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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로 미래로 세계로1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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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한번하고 두번 못할 일이 여러 가지 있겠으나 그 중에 한 가지가 이름을 고치는 일인 것 같습니다. 팔복교회, 정들었던 이름을 뒤로하고 우리는 새로운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세계로 교회,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롭게 주신 교회 이름입니다.
이름이 바뀐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뀐 인생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름을 바꾼 몇 사람이 나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바뀌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시몬이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핍박자 사울이 변하여 전도자 바울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름과 그의 생애와는 분리할 수 없는 필연적인 관계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그 이름대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 이름이 그들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세계로 교회라는 이름이 우리 앞에 주어질 때 그 이름대로 살아야할 사명이 동시에 부여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교회 이름을 바꾸면서 예수 생명운동, 예수 능력운동 하는 교회로서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도하면서 세 가지를 정했습니다. 「하나로, 미래로, 세계로」어떤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K.B.S 교회냐며 웃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씀의 의미를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K.B.S 방송국 목표가 「하나로, 미래로, 세계로」였습니다.
앞으로 3주간 바뀐 교회의 이름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고 목표와 방향을 바로하기 위하여 「하나로 미래로 세계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으시고 이와 같은 목표를 가슴에 품고 성도와 교회된 책임을 감당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가 과연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뭐라고 대답합니까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 더러는 세례요한과 같은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답답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베드로가 신중하게 침묵을 깨고 말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이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교회 이름을 바꾸면서 우리 교회의 첫 번째 신앙목표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까 베드로가 했던 이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가 엘리야나 예레미야,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 중의 한사람쯤으로 알고 따르는 것이라면 아무리 잘 믿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고백으로 구원받습니다. 그 고백을 가지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로 뻗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 고백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 합니다. 다른 신을 하나님으로 알면 큰일납니다. 그게 종교요,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을 엉뚱한 분으로 알면 큰일납니다. 그게 바로 불신앙입니다. 모세, 엘리야, 예레미야,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선지자들이 말씀한 장본인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때 구원 얻습니다. 신앙에 확신이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세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른 바 근본문제입니다. 영적인 문제입니다.
①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명령을 어김으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②로마서 3:23,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③요한복음 8:44, 사단에게 소속되었습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 세 가지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이 세 가지 근본문제의 해결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근본문제를 밝혀주는 책이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책입니다. 성경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는데 그 성경은 바로 내게 대하여 증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도 신약성경도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를 기록했습니다. 신약은 오신 메시야, 다시 오실 메시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했습니다. 빌립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리스도를 내가 만났는데 그가 바로 나사렛 예수라고 말했습니다(요 1:45). 수가성 여인은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 소리쳤습니다. 예수는 구원자입니다. 그 이름 자체가 구원입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그가 인간을 세 가지 근본문제에서 구원할 구원자,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스스로를 가리켜 구원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400년 간의 긴 침묵을 깨고 광야에서 요한이 회개를 외칠 때에 사람들이 와서 “네가 그리스도냐” 물었습니다.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선지자도 아니다. 다만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라고 말했습니다(요 1:20-23).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그리스도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구원 얻을 다른 구원자, 다른 그리스도는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입니다.

2.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 부활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전유물입니다. 예수, 그가 누굽니까 사도행전 1장 1절로 11절에는 예수님에 대한 네 가지 정의가 나옵니다.
①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②예수는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③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④보좌에 앉으사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은 재림주로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숨과 생명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목숨은 일정기간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따먹는 순간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면 범죄 이전과 범죄 이후에 인간이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은 잃고 목숨만 부지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생명적 존재에서 사망적 존재로 바뀐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 안에서만 인간은 영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떠나는 순간에 죽음이 찾아오고 사망이 인간 위에 군림하여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1의 말씀처럼 죄와 허물로 죽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생명과 죽음은 시간을 놓고 보면 그 구별이 분명해집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보통 사람은 칠 팔십 년 삽니다. 역사 이래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무두셀라입니다. 그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천년 가까운 인생을 살 수 있느냐고 부러워하지만 성경이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다음에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969년이 긴 시간이지만 영원한 시간에 대비하여 볼 때 그것은 촌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칠 팔십 년 인생은 더욱 그렇습니다.
수십 년 살고 그 다음에 영원히 죽는 것을 가지고 생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망에 매이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삼일간 육체의 죽음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사랑으로 죽으시고 생명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부활하사 지금도 살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삼일이라는 시간은 한 점만도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시작이요 끝입니다.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시간 속에서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생명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예수님은 살아 계신 분입니다. 모든 인간은 한시적 존재이지만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살아 계시는 생명의 주님입니다. 지금 살아 계셔서 여러분 곁에, 여러분 안에 역사 하시며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3.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보통 아버지와 아들 하면 큰 세대간의 차이를 가지고 그 관계를 봅니다. 그러나 히브리적 사고로 볼 때 아버지와 아들은 동격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성자의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30에도 분명하게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못박아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부활의 주님을 향하여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요 20:28).
4복음서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한 것이 187번이나 됩니다. 요한복음에는 117번이나 기록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대로 부르지도 못했는데 이토록 많은 부분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호칭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해 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와 변화산에서였습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마 17:5)
흔들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세 가지 근본문제에 빠진 인간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아들로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확신 있게 말씀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예수님을 아버지 하나님보다 신분이 낮다고 말하는 자들, 나아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들이 이단입니다. 바로 여호와 증인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인데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인간을 구원하고자 종의 형체로,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요일 5:12).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사실을 믿든 안 믿는 진리는 진리로써 존재합니다. 구원 얻은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믿습니다. 또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의 태도를 성경은 어떻게 말씀합니까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주님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①깨닫지 못했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②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 1:10)
③영접지 않았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 신, 마귀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4).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주시고,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입술을 통해, 삶을 통해 날마다 흘러 나와야 할 신앙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이 말씀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지만 나아가 성경의 증언이요, 하나님의 증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이 고백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신앙의 고백을 하는 사람보다 강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고백이 없습니다.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새롭게 출발하는 세계로 교회의 첫 번째 목표는 베드로의 이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하나되는 교회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반석이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아닌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고백 위에 세워지지 않는 교회는 주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날마다 입술로 삶으로 이 신앙을 고백하며 든든한 교회로 서가는 세계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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