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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있는 사람1 (시 01:1-6)

첨부 1


신년들어 우리 성도님들이 가장 많이 받은 인사는 역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사를 받았다고 해서 정말로 복이 오는 것도, 만사가 형통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매년 이러한 인사를 받지만 일년 동안 살다 보면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더 많은걸 보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복을 갈구하는데도 복은 오지 않고 화만 올까요
그것은 복을 가지고 줄 수 있는 분에게 복을 구해야지 복을 줄 수 없는 존재에게 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여러분들게 올해는 복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를 자신있게 드립니다.
그 이유는 제가 말씀 드리는 복은 다른 존재가 주는 복이 아니라 바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받으시라는 인사와 함께, 이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시편 1편 말씀을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1996년도는 참으로 복있는 성도가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다보면 자기가 원했던 일이 잘 풀려나가는, 즉, 형통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계획했던 일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불통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형통하는 사람들을 성공한 자 같이 보인다 해서 반드시 그가 성공했다고 볼 수 없으며, 또한 하는 일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공 실패를 판단하는 기간이 1년뿐만이 아니요, 또한 그 기준이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지나간 한해가 형통했다고 해서 이만하면 성공했겠지 라고 자만하거나, 되는 일이 없었다고 지난해는 실패한 한해였어 라고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공했고 실패했는지 본문에 하나님의 평가기준이 나와 있기에 이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성공 실패를 가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살므로 여러분 모두는 성공자로 판정 받아 복있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시편 1 편)은 우리가 다 암송할 만큼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중에는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나 다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만사형통이란 뜻일 겁니다.
만사형통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오늘 이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중 형통을 원하지 않는 분은 한분도 안계실것입니다.
우리는 너나 나나 할것 없이 땅위에서 사는 동안에 모두 형통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 형통의 삶을 누리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형통의 삶에는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전제 조건이 무엇입니까
본문말씀은 그 전제조건으로 버려야 할 것 세가지와, 취(행)해야 할 것 세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먼저 버려야 할 것 세가지가 있습니다. (1절)

첫째, 악인의 길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악인은 하나님앞에서나 사람앞에서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을 말합니다.
꼭 살인 강도짓을 해야 만이 악인이 아닙니다.
성경은 때로 악인을 사자나 개, 혹은 황소나 들짐승으로 비유하곤 했습니다.
악인들은 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성이 없는 짐승의 특징은 본능대로 행하는 것 뿐입니다.
악인들은 바로 이러한 짐승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뛰고 욕구를 채우는 것에 서슴치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사회를 가만히 보십시오.
정말 인간 사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도덕적으로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이 시대의 도덕성이 얼마나 천박해 졌는지 짐승사회와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짐승들의 영토 다툼처럼 깡패들은 구역다툼으로 살인을 밥먹듯 하질 않지 않나, 짐승들의 먹고자하는 본능처럼 돈 몇푼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생매장 시키질 않나,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지 않나, 정부와 놀아나기 위해 아내가 남편을 죽이질 않나, 부모가자식을 팔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유산 몇푼 때문에 형제의 의는 찾아 볼 수없게 되었습니다.
짐승들의 일시적 욕구처럼 악인들의 일순간의 성적 욕구때문에 화성 연쇄살인사건같은 것이 일어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입니다.
작년 한해동안 일어났던 엄청난 사건들중 몇가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만해도 끔찍한 삼풍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가스폭팔사건 이런 것들이 재물에 대한 헛된 욕심이 부른 어처구니 없는 일들입니다.
금방 생각나는 것만 열거해도 이러하거늘 어느 누가 이러한 사회를 인간사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악인들에게는 꾀가 있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교활한 꾀를 부리는 지, 얼마나 자기 죄를 잘 감추고 남에게 덮어 씌우는 지 여러분은 잘 알것 입니다.
말도 능합니다.
행위도 민첩합니다.
사자와 같이 기동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그들이 성공하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만 사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혼란케 하고 창조의 뜻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악인의 꾀를 쫓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그들과 의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동행하거나 함께 일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악인과 타협하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이들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형통의 길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정말로 형통의 길을 소원하신다면 악인의 꾀를 쫓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인은 간사해서 꾀도 많고 말과 행위도 민첩하여 사람들 보기에는 일시적으로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고, 영화를 누리는 사람처럼 보이지만은 6절에 보니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또한 4절에 보니 악인의 길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습니다.
겨는 쭉정이를 말합니다.
알곡이 들어 있지 않는 겨는 허수아비와 같을 뿐입니다.
텅빈것이요, 무가치한 무용지물 입니다.
또한 겨는 생명이 없습니다.
따라서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5절 말씀처럼 심판의 날 불속에 던지움을 받고 말것입니다.
이러한 악인의 꾀를 쫓다가는 결국 함께 심판당하고 맙니다. 악인의 꾀를 쫓고 악인과 함께 먹고 살다가 악인과 함께 망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롯입니다.
롯이 사는 소돔과 고모라땅은 좋은 땅이었기에 만사가 형통하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악인들과 함께 있다가 그들이 불탈때 모든 소유를 다 태워버리고 겨우 생명만 구원 받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을 뿐입니다.
또한 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 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영월중앙교회에 등록하고 영월중앙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즉, 등록이라는 절차를 밟아서 의인의 회중에 들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악인은 가라지이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는 결코 곳간에 들어갈 수 없고 오직 불구덩이에 갈 뿐입 니다.
어느 농부가 가라지를 곳간에 들이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께서 가라지를 천국 곳간에 들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가라지를 속아내시고 갈라놓으시고 구별하셔서 불못에 던지실 것입니다.
이것이 가라지의 운명입니다.
우리는 누가 가라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악인의 꾀를 쫓다가는 가라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앞에서 악인의 길을 쫓는 사람은 형통의 삶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악인의 길을 쫓는 이상, 악인이 심판당할때 그 심판을 같이 당한다는 사실도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죄인의 길은 반역의 길이요, 불순종의 길이요, 불법자의 길이요, 하나님의 목표에 벗어나는 길입니다.
죄라는 원어의 뜻은 과녁을 벗어난 화살을 의미합니다.
과녁에 못미쳤던지, 지나쳤던지 빗나간 것을 죄라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못미치거나 지나치거나 빗나간 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길은 반역자의 길이라 했으니 아담의 길이요, 불법자의길이라 했으니 가인의 길이요, 불순종한 길이라 했으니 발람의 길이요, 배신자의 길이라 했으니 가룟유다의 길이요, 하나님의 뜻에 못미친 자의 길이라 했으니 한달란트 받은 종의 길인 것입니다.

