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세상을 무서워하지 말라 (창 21:8-21, 롬 06:1-11, 마 10:24-39)

첨부 1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싸울 때에, 중간에서 제일 곤란을 겪는 이가 있습니다. 말할 것 없이, 그 아들이자, 남편 되는 사람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머니 편을 들 수도 없고 아내 편을 들 수도 없어서, 그야말로 죽을 맛일 것입니다.
그런 곤란한 지경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고부간에 화해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디 화해가 그리 쉬운 일입니까 두 사람 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개의 경우 ‘나는 잘못 없고 너만 잘못했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하는 입장을 고수하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만일, 누가 옳은지, 그 시비를 가리고자 할 때에는, 어느 한 쪽과는 결별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늘그막까지 자식이 없자, 아내인 사라가 그의 몸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 자식을 낳게 했습니다. 그가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낳은 자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서 낳은 자식만이, 아브라함의 뒤를 이을 자손임을 밝히셨던 것입니다.
드디어, 사라에게서도 아들이 생겼습니다. 그가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요, 사라는 경수가 끊긴지 오래되었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약속하신 일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틀림없이 이루어 주신다는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두 아들이 자주 싸움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사라가 보니, 이스마엘이 자기 아들 이삭을 희롱하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사라의 마음에서는 불이 일어났습니다. 속상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 아브라함에게 쫓아갔습니다. “여보, 저 계집종과 그 아들 녀석을 당장 내보내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나갈래요”하고 앙탈을 부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무척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갈이 낳은 자식도 자기 자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몇 날 며칠 동안, 그 문제로, 아브라함은 고민했습니다. 어쩌면 그 때 아브라함의 모습은, 저와 같이 비쩍 말라 있었을 것입니다.
그토록 고민하면서 괴로워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렇게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사라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내가 너에게 네 후손들이 엄청나게 불어나리라고 약속한 것은, 바로 이삭을 통해서 그렇게 된다는 말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먹을 떡과 물이 든 가죽부대를 하갈의 어깨에 메어 주고는,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집을 떠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 민족이 바로 아랍민족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낳음으로써, 두 민족간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민족간의 싸움이, 영적으로는 육과 영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곧, 세상 세력과 믿음의 세력간의 싸움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조상인 아랍은,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우상을 섬기며 육신의 욕심 따라 살았고, 이삭의 후예들인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 율법을 지켜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을 택할 것이냐, 하나님을 택할 것이냐’하는 것으로 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도 버릴 수가 없고 세상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게 되면 영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며, 또한 세상을 버리면 당장 살아가기가 곤란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서는, 언제나 두 세력이 싸우고 있습니다. 육신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인가 두 영(靈)이 싸울 때에, 우리는 참으로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이 확고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이런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됩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이스마엘을 내보냈던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세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에게는 친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눈물을 머금고 그 아들을 내보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멀리하기란,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을 내보내는 것처럼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세상은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멀리하면, 살아갈 방도가 없을 것처럼 여겨집니다. 육신의 즐거움과 쾌락을 강조하는 세상 사람들을 멀리하자니, 그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한편 그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자니, 늘 양심의 가책을 받고 고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1.그래서 많은 이들이 두 세력 사이에서 갈등과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백하기를 「나는 마음으로는 늘 기쁨으로 하나님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봅니다. 아, 내가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인간입니까! 누가, 이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 상태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것입니까(롬7:24)」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으로는 ‘하나님 말씀대로 올바른 인생을 살아야지!’하면서도, 육신적으로는 세상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내가 원치 않는 길을 갈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에서는, 두 세력이 싸우고 있습니다. 고부간에 다투게 되면, 중간 입장에 있는 사람이 많은 곤란함을 겪듯이,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늘 갈등과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믿는 자에게 있어서 바람직한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아야,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 몸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몸과 영혼을 다 지옥에 던져 파멸시킬 수 있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마10:28)」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①세상을 택할 때가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ㄱ.그것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하건만, 사람들은 몸과 영혼을 함께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보다, 육신만 잠시 괴롭히는 세상을 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당장 먹고살기 위하여 세상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고 영원하신 주님을 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하고 미련해서, 먼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현실에 치우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ㄴ.그래서, 주님보다는 세상을 더 사랑하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계산이 세상적으로는 무척 빨라서, 어느 편이 더 이익이 될지, 계산을 잘 합니다. 그러나 그 계산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모든 게 다 그렇듯이, 겉보기에 좋을수록, 내용이 허술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 이익을 좇다가 주님을 멀리하게 되면, 자기가 자신의 발등을 찍을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발등이 찍혀서 고통을 겪게 되면, 그 때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이익을 좇아가면서 주를 부인하면,
②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진다고 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십자가는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 욕심에 따라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세상의 자랑이나 무슨 이익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하는 일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이익을 생각하게 되면, 십자가는 질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는,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ㄱ.세상 욕심 때문에, 주와 십자가를 멀리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33절에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욕심 때문에 주를 멀리한 결과는,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주께서 우리를 모른다고 하시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말할 수 없는 큰 비극을 영원히 겪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이삭이냐, 이스마엘이냐’ 선택을 해야만 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스마엘을 과감히 내보내고 이삭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모든 만민에게,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세상을 멀리하고 주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멀리하게 되면 금방 어떻게 될 줄 알고, 세상에 얽매여서 질질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그 길이 영원히 죽는 길인 줄 알면서도, 잠시 맛본 즐거움을 잊지 못해서, 또는 세상을 멀리하면 어떻게 될까 봐 두려운 나머지,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세상 이익이나 유혹을 따라가게 되면, 멸망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오죽하면, 아내인 사라의 몸종을 받아들여 이스마엘을 낳았겠습니까 90세가 되기까지 소식이 없자, 답답한 나머지 취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난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두 민족간의 처절한 싸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자꾸만 불행한 선택을 할 염려가 많습니다.

