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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롭고 순결하게 (마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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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내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염려와 걱정이 표현되었습니다. 너희는 곧 갖가지 유혹과 적대적인 세력에 부딪치게 될 것인데 그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그 대처의 방법을 일러 주셨는데,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뱀과 비둘기는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 동물입니다. 저는 뱀이 무서워 숲이 우거진 곳은 들어 가기 싫습니다. 성경에도 뱀은 항상 혐오의 대상으로 나옵니다. 그 간교함, 기민성, 예측할 수 없는 돌발성 때문에 불길한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반면에 비둘기는 순결, 온순, 순종, 평화의 상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러한 느낌과 생각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갈 때 뱀같은 기민성, 신중함, 분별력, 굳건한 의지, 사태를 파악하는 지혜가 필요한 동시에 비둘기같은 순수함과 부드러움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심리학에서도 참으로 성숙한 사람은 남성적인 면(강하고 굳센 의지)과 여성적인 면(부드러운 면과 따뜻한 정)의 상반된 성품이 조화를 이룬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1. 뱀같이 지혜로워라
다른 번역에는 뱀처럼 신중해라. 방심하지 말라. 사태를 바로 파악하라고 했습니다. 거짓 가운데서 진실을 가려 내어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 같다고 하셨지만, 문제는 이리가 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의 탈을 쓰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악과 유혹은 흔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접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거짓은 항상 진실을 가장하고 접근합니다.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혼란한 세계에서는 뱀과 같은 슬기와 분별력, 거짓을 간파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TV, 잡지, 신문은 갖가지 정보와 광고를 홍수처럼 쏟아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쇄된 글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분별력과 지혜가 없으면 그 내용을 무조건 믿게 됩니다. 신문의 보도 내용이 때때로 허위임을 우리는 몇년간의 신문 내용을 비교해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흔히 광고는 상품 선전과 함께 잘못된 생활 방식과 사고 방학을 부추깁니다.
인쇄 매체가 되었든 대자보가 되었든 거짓된 내용, 과장된 내용, 편견, 반쪽의 진리가 완전한 진리인 양, 사실인 양 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듯한 정치 구호, 밑바닥에는 대중을 부추겨 권력을 잡으려는 검은 야욕이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주장, 편견, 반쪽의 진리를 분별해 내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인류 역사상 많은 비극은 편견과 반쪽의 진리를 주장하는 뛰어난 사람들의 거짓과 그 허위를 간파하지 못하고 순진하게 동조한 대중들에 의하여 저질러졌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속 권력층과 국가 지도자들의 음모에 무책임하게 동조한 민중들의 아우성이 합세하여 만들어 냈습니다. 2차대전 때 유대인 학살은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독일의 선전과 많은 독일인들의 동조가 빚어낸 참극입니다. 근거 없는 지방색과 해묵은 편견을 교묘히 이용하는 정치 지도자들과 그들에 의해 놀아난 국민의 추종이 오늘 우리의 불행한 정치 현실을 빚어냅니다.
이처럼 많은 경우 순진하지만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 때문에 역사의 발전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20절에서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지혜에 장성한 사람,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권고했습니다. 대학 교육은 바로 성숙한 사람을 지향합니다. 교육이란 단편적인 지식에 머물게 하거나 편견을 고정시켜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깬 사람을 키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받은 사람은 단순한 선전이나 구호에 생각없이 동조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태를 보았을 때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생각지 않고, 내게 이익이냐 손해가 되느냐를 따라 판단하는 것은 지성인다운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깨어 있는 의식, 거짓을 분별해 내는 지혜를 갖기 위해,1) 폭넓은 독서가 필요합니다. 편식이 육체적인 건강에 해로운 것 이상으로 한 가지 경향의 책만 읽는 것은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영국의 명재상 디즈렐리는 한 권의 책만 읽는 사람은 상대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특정한 책만 읽는 사람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뿐 아니라 편견에 집착하고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많이 읽히는 신간도 읽는 동시에 인류의 지혜가 담겨 있는 고전을 읽어야 합니다.(논어, 불경, 성경)
2)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습니다.(잠 1:7). 참된 거짓을 분별하기 위해서 보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양심을 맑게 하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뜻에 민감해 질 때 우리는 헛된 주장이나 거짓된 유혹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참 지혜는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데 있지 않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2.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우리 학생들은 비둘기 같은 순수함과 부드러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불의와 거짓에 맞서서 칼같은 강인한 의지와 날카로운 분별력을 가지고 대항해야 합니다. 젊은이 특히 대학생에게 정의감이 없다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 나라, 우리 사회가 이만큼의 변화라도 이루어진 것은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진 젊은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는 칼같은 강한 의지와 분별력과 함께 비둘기같은 부드러움과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의를 지적하고 대항할 뿐 아니라 나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바로 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동기를 가지고 이 세상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예수께서 당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 너희가 천기를 분별함을 알면서 시대의 표징을 어찌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한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우리 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물가 상승, 생산성 저하, 노사 문제, 학원 소요, 무역 마찰, 민생 치안, 폭력... 모두 걱정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사회에 삶의 연대성, 사람의 연대성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의 모순, 다른 사람의 불행과 아픔을 함께 느끼고 떠 안으려는 사랑의 연대성이 무너졌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각기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자기가 속한 단체의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힘을 행사하려 듭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과 불행, 공동체의 유익과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습니다. 삶의 연대성 상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아마 우리 사회가 불행해 진다면 부정 부패 때문이거나, 불의를 규탄하는 열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기심과 더러운 탐욕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 죄악, 아픔을 자기의 것으로 느끼고 함께 아파하는 사랑의 연대성을 자각하는 의인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삶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은 단순히 혼자 똑똑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잘못을 규탄하고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살피며, 다른 사람과 함께 협조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함께 아파하며 극복하려고 애쓰는 겸손하고 부드러운 순수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정의에 대한 열정이 강했고 시대를 분별하는 통찰력이 있었지만 고통 당하고 소외당한 사람을 감싸 주고 이해하는 부드러운 믿음을 지니고 사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위선을 책망하시고 장사 속으로 무질서해진 성전을 보시고 불같이 분노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갖고 계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막 10:45)고 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인류의 죄와 불행을 자기 것으로 떠 안으셨습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사람이 되십시오.
`강인한 정의감, 분별력,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 우리 사회의 불행을 치유해 나갑시다!
미국 뉴욕에 가면 라과디아(Laguadia) 공항이 있습니다. 그 공항 이름은 뉴욕의 훌륭한 시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라과디아(Laguadia) 씨가 시장이 되기 전에 이전 판사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가 한번은 가게에서 빵을 훔치다 기소된 노인을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행위는 10달라 벌금형에 해당됩니다." 라고 선고한 다음 자기 지갑에서 10달라를 꺼내 주고 하는 말이 "그 10달라는 내가 내겠습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 거리에 있는데 내가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벌금으로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 중절모를 재판장 서기에게 주면서 "이 재판장에 계신 분들도 나처럼 잘 먹는데 대한 벌금을 내고 싶다면 이 모자에 넣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가난한 노인은 47달러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며 재판장을 나갔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사는 젊은이가 될 때 이제 부를 찬송아 가사처럼 우리는 역사의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 되어 이 땅에 생명탑을 놓아 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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