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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자의 용기 (마 10: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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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인으로서 드러나야 합니다. 한 종교를 가진 종교인으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의 제자로서 분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해서 거부하는 환경에서 그렇게 나타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바알세불이라고 부른 것을 상기시키면서 제자들에게 용기를 가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로부터 들은 말씀을 드러내놓고 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했듯이 나 역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눈치나 반응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겠습니다.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몸과 영혼을 멸망시키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고 있습니까
전도자의 확신 (29-33절)
사람은 눈에 보이고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더 영향을 받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참새의 운명이나 머리카락의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실 뿐 아니라 우리 생활의 자세한 영역에까지 관여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바로 이 진리를 실감하게 될 때 나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고 그들에게 필요한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저 머리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현재 나의 모든 삶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도자의 강한 도전 (34-39절)
복음을 전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은 복음을 받아 들이지 못한 사람과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생기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칼을 주러왔다고 하신 것은 바로 복음으로 인해 일어날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이방인과 유대인이 화목하게 되기를 원하셨으므로 예수님을 믿게 되는 사람은 모든 인간적인 장벽을 초월하여 다른 사람과의 화목을 도모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들과의 갈등은 결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신앙으로 인한 갈등이 하나도 없다면 그 신앙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갈등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나타나야 하므로 주님께서는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어야 한다고까지 하셨습니다. 나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포기할 수 있습니까
전도자의 자부심 (40-42절)
전도를 하다보면 환영을 받는 수도 있지만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스스로 위축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그들을 영접하는 사람은 곧 예수님 자신을 영접하는 것과 같으며 그들을 영접하는 사람은 그들이 받을 상을 함께 받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전도자로서 자부심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나 자신을 보년 하나님 나라의 사신으로 나서기에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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