2.하나님은 분명히 주를 통해서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시고 있습니다

동양 사상가 중에 증자(曾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아내가 어느 날, 시장에 가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저마다 따라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집에 있어. 엄마 혼자 다녀올게!” 한참을 말렸으나, 누구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엄마가 시장 갔다 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는 요리를 해줄 테니, 가만있어라.” 이렇게 타이르자, 그제야 아이들은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시장에 갔다가 돌아온 증자의 아내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증자가 돼지를 잡아 놓고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진짜로 돼지를 잡으려고 했는 줄 아세요 그저 얘들 달래기 위해서 한 말인데.”
이 말을 들은 증자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이 아이들과 약속을 했잖소. 그러므로, 약속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오. 어서 먹을 것을 만들구려”하고 말을 맺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아내의 말은 거짓된 약속이었으나, 증자는 거짓된 약속일지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지 않겠습니까 틀림없이 그 약속을 지키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①죄와 죽음의 세력을 물리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마음에 원하는 인생을 살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은,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할 수 없이 행했습니다. 죄가 시키는 일을, 울며 겨자 먹기로, 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 6절에서 「우리는 죄의 지배를 받거나 죄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이 아닌 주님을 택하게 될 때에, 이런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②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보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같이, 우리도 그분의 새 생명을 얻어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세상이 아닌 주님을 택하여 살게 되면,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욕심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10장 39절에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그 목숨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전자의 목숨은 한시적인 육신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의 목숨은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욕심을 버리게 되면, 잠시 죽으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택하게 되면, 그래서 주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게 될 경우에
③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지켜 보호해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참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세상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마태복음 10장 29-3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을 보호하시면 영원히 그 생명을 보존하지만, 인간이 목숨을 오래 부지하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헛된 수고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을 다 지옥에 던져 파멸시킬 수 있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마10:28)」합니다.

3.주님만을 믿고 따름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 선생님은 로마서 6장 3절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예수와 하나가 되면서, 우리를 지배하던 죄의 세력은 부서져 버렸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강력하고도 힘있는 말씀입니까 죄의 세력이 부서졌다는 것은, 우리를 절망과 슬픔의 길로 이끌어 가던 악한 죄의 세력이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이 말씀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①그래서, 죄와 죽음의 세력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싸워서 물리쳐야 합니다.
ㄱ.자꾸만 우리로 하여금 죄의 길로 빠지게 하는 악한 욕망,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살려고 하는 자기 의지(意志), 이것들을 십자가와 함께 못박아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욕심을 마음에 간직한 채, 믿음 따라 살고자 하면, 그 욕심이 믿음의 길을 방해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욕심대로 살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새 인생입니다.
ㄴ.하지만, 주님의 약속을 굳건히 믿고 따르려 해도, 사탄의 시험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바르게 사는 것을 시기하는 마귀의 장난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②그리고 우리의 관심은, 늘 하나님의 약속에만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그 명령과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ㄱ.주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기준입니다. 여기서 세상으로 치우치게 되면, 우리의 믿음은 떨어지게 되는 것이고, 말씀대로 사는 일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면, 우리의 믿음은 성장합니다. 그런고로, 주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ㄴ.믿음이 성장하게 되면, 새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본인 자신이 기뻐하고 원하는 대로 살수가 있습니다.
매 순간 세상을 택하게 되면, 실망되는 일과 낙심되는 일만 생깁니다. 이익이 되는 줄 알고 선택했으나, 손해나는 일뿐입니다. 그러나 주의 일을 택하면, 눈에 보이는 이익은 없으나, 그 마음에 기쁨이 쌓입니다. 보람이 생깁니다.
예수께서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십자가에서 최후의 삶을 마치실 때에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다 마치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마치게 될 때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세상을 멋있고 즐겁게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 가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아, 그 영혼이 어디로 가게 될는지 불안한 상태에서, 과연 그런 말을 여유 있게 할 수 있을는지요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무서워할 게 아니라, 우리의 몸과 영혼을 능히 죽일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약속과 그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미래는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하늘나라 가는 사람답게,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