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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인의 문명과 셋의 문명 (창 04: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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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들은 대부분 더욱 안락
한 환경이 더욱 행복한 삶을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더욱 편안한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땀 흘려 일하고 있습니다. 좀더 큰 집에 살면서
좀더 비싼 자가용을 타고 좀더 여유 있는 생활을 하면 그만큼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면전을 떠나 에덴 동쪽에 있는 놋 땅에 도착해서
성을 쌓았습니다. 그 성 이름을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
라고 지었는데 이 에녹이라는 도시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도시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가 바로 문명의 요람입니다.
성을 쌓고, 도시를 만들고, 직업을 개발하고,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을 발달시키는 문명이 에녹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인
의 문명은 그 후손에게 행복을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첨단 문명이 반드시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
가 문명의 본질을 알고 문명의 허구로부터 벗어나 참된 구원의 길
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행복 추구는 어쩌면 신기루를 좇는
것일지 모릅니다.

성경은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유 11절)라는 표현으로 가인의 삶의 모습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어쩌면 있는 힘을 다해서 자기 나름의 문화와 인생을 건
설하는 일에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것이 불행이고 저주였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고 나서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 우리가 추구했
던 삶의 모습이 불행이고 저주였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하여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문명, 문화의 정체가 무엇인지 돌이켜 생각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대답은 인류 역사의 처음 문명이었던
가인 문명의 정체를 파악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문명의 형성 요인
^
무엇 때문에 문명이 발전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봅시다. 본문은 가인
이 문명을 형성하게 된 요인들로 인간의 기본적인 세 가지 필요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안전
이 안전에 대한 욕구는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
입니다. 가인이 성을 쌓은 것도 안전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 집 없이 사는 사람들이 내 집을 장만하고 싶어하는 것도 안전
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편리
안전 다음으로 편리를 추구합니다. 좀더 편리한 부엌, 좀더 편리
한 공간, 좀더 편리한 자동차, 좀더 편리한 직업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더 큰 집을 갖게 되면 그 집을 관리하는 데 더 큰 고
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발전하고 편리해진다는 것이 반드시 행복
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편리를 추구하는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그것이 문명을 발전시키는 요인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 그러나 얼마나 편해져야 만족하겠습니까? 만족은 언제나 상대적
인 것이고 만족의 한계를 모르는 데 인간의 불행이 있습니다.

셋째/자아 실현
인간은 안전하고 편리한 삶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소위 보람 있는
일을 찾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머
슬로우는 말하기를 인간이 가진 가장 고상한 필요는 바로 자아
실현의 필요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직업을 갖습니다. 직
업을 갖게 되면 인생을 즐기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차원 높은
문화를 발전시킵니다. 음악, 미술 같은 문화 활동을 하게 됩니다
.

가인 시대에 이미 이런 문화 형태가 등장하였습니다. 20-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
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
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인간이 직업을 갖고 문화를 발달시키고 문명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조금도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 본위의 문명에는 자기를
숭배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문명의 죄악성

문명을 발달시키는 것은 건설적인 일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
더라도 인간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사를 계발해서 높은 문명과 문
화를 이루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인이 만든 문
명은 인간을 참된 행복으로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문명을
추구하던 인간에게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서 문명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문명이나 자아 실현
은 빈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떠난 직장 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성숙하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직장은 하나님이 제게 허락하신 곳입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하여 할 수 없이 직장에 다니는 사람과 판이
하게 다른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업을 하는 사람
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직업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없이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가서 자기 숭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제게 주신 달란트로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
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주님을 나타내기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예술가가 될 때 그가 만드는 작품이 진정한 의미의 예술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현대는 눈부시게 기술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중심인 과학
기술의 발달이 마지막에 어떤 결과를 낳을까를 생각하면 두려울 뿐
입니다. 원자 시대가 초래할 가공할 미래를 우리는 넉넉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문명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과시하려는 인간의 교만한 모습임을 가인을 통해 깨
달아야 합니다.

이름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합니다. 가인이 에녹을 낳고
에녹이 이랏을 낳았습니다. 『이랏』은 증거하다, 나타낸다,
과시한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좋은 의미가 아니고 자기 자
신을 과시한다는 뜻입니다. 『므후야엘』은 본래 하나님 때문에
맞았다, 깨졌다라는 뜻입니다. 얼른 들으면 신앙 고백 같지만
실은 하나님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게 되었다는 하나님에 대한 원
망과 적대감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므드사엘』은 두 단어가 결
합한 것인데 『므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엘』은 스
올이라는 단어의 어근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즉, 지옥의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자녀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어쩌면 하
나님에 대한 반항과 적의를 드러내기 위함인지도 모릅니다. 『라멕
』은 나는 강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가인 시대의 이름만
보아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에 대한 적의를 알 수
있습니다.

가인 문명의 죄악성은 마침내 이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치관을
뒤집은 데서 나타납니다. 옳은 것이 틀린 것이 되고 틀린 것이
옳은 것처럼 위장되어 나타나는 가치관의 전도(轉倒)가 여기에서부
터 드러납니다. 23,24절에 라멕의 시가 나오는데 라멕은 살인
죄를 범한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아내도 두 명이나 되었습니다
. 라멕은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을 해치는 자는 벌이 칠십칠 배이
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후회는커녕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는 그의
노래에서 이미 인간이 가진 가치관이 얼마나 잘못되었나를 엿볼
수 있습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철학에 근본 전환이 일어났다
. 19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숨어서 죄를 지었고 이를 부끄럽
게 여겼으며 벌을 달게 받았다. 그러나 20세기에는 도덕의 기본
개념조차 무너지고 있다.
도덕의 절대 표준을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덕의
타락은 이미 가인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현상입니다. 하
나님을 떠난 인간은 어떤 죄악도 서슴지 않습니다.

셋의 문명
^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참다운 삶을 살 사람을 찾으
셨으나 가인의 후손들 중에는 그 대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죄악의 문명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새 인물을 만드셨
습니다. 아벨이 죽은 뒤 아담이 나은 셋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셋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짓는 것이 가인의 후손들과는 상당히 달
랐습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26절).
『에노스』는 흙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 의미는
연약하다, 순간이다라는 뜻입니다. 셋은 인간의 연약성과 순간성
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인간의 부족함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인정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26절)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참
된 의미에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주된 원인은 자신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신(神)
이 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신이 될 수 없음을 깨달
을 때, 인간의 연약하고 추악한 모습, 죄 된 모습을 깨닫는 그
순간 비로소 하나님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강해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여긴다면 그 사람의 강함은 그 사람에게
저주입니다. 물질의 풍성함이나 지혜의 많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의 넉넉함과 자신의 지혜로움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면 그 좋은 여건들은 그를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반면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신의 부족과 무지
를 깨닫고 전지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알기에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인간의 부패를 알기에
우리를 용서하고 용납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이때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참 소망
을 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행복의 역설이라고 말합니
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죄 많음을 깨닫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얻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때 구원을 받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아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을 통해서 이 죄 된 세상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드러내며
복음을 선포하기 원하십니다.
당신은 가인과 셋 둘 중 누구의 문명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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