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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감사하라 (사 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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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참된 신앙인은 언제나 감사합니다. 어디서나 감사합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감사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생일을 안 지킨다고 해서 그날 내가 안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생일을 지키며 다함께 그날을 축하하는 것은 내가 세상에 사는 존재의미를 확인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고 삶을 새롭게 출발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일년 365일, 우리에게 생명이 붙어있는 한 늘 감사해야 하지만 감사절은 감사의 이유와 내용을 새롭게 확인해 보는데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감사해야 할까요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감사의 귀감이 됩니다.
구약의 하박국은 이스라엘이 전쟁으로 황폐하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민병대원이 되었습니다. 온종일 망대와 산성에 앉아서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군의 내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국이 전란에 짓밟히고, 곡식은 돌보지 못해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무화과나무와 포도밭의 추수가 망가지고, 가축들은 굶어죽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마음에는 원망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자기 백성에게 이런 일이 생기도록 하시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일까 하고 깊은 회의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께 거칠게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가 나를 떠나 우상숭배하고 범죄함으로 고난과 고통을 당한다. 내가 너희를 징계함은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아 돌이키라” 하나님의 답변을 듣고 난 하박국은 드디어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
19)”
하박국은 환경을 초월하여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감사의 분명한 이유와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예수님이 선지자 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자기 의지로 떠났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 몰래 집을 나가는 것은 자유입니다. 뒤에서 엄마가 ‘누구야!’하고 부르며 좇아올 것 같아 더욱 재빨리 도망쳤습니다. 그렇게 떠나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뒤를 돌아다보니 자기가 어느 길로 어떻게 떠나왔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아이는 춥고 배고프고 무서웠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툭툭 건드리기도 했고,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부모를 떠나버린 아이는 나쁜 사람들에게 잡혀서 불의한 일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 나쁜 사람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대구 성서국민학교 어린이 여섯 명이 개구리를 잡는다고 집을 나가서 수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집으로 돌아가 엄마 아빠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을 붙잡고 있는 악한 자들의 손에서 빠져 나올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에게는 죄와 저주와 불행이 끝없이 닥쳐왔습니다. 그 불행 속에 허덕이다가 마귀와 함께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지만 돌아갈 능력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엄마를 찾아 집으로 돌아올 능력이 없습니다. 누가 찾아야 합니까 엄마가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을 누가 찾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돌아오는 길을 마련하셔야 합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온갖 불행에 빠져 절망 가운데 있는 인간에게 예수님이 선지자가 되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그는 요한복음 1장에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6에 하나님의 본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 선지자 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쉽게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다고 말을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가 자신을 낮추심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감격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철저히 낮아지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한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되셨다는 것은 얼마나 큰 사랑인지요,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심은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지요.
예수님이 얼마만큼 낮아지셨는지 아십니까 출생부터 예수님은 낮은 자로 오셨습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난한 목수로 30년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여기저기서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성화를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모델로 해서 그린 그림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상상해서 그린 그림들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미남입니까 아니면 평범하거나 못난 얼굴입니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대부분이 잘 생긴 얼굴에 건장한 청년으로 예수님을 연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까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사 53:2). 이 말씀만 보아도 예수님의 용모는 우리의 생각과는 많이 빗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풍채도, 용모도 없었습니다. 온갖 고생에 찌들고 질고를 겪은 얼굴이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 말씀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 하느냐며 책망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30초반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한 질고를 인하여 50의 중년처럼 겉늙어 보였다는 말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러 오실 때 그렇게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오셨을까요.
①가난한 자부터 부유한 자에 이르기까지 다 구원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로 오셨 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궁중에서 왕의 아들로 태어나셨더라면 가난한 천민들은 그를 가까이할 생각을 아예 품지 못했을 것입니다.
②못난 자부터 잘난 사람까지 다 구원하기 위하여 못난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 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셨으므로 분명히 뛰어난 외적용모를 가지고 태어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예수님은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혀 그런 모습은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가문과 뛰어난 외적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셨다면 못나고 부족한 사람들은 그를 가까이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못나고 연약한 자로 오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지극히 못나고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까지 다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에서, 저주에서, 사망에서 나를 건지신 예수님이 겉으로 보기에도 빼어나게 훌륭한 분이었으면 하고 기대했는데 실제로 우리가 그 모습을 뵙는다면 아마 대부분이 실망할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비천하게 오심도, 사심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천하디 천한 사람처럼 낮아지신 것은 지극히 부족한 저와 여러분 같은 사람들까지라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낮고 천한 모습으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시고자 선지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번 감사절에는 가장 먼저 길 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 되어주신 사실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예수님이 제사장 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가 전혀 없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죄를 용서하시는 일입니다. 죄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다양합니다.
