히 살 땅이 아니다. 너희가 이 땅을 나갈 때에 반드시 나의 해골을 가지고 나가 나를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 유언을 합니다(창 50:24-25).
400년 간의 종살이를 마치고 나아갈 때에 모세는 요셉의 시신을 가지고 애굽을 떠났습니다(출 13:19).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왜 그토록 가나안 땅의 막벨라 굴에 묻히기를 소망했을까요
영원한 소망의 처소 천국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나그네 인생으로 깨닫고 고백할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나그네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고통이나 기쁨에 크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게 되는 영원한 처소를 소망할 뿐입니다. 지상의 가나안은 영원한 천국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그토록 가나안의 막벨라 굴에 묻히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5-16)
나그네는 어렵게 힘들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그들에게 돌아갈 처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영원한 고향의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잃어버린 낙원, 에덴동산에 대한 향수입니다. 또 하나는 천국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만큼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했던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뒤로 돌이킬 수 없는 이상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과거로 복귀하는 고향이 아니라 앞에 닥쳐올 고향을 환상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드릴 수 있는 최상의 효도는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날마다의 삶을 살아가실 수 있도록 인도해 드리는 일입니다.

2.천국에 갈 때까지 해야할 일을 깨닫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 그가 산 인생의 행적이 남습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무슨 일을 하고 살 것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일하기를 싫어하지만 사실은 할일 없는 사람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일하기를 싫어하는데 노인들은 일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노인들끼리 모여 온종일 고스톱이나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인생의 비애를 느낍니다. 할 수 있는 일들이 그 일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사람에게는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할 것인가는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동문 모임이 있어 저의 설교집을 서울에 100여 권 보냈습니다. 그 설교집을 본 후배 전도사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을 했었는데 그때 조금 안면이 있던 전도사님입니다. 그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학생 신분으로 되돌아가신다면 다시 학생운동을 하시겠습까” 그때 저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절대 안하겠다. 잘못된 사회를 개혁하고 구조를 바로잡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 일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인간의 근본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군부독재 물러가라고 해서 물러갔는데, 문민정부가 들어섰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교회의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도 조금도 근본문제에 있어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의 환경이 아무 좋은 여건으로 바뀐다고 해도 근본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창 3:1-6). 하나님을 떠나니 죄에 빠졌습니다(롬 3:23). 죄에 빠진 인간은 사단에게 소속되고 말았습니다(요 8:44).
환경도 바뀌어야 합니다. 여건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 이전에 근본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죄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사단의 권세를 꺾고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만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선지자, 제사장, 왕. 곧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필요합니다. 육신적인 것으로는 영원한 천국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것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나름대로 다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일 죽어도 오늘 포기할 수 없는 일,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내가 계속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라야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결국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일을 할 것인가 하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우리 부모님이 하나님을 위하여, 천국에서 상급 받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해드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부모님에게 남은 짧은 여생, 주님을 위하여 살도록 가치관을 바로 잡아야 드려야 합니다.

3.멋있는 유언을 남길 수 있는 분이 되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옵니다. 그때에 우리는 남길 말이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부모님이 좋은 유언을 남길 수 있도록 아름다운 믿음의 길로 그분들을 인도해 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유언은 나를 막벨라 굴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거기에 묻히는 것처럼 너희도 그곳에 묻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그네 인생을 살고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처럼 너희도 하나님을 위하여 살다가 그곳에서 만나자는 말입니다. 결국 그들은 후손에게 믿음을 물려주었습니다.
유언은 누구에게나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자기 인생을 총 결산을 내리는 말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죽으며 자식에게 너는 절대 담배 피우지 말아라 했습니다. 담배를 즐기다가 폐암으로 죽는 아버지의 유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너는 죽어도 술 마시는 남자에게는 시집가지 말아라”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남편 때문에 평생 고생한 어머니의 유언이었습니다.
이런 유언들은 얼마나 한이 서린 유언입니까 서글픈 유언입니까 실패한 인생을 토로하는 말입니다. 결코 우리의 부모님이 이런 유언을 남기도록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진들의 위대한 유언을 생각해 봅시다.
①여호수아의 유언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②사무엘의 유언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삼상 12:23-24)
③다윗의 유언입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왕상 2:2-4)
④바울의 유언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분명히 그날 그 시간은 옵니다. 우리가 천국길을 가지만 우리만 홀로 가는 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웃들과 함께 가야하고 모두가 가야할 길입니다. 그 중에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님이 빠져서는 안되겠습니다. 함께 갑시다.
부모님들이 우리가 육신적으로 어렸을 때 모든 일에 도움과 인도자가 되어 주셨듯이 영적으로 유약하고 어린 그분들을 천국으로 가는 길의 안내자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400년이 지나야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 요셉은 “너희가 이 땅을 떠날 때에 나의 해골을 가지고 떠나라” 유언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강력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었고, 후손에게 오직 믿음만을 물려주기를 바랬습니다. 이것이 우리 부모님들의 소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신앙과 믿음으로 부모님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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