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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편지인 교인들 (고후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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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진실해야만 하고, 양심적이어야만 하는 고귀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위선과 파렴치한 행동이란 직접 관계된 사람들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고귀한 일에 종사하는 진실하고 양심적인 일꾼들마저 불신케 만드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바울 사도는, 인간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일꾼 노릇을 순수함과 성실함으로 수행했습니다. 즉, 순수한 동기에서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2. 바울의 천거서인 교인들
그리스도의 편지인 교인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러한 자신의 임무 수행 태도를 밝혔습니다. 물론, 거짓 사도들에게 미혹되어 바울의 사도직을 부인하고 복음의 도에서 실족하고 있는 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었지만, 혹시나 그들이 자화자찬 내지 자천한다는 오해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교인들이 자신의 인격과 사도권, 심지어 복음에 대해서까지 부정하는 것이야 모르는체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그들의 구원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므로 자천하는 자라는 오해나 비난을 무릅쓰고 자신과 자신의 사도직 및 복음을 변호한 것입니다. 실상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자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천도 필요로 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그 반면에, 거짓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써 준 것으로 짐작되는 추천서를 내세워, 바울과 그의 복음을 비난하는 등의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들 식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추천서를 사용하는 당시의 관습에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추천서를 써 주기도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별도의 추천서를 필요로 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바울에게는 특이한 추천서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자체가 바로 바울의 편지 곧 추천서였습니다. 즉, 바울의 복음 선교에 의해서 그들이 회개하고 믿어 고린도 교회를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은, 바울의 사도로서의 성실한 사역을 인정하시는 그리스도의 추천서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 추천서는 종이가 아니라, 목자의 마음에 쓰여졌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입니다. 물론, 그 추천서를 써 주신 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대필자로 삼아 그리스도가 쓰신 편지이며, 그 재료는 먹이 아니라 성령이며, 그 글씨는 모세의 십계명처럼 돌비에 쓴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판에 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어 구원받은 여러분은 목자의 마음 판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 씀씀이, 사고 방식, 일 처리, 행동 양식, 생활 모습 등을 보는 사람들마다, “야, 정말 그리스도의 편지 내용이구나!” 하고 내심 감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학생이 목회자를 찾아와서 상담을 합니다. “공부는 어떤 목적, 어떤 자세로 해야 합니까” 그 경우에 목회자가, “공부에 대한 주님의 교훈은 예수 믿는 아무개 학생을 보면 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다른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목자인 제가, “공부는 우리 교회 아무개, 가정 일은 우리 교회 아무개, 직장 일은 우리 교회 아무개, 가르치는 일은 우리 교회 아무개, 사업은 우리 교회 아무개, 교회 예배와 일은 우리 교회 아무개가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라고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제게 대한 그리스도의 추천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 그리스도는 교인들이 각 분야에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원하시겠지만, 그보다 더 원하시는 것은 복음에 합당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어느 기독교계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라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인물에 대한 기사를 보고는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일제 시대에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하여 예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당시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교계의 지도급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는, 일제 시대에 친일 신문인 매일신보에 ‘영원히 광망 뻗도록’이란 글을 통해 대동아 공영권과 황국 신민화에 대해 역설하였고, 조선야소교서회 이사장과 기독교신문의 편집위원을 지내면서 대동아 전쟁을 찬양하는 등 친일 논설을 기고하거나, 친일 좌담회에 참석하며 일본의 한국 기독교 황민화 운동에 손발 노릇을 하였습니다. 보나마나 다 주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했을 겁니다. 그러던 그 사람이 일본이 패망한 뒤인 1949년에 기독교계 대학에 총장이 됩니다. 그리고는 새교육 2월호에서 일본의 침략을 비난하고 나섰으며, 57년에는 사상계 3월호에 ‘3·1 이상론’이란 글에서 일본의 식민 정책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높였고, 더욱이 반민특위의 해체로 친일 분자들이 득세하자 그는 일제 시대에 항일 운동을 하다가 해외 도피와 칩거 생활을 해야 했던 독립 운동가로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특히, 1968년 신동아 6월호에서는 ‘교단과 교회에서 민족 운동’이란 글을 통해 스스로를 항일 정신에 투철한 민족주의자로 묘사했습니다. 나아가 독립 유공자에 대한 정부 포상을 심사하는 심사위원 21명 중 한 사람으로 참가했습니다. 친일 행적에 대한 한마디 사과도 없이 말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또 지식, 지위, 명예 등이 굉장했다 하더라도, 변절에 능한 이런 행적은 그리스도의 편지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어떤 길을 가든지 그리스도의 편지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으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3. 바울의 만족의 원천인 하나님

바울 사도는 선교 활동과 선교 활동에 관련된 모든 일과 결과들을 자기에게서 난 것처럼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자기의 만족이 오직 하나님께로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여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고, 세상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에 만족하려는 사람들이 항상 문제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인 우리의 모든 만족스런 결과가 다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본위, 주님 위주의 생활 태도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2:2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는 생활은 그리스도의 편지 중 편지라 할 수 있습니다.

4. 영원한 주이신 예수

끝으로, 감명 깊은 실화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전남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사는 이 아무개 씨가 작년 3월에 5년생 진돗개 ‘백구’를 대전 사람에게 팔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7개월 만인 작년 10월에 뼈와 가죽만 앙상한 모습으로 300여 ㎞를 걸어서 옛 주인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새끼를 벤 채로…. 팔려갈 때에 걸어서 간 것도 아니고, 자동차나 기차로 갔을텐데…. 참, 기적 같은 사실입니다. 새 주인이 아무리 잘 먹여 주고 잘해 준다 할지라도, 오로지 옛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그리움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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