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질이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죄를 적당히 무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적당히 나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죄를 아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죄를 전혀 용납하지 않는 분은 죄가 전혀 없는 공의로운 분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삯을 사망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은 죄는 사망으로밖에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가 전혀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그 죄 때문에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그 인간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셔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죄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하나님이 용납하실 수 없고, 죄를 가지고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이 안 계신 곳입니다. 지옥은 죄 지은 자들이 가는 곳이요, 하나님은 죄가 없으심으로 지옥에는 안 계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 없다고 했으므로 하나님이 없는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모든 사람은 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모두 담당하셨습니다. 분명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하셨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습니다(사 53:5).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모두 담당하셨습니다.
분명히 그가 찔리고 상한 것은 우리 때문이었습니다. 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4)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그만큼 무지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①육체적인 고난-그는 채찍에 맞았고, 십자가에서 못 박혔습니다.
②인간적인 고난-예수님은 인간적인 많은 모멸을 경험하셨습니다. 침뱉음을 당 하셨습니다. 제자에게 팔리우고 부인 당하셨습니다.
③영적인 고난-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그 모든 고난과 고통의 이유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십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해결하신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제물에 대하여는 가차없이 칼을 들이댑니다. 창 3:15의 언약대로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창 3:21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고난 당하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죄용서 받을 길이 없었는데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죽게 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잘못을 그냥 덮어버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죄를 죄로 날카롭게 지적하시고 그 죄를 한없는 사랑으로 용서하는 길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감사절을 맞이해 두 번째로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3.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우리의 왕은 마귀였습니다. 우리의 아비가 마귀였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최고권세인 사망을 꺾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마귀는 고난과 고통으로, 사망권세로 인간을 억압하며 통치하는 왕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로 붙드시고 사랑으로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그분에게 전적으로 삶의 위탁하고 살아갈 때 인간에게는 참만족과 안식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에게만 참평안이 있고, 그에게만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왕으로 모시고 그의 통치를 깊게 받을수록 인간은 행복한 것입니다. 이렇게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여권이 신장되어 여성상위 시대를 주장하지만 성경은 결코 이것을 옳은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남편을 손 안에 쥐고 사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 여성이 겉으로는 대견해 보이고, 당당해 보일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불행한 여자입니다. 자신이 드러나고 뛰어난 만큼 남편은 못나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수록 그 못난 남편에게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사는 자신이 불행한 것입니다.
여성은 남편에게 순종하며 남편의 보호와 사랑 가운데 사랑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에베소서에 나타난 가정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남편들이여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 위하여 자기 몸을 주심같이 하라”
아내는 남편이 사랑으로 자기를 다스려 줄 때 행복합니다. 스스로 잘났다 여기는 여자일수록 개인적으로는 불행합니다. 신앙의 원리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잘나서 교만할수록 불행합니다. 그 교만 때문에 안하무인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합니다. 그럴수록 불행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자기 인생에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불행에 빠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야 안심하고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분이 왕으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사단의 사망 권세를 꺾으시고 승리하신 그분,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생명으로 부활하사 우리의 왕이 되신 그분에게 우리의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그분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만큼 인간은 행복합니다. 그분이 왕으로 나에게 오신 것을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 감사와 불평은 사람들의 습관입니다. 감사절은 우리가 받은 바 은혜에 대하여 자각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하나도 주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에 대한 반응은 다 다릅니다.
결국 감사는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받느냐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얼마나 감사하게 느끼고 있느냐에 비례합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태도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은혜를 입을수록 은혜를 원수로 갚습니다. 받은 건강의 축복이나 물질적 축복 때문에 타락하거나 교만해진다면 이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입니다.
②은혜를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은혜를 원수로 갚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은혜를 받을 때마다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받으려고만 하는데 있습니다. 거지의 동냥자루와 같이 언제나 더 많이 바랄 뿐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잘사는 친척에 기대어 살면서 더 많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받기만 하는 존재로 하나님은 당연히 주셔야 할 존재로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③모든 환경을 은혜로 생각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은혜를 받으면 잊지 않고 감사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그 고난을 통해 은혜주실 것을 믿으며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어디서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얼마나 감사하셨습니까 얼마나 감사하고 계십니까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하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 선지자가 되셨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 앞에 도저히 설 수 없는 우리를 위하여 주께서 친히 제물이 되셔서 희생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사단의 모든 권세를 철폐하시고 사랑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며 통치하시는 왕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그 놀라운 이름 앞에 날마다 넘치는 감사의 제사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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