셋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시편기자가 얼마나 영감있는 시를 썼는 지 보십시오. 처음에는 악인의 꾀를 쫓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꾀를 쫓다가는 죄인의 길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게 되면 하나님의 대적을 받게 될것이고 결국은 멸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만한자는 자기자신을 절대화 시키며 독선과 이기주의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남편도, 아내도, 집사도, 교역자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나에게 맞추라는 것입니다.
노아시대 사람들이 오만 했습니다.
롯의 사위들이 오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바로가 그랬고 혜롯이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모두들 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만사가 형통하시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세가지를 과감히 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취(행)해야 할것 두가지가 있습니다.(2절)

첫째,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 해야 합니다.
이 말뜻은 하나님 말씀을 좋아한다는 말이요, 사랑한다는 말이요, 관심을 갖는 다는 말이요, 소원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것 세가지를 뽑아 보십시오.
그 안에 말씀이 들어 있습니까
없다면 다섯가지를 뽑아 보십시오.
그안에는 있습니까
없다면 우리가 말씀을 즐거워 한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주일 예배후 집에 가서 성경을 얼마나 읽었습니까
속회보고서를 보니까 그리 많이 읽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주일을 살면서 주일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며 기다렸습니까 주일출석현황을 볼 때 그리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형통하시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소원하고 유일한 기쁨의 이유로 삼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주야라 함은 항상을 의미합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새김질 하여 말씀 그 자체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주야의 의미는 순경과 역경의 때를 말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밤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말씀에서 빛이 나오고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낮에도 역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누구나 괴롭고 외로울 때는 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기쁠 때, 즐거울 때, 이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왜 내가 하는 일마다 이렇게 안됩니까 하며 원망과 짜증을 내기 전에 내게서 형통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내가 악의 꾀를 버렸는가
죄인의 자리에서 떠났는가
오만한자의 자리에서 일어 났는가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고 기뻐 했는가
내게 주신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는가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만사불통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버릴것은 버립시다.
그리고 취할 것은 취합시다.
그리하면 금년 한해는 분명히 하나님앞에서 만사가 형통하게 될것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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