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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마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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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죄사함을 받은 다음에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사함 받은 다음의 순간이 성도에게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확신하며 죄사함의 감격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다면 사탄은 우리를 다시 묶어 버리고 말것입니다. 다시 죄의 종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시험이란 시시각각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므로 죄사함을 받은 후에는 시험에 들지말게 해달라는 기도가 없다면 우리는 곧장 전날에 범했던 죄 속에 떨어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자에게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신 다음에 ‘다시 범죄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침 병고침을 받은 사람이 다시 병들지 않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처럼 참으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는 열망이 넘쳐야 합니다. 병고침을 받은 사람이 다시는 재발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방심이며 불행을 차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릇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죄사함을 받은 성도는 끊임없이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이 시험과 대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시 죄를 범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으로부터 우리의 영혼과 삶을 보존하기 위해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도록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이 받는 시험
시험이 오는 때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시험받으실 때가 있었습니다. 마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 때는 언제입니까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인정받는 순간입니다.
마귀의 시험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문제는 학교에 다니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시험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시험이 없습니다. 마귀는 유혹으로 시험을 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으로 시험을 치르게 하십니다.
마귀의 시험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증해 주는 기회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확증시켜 준것처럼 우리를 시험할 때 우리는 그 시험을 잘 통과하여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증하여야 합니다.
마귀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을 시험하지 않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시험이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마귀의 노예이기 때문에 마귀가 시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데도 시험을 당했습니다. 시험은 죄가 없어서 오는 것도 아니요 죄가 많아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약해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마귀는 성도에게 무조건 시험하려고 달려옵니다. 항상 마귀가 우리가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험에 들지 않게 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2. 시험의 종류
① 테스트(Test)
교육적인 의미의 시련으로 테스트 혹은 훈련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 시험의 목적은 우리의 파괴와 몰락이 아니라 우리의 성숙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험을 잘 극복하면 놀라운 유익과 축복이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이 시험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학생들에게 시험을 보게하는 것과 흡사한 것입니다. 어느 선생님도 학생을 골탕먹일 목적으로 시험을 내지 않으며 오직 학생들이 스스로 자기를 평가하여 보다 높은 수준에 다다르게 하는 것입니다.
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주께서 시련의 의미로서의 시험을 주시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기 위하여 시험을 받는다면 “시험을 받지 않기 위하여 내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것이 낳겠다.”고 말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학생이 어려운 시험문제를 풀기 싫어서 낙제를 거듭하여 국민학교 1학년에 머룰겠다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또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국민학교 1학년에게는 “미적분”이라는 어려운 시험문제를 내지 않습니다. 그 연령과 처한 상황에 가장 적합한 시험이 주어질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 시험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여 보다 높은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야 합니다.
스펄존 목사는 “성도들의 생활이 항상 풍족하고 또 막히는데가 없이 고난 없는 생활만 한다면 하나님의 참된 은혜와 위안을 절반도 모르고 사는 생활이 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성공의 복만 넘치면 신앙생활 잘할 까 못할까 못한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지도 않는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신 13: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아브라함의 예)
예로서 아브라함의 시험을 들 수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이미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어느날 하나님께서 “네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나에게 번제로 받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리를 떠난 지 얼마 안되어서 이런 시험을 받았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숙된 후에, 이 시험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주신 후에 시험을 허락하셨으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믿음의 조상”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이다.
날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시험을 이기고 인정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② 유혹(temptation)
이것은 파괴적인 시험입니다.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으로 피해야하는 시험이며, 유혹이라고 부릅니다. 마이어 (F. B. Meyer)라는 설교가는 “하나님은 우리를 오르게 하기 위하여 시험하시지만 사탄은 우리를 내려가게 하기 위하여 시험한다”고 하였습니다. 테스트의 시험은 긍정적이라면 유혹의 시험은 부정적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마귀의 영역이다. 하나님께서는 파괴의 의미로서의 시험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마귀에게는 생산적인 의미의 시험이란 없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라는 기도는 바로 시험에서의 해방과 보호를 의미하는 기도이다. 즉 이 시험이 초래할 수 있는 깊은 타락과 어두운 상황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길 바라는 보호의 기도입니다.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파괴적인 의미에서, 그 사람을 멸망시킬 목적으로 누구에게도 시험을 하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파괴적인 시험은 오직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 것으로 첫사람들은 이 시험에서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깊은 고난속에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파괴적인 시험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3. 시험의 성격
① 언제나(whenever)
시험은 언제나 찾아옵니다. 병이 났을 때만 시험이 옵니까 건강할 때 더 많은 시험이 옵니다. 시험은 실패할 때만 옵니까 성공했을 때 더 많은 시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망했을 때 시험이 옵니까 축복받을 때 더 많은 시험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오히려 병들었을 때, 실패했을 때, 망하였을 때는 축복의 계기가 되고, 건강, 축복, 성공이 더 큰 시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의 부귀는 타락의 온상이었고, 욥의 고난은 축복의 전기였습니다. 언제나 시험이 옵니다. 시험은 중단이 없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공경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오는 시험을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② 누구에게나(whoever)
시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죄인에게만 찾아옵니까 아닙니다. 의인 욥도 시험을 당했습니다. 약한 이에게만 옵니까 아닙니다, 강한 삼손에게도 시험이 왔습니다. 은혜가 떨어질 때만 옵니까 아닙니다. 은혜가 충만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도 시험이 왔습니다. 예수와 멀리 있는 이에게만 옵니까 아닙니다. 예수와 너무나 가까이 있었던 가룟 유다에게도 왔습니다. 기도가 끊어진 사람에게만 옵니까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한 엘리야에게도 시험이 찾아와서 사명을 저버리고 차라리 죽여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이 시험은 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모두가 마귀의 공격대상입니다.
