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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다 더 크신 분 (마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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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6절을 보면『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입니다. 여기서 『더 큰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메이존』이라는 중성명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과 신의 성전 되심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보다 크신 예수』『국가보다 크신 예수』에 대하여는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렸거니와 금일 아침에는 『성전보다 크신 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전이라 하면 예배당을 생각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도 성전에서 양을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상을 엎으시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내 집으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당을 중요시해야 합니다마는 눈에 보이는 有形敎會(유형교회)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無形敎會(무형교회)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살아 있는 말씀으로 전파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교회는 예수를 믿고, 교회에 영적으로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함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당 쟁분, 교회당 분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말구유로 쫓겨나시고, 애굽으로 쫓겨나시고, 골고다에서 음부로 쫓겨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상처와 희생이 신자가 갈 길 입니다.
우리는 교회당보다 거기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을 더 귀중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물질의 축복이요, 신약에서는 영적 축복입니다.
서양은 물질, 과학문명의 특징을 가졌고, 동양은 정신적 직관의 문명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고도의 신앙과 최후의 승리는 신비로운 이 성령의 체험, 즉 그리스도의 영과 중심 깊은 곳에서 교통함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 베드로, 요한등이 다 이 체험을 가졌음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시지프의 神話(신화)』라는 작품에서 쥬피터의 비밀을 폭로한 시지프는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刑(형)을 받았는데,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린 바위는 산 정상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서 다시 굴러 떨어지면 다시 밀어 올리기를 계속 반복한다고 합니다. 까뮈는 이것을 『인생의 실존을 비유로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무의미하고, 부조리하고, 고통스럽고, 절망처럼 느껴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지프는 죽어도 위를 바라보지 않으며, 신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지프가 땅만 보고 자기만 볼 때, 그리스도의 영을 알았던들 저의 절망은 희망으로, 저의 부조리는 가장 숭고한 목적을 향한 빛나는 생애로 전환될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실존주의자는 인생을 『불안한 존재』로 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에 내 중심을 두게 될 때, 自我(자아)라는 관념을 떠나 희생적 생활을 당위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절대 강한 능력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력으로 욕심을 없어지게 하여 열반에 들어가려고 하면 자기가 자기에다가 중심을 둔 이상, 자아를 사라지게 하기는 곤란하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영에 중심을 두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자는 자기 중심이 그리스도와 합함에 세상의 총검이나 핵무기나 여하한의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를 당할 수 없으매, 우리 중심은 언제나 흔들리지 않고 안심하고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영의 사람이 되기에 힘써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영력을 얻기 위하여 深山(심산)에 들어가야 하겠습니까? 또는 팔레스타인까지 막대한 경비를 들여 거기에 있는 성전을 찾아가야 하겠습니까?
요한복음 4:21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여하를 막론하고 장소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크신 영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력하면서 순간 아버지께 맡기고 구함으로 누구보다도 신령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최대의 노력을 경주하면서 그리스도의 영을 속 깊이 받아들이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혼잡한 활동무대인 도회지 가운데, 그리고 군대에도 교회를 설립하여 예배하고 일하며, 일하고 예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모스 3:7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는 교회를 맡아 주님을 잘 받드는 목회자들은 새벽기도를 매일 계속하고, 신실한 주의 종에게는 영적 교통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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