③ 어디서나(wherever)
마귀의 시험은 어디서나 벌어집니다. 광야에서도 마귀가 있었습니다. 성전에서도 마귀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겟세미네 동산에서도 마귀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만만한 때는 없습니다. 자신만만한 곳도 없습니다. 자신만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귀에게 공격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할수만 있으면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들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시험이 들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시험을 이기는 비결
① 기도하라
주님게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첫째 아담에게도 왔고 둘째 아담에게도 왔습니다. 첫째 아담은 마귀에게 졌지만 둘째 아담은 이겼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아담은 기도하지 않았지만 둘째 아담 예수는 기도하였습니다. 마귀는 기도를 제일 무서운 무기로 알고 있습니다. 마귀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더러운 존재입니다. 가장 약한 기도라도 가장 강한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조금만 기도해도 마귀로부터의 많은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오직 기도로 이길 뿐입니다.
베드로의 경우)
예수님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했지만 베드로와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산에서 내려와 그의 용감한 담력으로 스승을 잡으러 온 자를 향하여 칼을 들어 내리쳤습니다. 그렇게 담대하던 베드로가 주님이 잡혀가자 멀찍이 서서 주님을 따릅니다. 그리고 가야바의 뜰에서 모닥불 옆에 살짝 앉았는데, 어떤 소녀가 와서 “당신도 예수와 한패지요”라고 하자, 베드로는 약한 소녀 앞에서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부인한 자리가 어딥니까 십자가 형틀이 아닙니다. 로마 군인이 칼로 위협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무서운 환경이 아니라 하잖은 계집종 앞에서 거꾸러졌습니다. 그토록 대담하게 주님과 함께 옥에도 가고 죽으러도 가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가 왜 그렇게 쉽게 무너졌습니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베드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삼손의 경우)
구약성경에서 삼손은 가장 힘이 쎈 사람으로 무적의 장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자를 맨손으로 찢어버린 사람이 바로 삼손입니다. 이 삼손은 자기 힘만 믿고 살다가 여인의 유혹에 빠져 머리가 깎여 힘을 잃고 블레셋 군사들에게 잡혀 눈알이 빠지고, 멧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삼손의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장 비참한 신세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사기 16:28-30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기도없는 장사보다 기도하는 약한 자가 더 큰 능력을 나타냄을 깨닫게 됩니다. 삼손이 기도없이 한 일보다 기도로 한 최후의 일이 더 큰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때는 이미 사탄의 시험을 이긴 뒤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이 올 것을 이미 알았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이 기도에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기도 속에는 모두가 들어있습니다, 기도속에 응답이 들어있고, 기도속에 기적이 들어있고, 기도 속에 믿음도 들어있습니다. 기도속에 시험을 이기는 능력도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잃어버리면 모두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기도를 찾으면 모든 것을 찾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② 말씀을 상고하라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 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말씀 속에 시험을 이기는 비결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런, 저런 경우에 대한 해답이 다 나와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받았을 때에 어떻게 했나요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히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기도가 마친 후에 시험을 받으실 때에 말씀을 무기로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예화) 로버트 슐러 목사가 수정교회를 지을 때 실무진들이 모두 사표를 냈습니다. 중단하고 싶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리하여 슐러 목사는 이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승리하였습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십시오. 시험을 이기는 위대한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의 기도는
악한 마귀의 시험에서 이기는 것과 하나님의 시험에서 인정함을 받고자 하는 기도입니다.
시험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옵니다. 교만하지 말고 이 시험을 기도와 말씀으로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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